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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25. 2024

셔터를 누를까 그냥 누릴까?

글 쓰기에 사진 활용

삶의 불꽃을 활활 태우며 살아가던 순간에는, 카메라를 찾아 들이댈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그 시간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아름다웠고 아무런 미련이 없었기에. 사진으로, 증거로 남기지 않은 것에 미련이 없다.



돌아보니 정말 살면서 사진을 별로 찍기 않았다.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생방송을 하고, 스튜디오에서 녹화나 녹음을 하며, 전국 방방곡곡 또는 해외로 야외 촬영을 다녔지만, 사진이 없다. 중고 트레일러에 살면서, 나무에서 스타프루트(star fruit:괭이밥 나무 열매)를 따 먹고 그 옆으로 뱀이 지나다녔다고 말하지만 사진이 없다. 미국 50개 주 중 48개 주를 돌고, 핀란드, 터키, 그리스, 체코, 헝가리, 푸에르토리코 등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사진이 없다. 짧은 원피스를 입고 드럼을 치며 콘서트를 멋지게 해냈지만, 사진이 없다.



내가 사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기도 했고,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마저 무심히 방치한 결과, 추억을 되새기며 바라볼 사진이 별로 없다. 사진을 저장해 놓은 폴더를 열어 보면, 몇 장의 사진이 있긴 하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던 중이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사진들뿐이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찍은 아이들 사진을 제외하고는,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보통 심심하거나 그 순간에 몰입하지 못할 때였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딴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 



중요한 순간들은 모두 내 심장에 남아 있다. 비록 그 기억에 무수한 변형과 왜곡이 있겠지만, 그 기억이 바로 내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모든 화가가 다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내 기억에 살아남은 그 장면이 바로 내 작품이 아닐까. 기억에서 사라진 풍광과 경험이 더 많겠지만, 잊힐 때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사라져야 할 것은 사라지고, 남아야 할 것만 남길 수 있도록.



사진을 보다 보면 피상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네. 그래서 빛과 그림자의 놀이 같이 사물들의 윤곽을 통해서 어렴풋이 보이는 숨겨진 인생의 묘미를 보지 못하게 되는 거지. 아무리 날카로운 렌즈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그것을 담아낼 수 없어. 느끼는 대로 그것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거지…. 
-카프카




최근에 글쓰기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셔터를 자주 누른다. 그리고 가끔은 후회한다. 셔터를 누르느라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 순간에 카메라가 담아낸 프레임 안의 것들을 보느라, 놓쳐버린 프레임 밖의 것들. 차라리 충분히 바라보고, 시각 외의 다른 감각기관을 최대한 열어 감각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기억의 창고를 정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후회한다.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면 저녁놀조차 진부해져 보이는 법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저녁놀은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중



반대로 내가 놓쳐버린 어떤 것을 사진이 붙들어 놓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사진에서 예기치 못한 의외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존재감 희미한 누군가의 시선 같은 것. 사진을 촬영할 때 내 눈앞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내 뇌가 다른 걸 보느라 인식하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 사진 안에 남아 있는 걸 발견할 때 반갑다. 잘 안다고 여겼던 피사체를 낯설게 보도록 하는 사진들도. 사진을 보며 프레임 밖을 상상하거나, 낯선 시각으로 시작하는 건 글을 쓸 때 언제나 도움이 된다. 



사진의 홍수 속에 무의미하게 사라질 사진 대신 정말 놓치기 아까운 귀한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그 사진을 꺼내 보며 많은 것을 추억하고 그 추억 위에 이야기를 더해 글을 쓸 것이다. 더 바라기는 카메라를 들 여유나 이유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초집중으로 몰입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결국 내 글은 내 삶을 넘어갈 수 없을 테니까.




나는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을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나는 사진에 담고 싶지 않은 것을 그린다.” 
-만 레이





결국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사진으로 남기고, 무엇을 누리며 심장에 새길 것인지. 무엇을 지금 쓰고, 무엇을 묵혔다 나중에 쓸 것인지.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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