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아내를 괴롭혀, 다 나와!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이 시를 읽으니 영화 <관능의 법칙>이 떠올랐다.
40대 중후반쯤으로 짐작되는 세 명의 여주인공을 통해 ‘오후 4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
애인과의 알콩달콩, 로맨틱한 연애도
28살 젊은 연인과의 열정적인 연애나 섹스도
부럽거나 내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한 장면.
“거봐, 우리 나이에 누가 따라오면 그건 퍽치기라니까!”
나이트에서 눈길을 주는 남자에게 은근히 기대하며 걸어가다 정말 퍽치기를 당해 쪽팔리고,
경찰서에서 퍽치기의 거짓 진술에 억울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이닥쳐 퍽치기와 형사들에게 주먹질하다가
결국에는 철창에 갇히는,
그 남자를 보며 눈물이 났다.
누가 내 아내를 괴롭히냐고, 다 혼내주겠다고 큰소리치다 수갑을 찬 그 남자는
남편.
‘오후 4시’쯤 들어서면,
아버지와 오빠의 중간 촌수쯤의 가족으로
무던한 사이가 되기도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 줄 거라는
그 든든함.
어쩐지 지금은 그 어떤 황홀함과 로맨틱함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