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by 윤소희

봉숭아


-도종환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 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밤마다 썼던 수백 통의 편지,

함께 나눠 끼었던 실반지,

간직하길 원하며 서로 주고받았던 작은 선물들.

모두 간 곳 모르게 사라졌지만…


‘열에 열 손가락 핏물 자국’만은

이리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지워지지 않는다.


십여 년이 흘렀는데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진 한 장이

문득, 내 손안에 다시 돌아왔다.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미래를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웃고 있는 나.

그리고 그 옆의…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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