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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Sep 11. 2020

02.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영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주연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심야영화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라디오 시작을 알리는 bgm은 어떤 영화의 배경음악이었음이 분명한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 bgm이 점점 커지던 그 순간 가장 설레었던 것을 기억할 뿐이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프로그램의 패널 기자님이 소개한 영화였다.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칠월과 안생이라는 이름과 영화에 대한 평이 괜찮았던 것만 생각난다.. 아무튼 가물가물하게 그때 들었던 몇 글자를 기억한 덕분에(그리고 넷플릭스 덕분에) 마침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두 여자의 우정을 그린 영화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제목과 포스터만으로 짐작한 것과는 다른 결의 영화였지만. 영화는 무표정의 안생을 따라가는 시퀀스*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안생을 만난 가명은 안생에게 칠월의 안부를 묻는다. 안생은 칠월과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영화는 안생과 칠월이 처음 만났던 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닮은 사람과 다른 사람 중 누구에게 더 끌릴까? 칠월과 안생의 시작은 후자에 가까웠다. 안생은 일탈을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안생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반면에 칠월은 보수적이지만 안락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안생과 다르게 그녀는 규범을 깨는 것을 두려워한다. 안생은 그녀의 바람처럼 직업학교에 들어가 일찍이 돈을 벌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 칠월은 부모님의 바람대로 좋은 대학을 나와 은행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가명이라는 칠월의 남자 친구가 있다. 가명은 칠월의 남자 친구이지만 안생과 가명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성인이 될 무렵 안생은 갑자기 칠월을 떠나는데 안생의 목에는 가명이 즐겨하고 다니던 부처 목걸이가 걸려있다.


영화에는 클리셰가 많다. 너무도 진한 우정을 나누는 두 여자 주인공은 서로 몹시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가족보다 가까운 그녀들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남자(가명) 때문이라는 점(가명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느껴지던 불길한 예감이 결국 들어맞고야 말았다)이 대표적으로 그렇고, 그 외에도 따지자면 많다. 영화 내내 예상을 벗어난 것은 결혼식 날 가명이 도망간 것이 가명의 의지가 아니라 칠월의 부탁(명령인가?)때문이었다는 것뿐이다.(가명은 끝까지 자기 주관이라곤 없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묘사되나 싶었던 칠월과 안생의 캐릭터가 중반을 넘어 다른 색을 드러냈다는 거다. 자유로워만 보이던 안생은 점점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게 되었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칠월은 이곳저곳을 떠도는 자유로운 삶이 자신에게 맞다는 것을 알아간다.


영화는 나쁘지 않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보는 내내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옛날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거기다 마지막에 칠월을 죽이고야 마는 신파까지! 솔직하게 얘기하면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다른 영화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안생은 칠월이라는 필명으로 자신과 칠월의 이야기에 픽션을 덧붙여 소설로 연재하는데 정말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그런 느낌이다. 어디선가 읽어본  옛날 소설 이야기 같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있을 수도 있겠다는 설렘을 가지면서 감상하기에 어려운 이야기.


영화는 중화권에서 신드롬을 일으켰고 두 여배우는 금마장 영화제 공동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영화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두 여배우의 연기였다. 칠월은 이름처럼 한 철만을, 여름처럼 뜨겁게 보내다 갔고, 안생은 이름처럼 편안한 인생을 살게 된 듯하다. 이름이 최대 스포인 셈이다. 한국에서 김다미 배우, 전소니 배우가 각각 안생, 칠월 역으로 캐스팅되어 리메이크될 예정이라는데 원작에서 찾을 수 없었던 신선한 각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시퀀스 :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장소, 시간, 사건의 연속성을 통해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루는 구성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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