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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뒤맑음 Feb 11. 2021

유럽 스타트업이 취준생에게 가르쳐 준 5가지

적극성, 정보력, 하이어링 매니저, 실무 경험, 팔로업의 중요성을 배우다

나는 올해 초 브런치에 내부 추천이라는 낯설고도 강력한 경로로 지원하게 된 두 기업 취준을 소재로 신기한 외국 회사 채용의 세계라는 짧은 글을 썼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레주메 제출 버튼을 클릭하고 면접에 임했던 작지만 위대했던 용기의 결과를 이제 대략적으로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원했던 두 기업과 포지션은 다음과 같다.



A기업: 유럽 소비재 스타트업. 생활용품 B2C 마케팅 직무.

B기업: 미국 산업재 기업의 한국 법인. 건설업 B2B 마케팅 직무.



A기업은 1차 hr과의 음성면접에 통과한 이후 2차 hiring manager와의 화상면접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이고, B기업으로부터 1차 실무면접, 2차 임원면접까지 마치고 오퍼를 받아 이달 말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사실 B기업보다는 A기업과의 계약을 성사시키고 싶었다. A기업은 소비재 기업인 만큼 산업과 제품군도 보다 친숙했고 스타트업인만큼 회사 분위기도 비교적 젊고 자유로워보였다. 또 한국에 오피스가 없기에 후보자가 유럽 본국이나 아시아 거점국으로 이주하여 근무하기를 원하는 회사였다. 여러 나라에서 일하는 마케터가 되고 싶은 나에게는 한번쯤은 꼭 일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아쉽게도 이번 기회에는 A기업과는 연이 닿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A기업의 채용 과정을 일부나마 겪으면서 배우고 느낀 점 5가지가 나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내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이를 정리하여 다음 구직에서는 나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완할지 되짚고, 나와 비슷한 주니어 연차로 외국 기업을 타겟하시는 구직자분들과도 공유하고 싶다.




손을 드는 구직자에게 관심 하나라도 더 준다. 내 살길은 내가 찾자. Image by Niek Verlaan from Pixabay


1. 적극성: 적극적인 구직자에게 내부 추천이 하나라도 더 온다 


외국 기업 지원에 있어서 내부 추천(referral)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다. 한때 내부 추천은 인맥 쩌는 인싸에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한테나 해당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나처럼 이렇다할 경력이나 잘난 점이 없을수록 더 중요하다. (물론 추천만으로 채용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나 회사 내부 추천인의 존재는 높은 확률로 원래는 서류 광탈이었을 나를 면접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이 잡 오퍼로 가는 초고속 한정판 로켓에 올해 처음으로 탑승해보면서 내부인과의 커넥션 없이 공식 채용 사이트에 지원하는, 과거의 내가 수없이 떨어져 왔던 그 만인의 루트로는 솔직히 이제 면접 기회를 얻어낼 자신이 없어졌다. 이렇게 평범하디 평범한 나를 순식간에 차별화시켜주는 내부 추천이라는 루트로 이어지기 위한 키워드는 바로 적극성이다.


꼭 직접적으로 나와 연결된 지인이 아니어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어도 특정 기업이나 직무에 대한 적극성을 보이면 내부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 현직자에게 용기내어 연락드리기는 물론 어렵지만 나는 이제 맥빠지게 서류광탈당하는 게 더 싫다. 나는 일면식도 없던 A기업의 하이어링 매니저분께 링크드인 메시지를 드린 것을 계기로 생각지도 못한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A기업에 재직하시는 그분이 게재하신 채용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A기업과 포지션에 너무 관심이 갔고 흔하게 열리는 채용기회도 아닌 것 같아 지금의 내 경력과 스킬이 잡디에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지금 뭐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해서 그분께 링크드인 커넥트 요청을 드리면서 채용하시는 포지션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개인 메시지로 이것저것 여쭤보았다. 그렇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분이 레주메를 달라고 요청을 주셨고 신기하고 감사하게도 추천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적극성을 발휘한 점은 다음 구직에도 가져갈 점인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링크드인 개인 메시지라는 예상치 못한 루트로 채용이 진행될 수 있다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또 내부 추천은 진행속도는 왜 이리 빠른지 이런 과정이 처음이었던 나는 당황했고 허둥지둥했다. 내가 다음 구직 시에도 내부 추천을 받게 되면 높은 확률로 서류는 패스고 면접기회까지 주어지는 것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여 서류를 내자마자 곧바로 면접준비를 시작할 거고, 특히 작은 회사일수록 진행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는 각오를 할 것이다.



2. 정보력: 글라스도어 면접 후기와 경영진 배경을 미리 확인하자


글라스도어는 해외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라면 아마 다 알고 계실, 잡플래닛의 글로벌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라스도어에 가면 과거 면접경험자들이 남긴 면접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면접 질문은 기출과 거의 똑같이 나오기도 하며 바뀌더라도 면접 후기를 통해 대략적인 면접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또 대부분의 회사 면접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오는 질문(자기소개, 지원동기..)도 있지만 각 회사만의 특징적인 면접 유형도 있을 수 있다. 나는 면접 전 A기업의 글라스도어 면접 후기를 큰 신뢰감 없이 대충 훑어만 봤다가 당했다. hr담당자와의 1차 면접이 일반적인 예상질문 내에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하다가 뜬금없이 케이스 인터뷰를 하길래 직무랑 1도 상관없어 보이는 저런 걸 대체 왜 물어보나 싶어 크게 당황했는데 면접 이후에 회사에 대해 좀 더 살펴보니 CEO가 전략 컨설팅 펌 출신이었다. 그제서야 글라스도어에서 훑어봤던 A기업의 면접 후기들에서 하나같이 케이스 인터뷰를 봤다고 언급한 이유를 알 수 있었고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2차 면접에서 나올 케이스 인터뷰는 급하게나마 대비할 수 있었다. 다음에 구직할 땐 면접 전 글라스도어 후기를 샅샅이 확인할 거고, 특히 스타트업일수록 경영진의 배경 확인까지 필수로 할 것이다.



3. 하이어링 매니저: 하이어링 매니저(내 직속 상사되실 분)가 실세다


1차 면접을 진행하신 hr 담당자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스크리닝 정도만 하시는 느낌이었고(물론 희망 급여 얘기도 오갔지만) 2차 면접을 진행하신 하이어링 매니저가 이 채용의 실권자라고 느꼈다. 2차 실무 면접은 1차 스크리닝 면접보다 훨씬 더 깊이있었으며 까다로웠다. 또 면접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커뮤니케이션 하나하나가 채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별거 없는 나도 하이어링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추천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분과의 면접이라는 소중한 기회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하이어링 매니저는 내 운명을 결정할 면접관인 동시에 입사 후 직속 상사가 되실 분인 만큼 이분과의 케미가 맞는 것이 당장의 오퍼를 위해서도, 합격 후 내 일상이 될 직장생활의 원활함을 위해서도 중요한 점인 것 같다.



4. 실무 경험: 실무경험 없는 외국 회사 취준은 여권 없는 해외여행 준비가 아닐까


대학생 때 해외취업 관련 특강 갈 때마다 들었던 "한국에서 경력을 쌓고 넘어오셔라"는 말이 난 너무 싫었다. 아 왜 자꾸 신입은 안된다고 하냐고! 일하기 위해 일을 하라는, 사람 놀리는 것 같은 그 말을 반박하고 싶어서 학생 신분으로 홍콩으로 넘어가 무작정 구직도 하고 일도 해봤다. 근데 진짜 특강에서 들었던 대로 한국에서 경력을 쌓고 외국 취업시장에 나가는 게 현실적으로 내 몸값도 높이면서 비자 받기도 더 수월한 길이었다. 


A기업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링크드인 메시지와 면접에서도 뼈저리게 느꼈던 점은 내 실무 경험을 중요하게 보시고 레주메에 기재된 내 경력 하나하나를 깊이 파고드신다는 점이었다. 난 잡디스크립션에서 요구하는 실무 경험이 부족한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영어의 유창성과 지식적인 부분에서도 어버버했지만 잡디에 꼭 들어맞는 실무 경험이 있었다면 그 쪽으로 면접을 끌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해외여행 가려는 여행자에게 입국 심사의 모든 과정마다 검사관이 여권을 요구하는 것처럼, 외국 기업을 뚫으려고 하는 후보자에게 서류와 면접이라는 채용의 모든 과정에서 기업은 실무 경험을 검증하는 것 같다. 안그래도 요즘 팬데믹인데 해외취업은 이제 끝났다며 좌절하기보다 요 몇년 동안 한국에서 외국 기업이 관심가질 만한 실무 경험을 착실하게 쌓아두고 정리해 두면 분명 팬데믹 후에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시 채용, 잦은 이직, 평판 조회가 판을 치는 외국회사 취준생이라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Image by Michael Gaida from Pixabay


5. 팔로업: 언제 어떻게 회사와 다시 연결될 지 모르니 마무리도 예쁘게 하자


난 A기업과 2차 면접을 본 지 이 글 발행일 기준으로 3주가 다 되어가서 탈락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계 회사 마케터이신 내 멘토분도 신입 시절 채용 면접보고 나서 연락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다가 쌩뚱맞게 면접 2달 후에 합격통보받고 계약하신 적도 있다고 하셨다. 알고보니 다른 후보자가 채용되었다가 얼마 안 있어 그분이 오퍼를 깨서 차순위 후보자였던 멘토 분께 기회가 갔다고 한다. 멘토 분의 경험담을 듣고 면접이 망했다고 해도 그 회사와는 영원히 끝인 것으로 생각하여 급 냉랭해지기보다는 회사와 포지션을 알아갈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를 표현하고 적절하게 팔로업을 하는 것도 중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에서 망해놓고 질척대는 것 같기도 하고 면접에서 나온 주제를 굳이 면접 이후에 이어나간다는 것이 어색해서 팔로업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정말 일해보고 싶은 멋진 회사였기에 그 고생을 하며 서류와 면접을 준비했던 게 아닌가. 한 회사의 면접이라는 단계까지 경험해 보고 회사를 알아가면서 회사의 부족한 부분보다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면 버벅댔던 면접 경험 한 번으로 그 회사에 빨간 펜으로 엑스표를 칠 필요가 있을까. 당장의 속상한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몇 달 후 혹은 내년에라도 회사와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두는 것도 혹시 모를 미래의 나를 위해서 괜찮은 카드를 하나라도 더 확보할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자존심도 부릴 때 부려야 한다. 면접을 망한 건 내 부족함 탓이지 회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A기업에 지원하고 떨어지며 배운 점을 정리하면 결국 ①적극적으로 손들고 ②정보력과 ③경력으로 무장하여 ④하이어링 매니저에게 나의 가치를 보여주고 ⑤팔로업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더 짧게 한 단어로 줄인다면 적극성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적극성이 없다면 내부추천을 받기도, 정보를 탐색하고 취합하기도, 경력을 쌓기도, 하이어링 매니저에게 컨택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A기업에는 떨어졌지만 A기업의 채용 기회에 도전이라도 해보자며 무모하게 용기를 낸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지금 이 회사의 회사원 되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시도하고 넘어지고 배우며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는 거니까 말이다.



배경사진: Image by StartupStockPhoto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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