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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11. 2024

나는 맘껏 엉망으로 쓸 거야

비평이나 비난에 대응하는 자세

최근에 내가 쓴 칼럼 ‘외도할 자유*’ 때문에 신문사로 항의하는 독자가 있었다는 말을 편집자에게 들었다. 그 글 때문에 심지어 지인이 내가 외도 중이라고 오해하는 일까지 있었다. 칼럼 쓰는 일을 당장 때려치울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작가는 천행이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는 직업인데, 일일이 해명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고 생각했다.
(장아이링 - <상하이에서 온 여인> 중)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100% 동의하고 마음속에 잘 새겨두었음에도 비평을 넘어 비난을 받을 때, 가슴에 상처 입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편집자가 그 말을 전한 건 독자의 항의를 들었을 때가 아니라, 몇 달 후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다른 칼럼에서 '외도'라는 단어를 발견했을 때였다. 편집자는 자유롭게 쓰라며 내 글을 응원한다고 말했지만, 그 의도는 달리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칼럼을 쓸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검열해야 한다. '외도'와 같은 금기어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모든 작가들은 작가의 자격이 있는지 공격을 받는다.
그것을 무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작가로서 살아남는 한 방법이다.
-줄리아 카메론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중


비평가의 비평이나 독자의 항의 같은 공격을 무시하기 위해, 작가는 '제대로'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 독자나 비평가의 입맛에 맞게 쓰라는 말이 아니라, 남의 눈에 엉망일지라도 맘껏 충만하게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두려움이 그렇듯 글쓰기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을 때 두려움은 커진다. 비평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이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글을 쓰는 사람은 남의 글을 함부로 비평하지 않는다. 작가가 비평에 상처 입을 때 역시 스스로 잘 쓰지 '못'하고 있다고 여길 때다. 자기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충분히 쓰고 있다면, 남들이 뭐라 비난해도 두렵지 않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넉 달이 지났다. 지난 넉 달 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봄이 오듯 조금씩 회복되어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지만, 글을 쓰는 기능만큼은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열렬히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던 독자를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책이 나는 제일 좋더라. 책이 예쁘고 글이 정말 아름다워.
네 책을 아무나 안 주고, 믿음 좋은 사람,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만 찾아서 선물했어

체중이 7, 8킬로나 빠져 홀쭉해진 어머니가 환한 미소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하신 말씀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자, 다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로 들을 수 없는 말이다. 어머니 없는 세상에서 글을 쓰자고 생각하니, 방패를 잃어버린 채 전장에 나와 쏟아지는 화살을 맞고 있는 기분이다.



다시 쓸 수 있을까. 솔직히 두렵다. 첫 책이 출간되고 작가가 되었을 때, 세상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다. 내게 다시 목소리를 들려주실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 내가 다시 글을 쓰기를 바라며 응원하고 계실 어머니. 


잔뜩 위축된 마음으로 당장 멋진 글을 써내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엉망이라도 괜찮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 나는 맘껏 엉망으로 쓸 거야. 처음에는 거칠고 조야한 문장들이 튀어나오겠지만 괜찮다. 맘껏 충분히 쓰다 보면, 문장을 다듬을 수 있는 눈과 힘도 회복할 수 있으니까.





*외도할 자유

https://brunch.co.kr/@yoonsohee0316/987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yoonsohee0316/1016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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