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인생도, 사랑도 시든 게 아니라네

by 윤소희

첫사랑


-김용택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 옷도


아, 꿈같던 그때

이 세상 전부 같던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처럼

새로 피는 깊은 산중의 진달래처럼

아, 그렇게 놀라운 세상이

내게 새로 열렸으면

그러나 자주 찾지 않는

시골의 낡은 찻집처럼

사랑은 낡아가고 시들어만 가네


이보게, 잊지는 말게나

산중의 진달래꽃은

해마다 새로 핀다네

거기 가보게나

삶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그 꽃을 보러 깊은 산중 거기 가보게나

놀랄 걸세

첫사랑 그 여자 옷 빛깔 같은

그 꽃 빛에 놀랄 걸세

그렇다네

인생은, 사랑은 시든 게 아니라네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우린 사랑을 잃었을 뿐이네



“형님, 이것 봐! 비누 거품이 이렇게 커졌다.”

“잘, 봐, 내가 더 크게 만들어 볼게.”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두 녀석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에 거품을 잔뜩 묻혀 비비고 비비더니

두 손으로 소중히 그러쥐고

입으로 불어 비눗방울을 만든다.


세상에 이런 신기한 일이 없다는 듯 놀라는 표정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게 있을까 하는 듯 황홀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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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라는 걸 실감한다.


나는

사랑이,

그리고 내가 그저

‘낡아가고 시들어만 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다만 놀라움을 잊었을 뿐.


후다닥 손을 씻고 나오는 대신

오늘은 오래도록 정성 들여 비누칠을 해

거품을 내고

조심스럽게 불어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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