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린뒤맑음 Jun 14. 2021

사수의 퇴사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는 중간 역할자는 큰 힘이 된다. 누구보다 내 상황을 잘 이해하고 들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부모님에게 스트레스받을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는 형제라든가, 고학번 선배와의 관계가 어려울 때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한 학번 선배라든가, 회사생활의 크고 작은 업무적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수같은 그런 사람.


업계와 직무를 바꾸어 현재의 회사에 입사하고 회사와의 핏는지 탐색하던 지난 몇 달 간 나름의 고민의 시간을 가진 끝에, 이 회사에 당분간 다녀보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나와 꽤나 잘 맞는 사수의 존재였다. 


나의 크고 작은 업무적 궁금함과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던 분. 그런 나에게 내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도 따뜻한 피드백을 주던 분. 마케팅이 낯선 나에게 마케터로서의 마인드셋을 차근 차근 알려주던 분. 이 회사가 낯선 나에게 회사 입사 선배로서 이 회사만의 특징과 업무 노하우를 알려주던 분. 내가 사수의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멈춰 세우시던 분. 신입사원인 나를 프로페셔널로 인정해주고 언제나 나 자신만의 주장과 근거라는 인풋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던 분. 차가워 보이지만 인간적인 따스한 모습도 있던 분. 조금은 익숙해졌으면서도 여전히 어려운 이 회사에서 그 분은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구석이었다. 


그런 그 분이 퇴사를 앞두고 있다. 여러 정황을 통해 어느 정도 사수의 퇴사 가능성을 직감했지만 막상 그 분의 퇴사가 공식화되고 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 아직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은데. 아직 사수께 배울 게 많은데. 아직 이 회사와 우리 일에 대해 더 듣고 싶은 이야기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런 개인적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의 퇴사에 진심으로 박수칠 수밖에 없었다. 퇴사라는 큰 결정을 내리는 과정도 참 그분답게 멋졌기 때문이다.


사수는 나에게 내 의견을 표명해야 함을 강조했던 것처럼 그 분 스스로의 의견 표현도 분명한 분이었다. 그 분명한 의견과 소신으로 회사와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그 분은 퇴사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그 분이 중시했던 부분을 받아들여주는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셨다. 회사를 그만둘지언정 당당하게 내 할 말은 하는 모습.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귀기울이고 스스로에게 뭐가 진짜 중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에 좀더 부합하는 환경으로 직장을 옮기시는 모습. 그 분은 그렇게 커리어에 대한 자신만의 분명한 방향성과 철학을 가지고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분이셨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 분은 회사 선배로서, 마케터로서, 사수로서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치 분이었다. 이제는 그런 사수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속상해하기보다, 입사 초반 허둥대던 시절 좋은 사수에게서 일의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음을 올해의 의미있고 감사했던 기억으로 남겨두려 한다. 어쩌면 직장에서 사람의 오고 감을 좀더 의연히 받아들이는 법 내가 그분에게 배울 마지막 부분일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쌩퇴사 자격 자가진단 테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