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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02. 2024

접속, 작가들의 적!

모든 접속을 끊어라

글을 쓰고 싶지만 쓰지 못하는 사람들의 핑계 1순위는 시간이 없어서다. 수년 동안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2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만 주어져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1,000~1,500자 정도의 짧은 글 한 편을 써내는 걸 보았다. 쓰기 전에는 다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쓰자 글 한 편이 뚝딱 완성되었다. 그 정도 분량이면 짧은 칼럼 한 편 정도가 되고, 그런 글을 60편만 모아도 책 한 권이 될 수 있다. 하루에 20분도 낼 수 없을 만큼 바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고 있지만, 시간이 없는 게 아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글쓰기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는 게 진짜 문제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엉덩이와 의자가 완전히 친해져야 한다”는 위화 작가의 말처럼 글을 쓰려면 우선 앉아서 글이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글 쓰는 일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Writers in BJ 2기 회원들이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


예전에는 작가가 의자에 앉기만 하면 방해받을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도 마치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것처럼 방황이 가능하다. 인터넷 접속이 작가들의 가장 큰 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탈고해야 하는 원고가 있을 때 일부러 장거리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인터넷 접속을 피해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를 비행기 좌석에 가두는 것이다. (이 방법마저 여러 기술의 발전으로 기내에서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소용이 없어지고 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기내는 글쓰기에 최상의 장소였다


나는 늘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는 상태로 글쓰기를 해 왔다. 글을 쓰려고 하는 소재나 주제가 떠오르면, 우선 검색부터 해보는 편이다. 헷갈리는 맞춤법이나 모르는 단어를 찾을 때도 책장에 사전이 여러 권 있음에도 손쉽게 인터넷 사전을 검색한다. 가 본 적 없는 나라나 도시에 대해 써야 할 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직업군을 글로 옮길 때는 현장조사 대신 인터넷의 도움을 받곤 했다. 글쓰기에서 인터넷 접속의 효용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글 쓰는데 엄청난 도움을 받았는가 생각해 보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내 사유를 깊이 있게 끌고 나가는 대신 손쉽게 남의 생각을 가져다 쓰려는 유혹을 늘 받는다. 검색을 통해 이미 본 내용들 때문에 내 글이 나도 모르게 제한을 받는다. 어떤 선을 미리 그어 넣고 절대 넘지 못하는 것이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내게 영향을 주는 수많은 글 때문에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글이 되기 쉽다무엇보다 사소한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훑다 보면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가, 글 쓸 시간을 뺏긴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에 보면 평범한 미국 대학생의 경우 평균 65초마다 하는 일을 전환하고, 어느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의 중간값은 겨우 19초였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성인도 별반 다르지 않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겨우 3분이었다. 글쓰기에 정보를 제공해 도움을 준다고 믿었던 온라인 접속이 결국 집중과 몰입을 방해하는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인 셈이다. 매일 원고를 들고 장거리 비행을 할 수는 없으니, 일정하게 인터넷 접속 금지 시간을 정해 놓는 게 절실하다. 위화 작가의 예를 봐도 본격적인 원고나 퇴고 작업을 할 때는 휴대전화를 정지시켜 버린다.


디지털 디톡스


와이파이 연결을 일부러 끊어 놓고, 휴대폰도 서랍에 넣어 둔다. 간헐적 단식을 하듯 간헐적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하는 것이다. 최소한 글을 쓰는 시간만큼이라도, 주의를 뺏는 방해물을 치워 둔다. 치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경에 보면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었더니, 텅 비어 깨끗해진 영혼에 더 많은 귀신이 들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더러운 것을 치우고 난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채우지 않으면, 예전의 더러운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 주의를 뺏는 디지털 기기를 치운 자리를 집중과 몰입으로 채워야 한다. 아무 때나 디지털 디톡스를 할 게 아니라, 확실히 글을 쓸 시간을 정해놓고 디지털과의 접속이 사라진 그 시간을 글쓰기로 빽빽하게 채워야 한다.


글쓰기를 미루고 책으로 도피하는 모습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디지털 기기뿐 아니라 책도 치워야 한다. 대부분의 작가는 다독가이고, 책을 읽는 것은 당연히 좋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막상 진짜 써야 하는 시간에는 독서마저 방해가 될 수 있다. 무기력을 숨기는 방법 중 하나가 진짜 해야 하는 일 대신 쉬운 일로 도피하는 일이다.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면서도 쓰는 일을 계속 미루고 대신 독서에 빠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쓰지 못하는 일종의 무기력증인데, 책을 열심히 읽고 있을 때는 뭔가 글쓰기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걸 깨달은 작가들은 글쓰기에 집중하는 시간에는 책마저 금지한다. 수잔 손택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글을 쓰기 위해 책을 금지한 작은 방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하고 어쩔 수 없다면 좋아하던 모습이 인상에 남아 있다. 그만큼 책은 작가들이 끊기 어려운 유혹이다.


"쓰고 있는 원고를 끝낼 때까지 책을 멀리하는 것이 정 힘들다면 가능한 한 자신의 작품과 성격이 다른 책을 골라야 한다."

도러시아 브랜디 <작가 수업> 중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걸 보고 듣고 감각해야 한다. 다양한 경험이나 많은 곳을 여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독서는 말할 것도 없이 글쓰기의 자양분이 된다. 그럼에도 막상 집필하는 그 시간만큼은 글에 좋은 이 모든 것들이 방해가 될 수 있다. 링 위에는 나와 상대 선수만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한 링 위에는 오직 나와 글 쓰는 도구만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외 어떤 것도 허락하면 안 된다.


글쓰기 감옥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 대하소설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작품을 쓴 조정래 작가는 20년 넘게 매일 14~16 시간 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글을 썼다. 이외수 작가는 아예 집에 감옥철창을 설치해 두고 집필할 때는 그 안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밖에서 문을 잠그도록 부탁했다. 위대한 작가들도 이런저런 유혹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스스로의 의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접속은 작가의 적! 연결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모든 연결을 끊자.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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