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 짧게 만났지

여름날은 간다_한강

by 윤소희

여름날은 간다


-한강



검은 옷의 친구를 일별하고 발인 전에 돌아오는 아침 차창 밖으로 늦여름의 나무들 햇빛 속에 서 있었다 나무들은 내가 지나간 것을 모를 것이다 지금 내가 그중 단 한 그루의 생김새도 떠올릴 수 없는 것처럼 그 잎사귀 한 장 몸 뒤집는 것 보지 못한 것처럼 그랬지 우린 너무 짧게 만났지 우우우 몸을 떨어 울었다 해도 틈이 없었지 새어들 숨구멍 없었지 소리 죽여 두 손 내밀었다 해도 그 손 향해 문득 놀라 돌아봤다 해도




며칠 전 문득 차창 밖으로 하이웨이의 낮은 울타리를 따라 주욱 피어 있는 장미꽃들을 스쳐가며 보았다.

거칠고 메말라 황량한 내 가슴에 문득, 찾아 들어온 들장미.

분명 절로 나고 자란 게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야생’이라 할 수 있는 들장미들.


흠칫 놀랐다.

팔딱팔딱 뛰는 심장 같은, 그 다듬어지지 않은 꽃송이들을 보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버린 그들을 아쉬워하며 고개를 한없이 꺾어 돌려봤지만

그랬다 해도


우린 너무 짧게 만났지
틈이 없었지 새어들 숨구멍 없었지


살아있구나.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저게 바로 사는 건데.

속으로 중얼거려 보지만,

'난 그 잎사귀 한 장 몸 뒤집는 것 보지 못’하고 그저 스쳐갔을 뿐.


장미 4.jpg 들장미들은 너무 빨리 스쳐가 사진을 찍지 못했고, 아무리 뒤져도 생생한 들장미 사진은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