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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Jul 02. 2022

[배우일기] 단지 잘하고 싶다 (1)

왜 연기하세요? 그냥요.

얼마 전 SNS의 알고리즘이 이끄는 곳으로 우연히 갔다가 배우이자, 액팅 코치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언뜻 봐도 꽤 많이 배운 사람이었는데 무료로 연기 워크숍을 진행한다고 하지 않는가. 호기심이 일어 그 사람의 인스타를 둘러보고, 띄워놓은 링크에도 들어가 어떤 수업을 진행을 한다는 건지 살펴보고, 제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글들도 읽었다. 특히 내 눈을 이끈 건 한 사람이 진행한다고? 싶은 다양한 수업내용들이었는데, 보이스, 피지컬시어터, 대본분석, 오디션대본, 뷰포인트, 즉흥...


... 뭐지? SNS 피드만 슬쩍 둘러봐도 직설적이고 전투적인 태도를 지닌 아주 독특한 사람이었다. 실은 그게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사람이 꽤나 많은  하잖아. 튕기듯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사람이 띄워놓은 링크로 들어가 구글 폼에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막힘없이  내려갔다. 질문지는 대게 이런 것들이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어떤 연기 고민이 있나요?' 등등 어렵지 않은 질문들. 연기 고민 같은 거야 직면하고 있는 문제고 수없이도 고민했기에 객관적이게, 심지어는 냉기를 머금어 작성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자 모두가 묻는 질문도 당연히 있었다.

'왜 하고 싶으세요?'


'단지 잘하고 싶습니다.'


이유 따위가 뭐 얼마나 거창해야하나. 지긋지긋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썼으려나?


딱 하나 안 쓴 것도 있다.

‘그리고 실은 당신이 궁금하기도 하거든요.’


'네가 선생을 선택하듯 선생도 너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지 않으면 너와 만날 일 없다. 그렇게 선전포고를 한 자에게 신청서를 보냈고 머지않아 유월을 마무리하는 주에 워크숍의 주인에게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뜨겁고 물먹은 여름을 맞이하는 7월의 첫날, 자신을 부르는 단어로 '요정'을 선택한 자의 워크숍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4시간의 긴 워크숍이었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22년의 몇 없는 재빠른 시간들 중 하나였다. 7월 1일, 촘촘한 4개의 일정들을 다 소화하고도 피곤하지 않은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워크숍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이 글은 단지 투정이 아니다.





근래에 들어 나는 발화를 하는 프로세스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온 신경을 그쪽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사를 할 때 내뱉는 숨이나 말이나 말을 하기 전 뇌를 거치는 생각 회로, 나의 신체적 반응, 정말 모든 것을. 근데 모르겠는 것이다. 아니 말을 할 때 어떻게 하더라...

말 할 때 그냥 하잖아? 알아, 나도 안다고. 연기를 하는 내 영상을 한참 돌려보다가, 고민하다가, 인상도 찌푸리다가, 다시 고민하고 시도해보다가 급기야 아니 돌겠네, 말하는 방법 따위를 대체 왜 생각하고 있는 거지? 하고 팡 터지는 순간에 이르게 되는데 그럼 아주 하찮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남 마음에 드는 일보다 내 마음에 드는 일이 훨씬 어렵다. 


이유는 너무 자명하게도 알고 있다. 지난 연습 일지에 모든 게 적혀있으니까. 내가 짤막하게 써놓은 글들을 보면 참 재미있고 심술이 난다. 고새 필체는 좀 더 성숙하게 변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고민과 문제점은 일치한다는 점에서 어이가 없다. 정말 짜증나는 건 변한 필체만큼 고민자식도 그만큼 아주 고급지고 때깔 좋은 - 근데 해결 되지 않은 - 고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처절한데 쟤는 아주 고상해서 심술이 난다. 지난 연습일지가 재산인 건 알겠는데 보고 있으면 뿌듯하기보다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레벨업은 내가 되어야 하는데, 왜 네가 되니... 어쩌다 포탈로 잘못 들어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보스를 만난 게임 속 캐릭터가 이런 기분일까?


매체연기로 넘어오면서부터 몸을 쓰는 연습보다 텍스트를 한정된 프레임 안에서 구현해내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했다. 무대 연기를 기반으로 학업을 했었던 입시시절이나 대학시절을 전반적으로 거부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배신감도 들었고, 무엇보다 어려웠고, 그 작은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무대를 누비는 것과 같은 에너지로 자유롭게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제한된 확장 따위 배워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잘하는 것은 온데간데없고 못 하는 것만 알맹이로 남아 내게 보여지는 날들이 허다했다. 그렇다고 내가 잘하는 것들을 버릴 순 없지. 그러나 내가 잘하는 것들을 구현하려면 새로운 스킬(?)이 필요했다. 이론상으론 알겠지만 아무리 해도 똑같은 걸 몇백 번씩 하는 날들이 여럿 지나갔다. 아무리 대사를 내뱉어도 나가는 방식이나 목소리 같은 것들은 발전할 줄 모르고 여전했다.


이렇겐 안 된다, 해봤는데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라고 느껴버린 이상 안 되는 걸 더 이상 계속 내뱉기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벽은 안 깨지는데 눈은 갈수록 높아지고 그림자처럼 갈증과 불안도 증폭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 단단한 벽을 깨고 해방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매체 쪽 관계자들에게 주장 되어지던 무대 연기식 훈련을 다시 해야 된다, 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이 해답은 오로지 '신체'에서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 말 그만. 신체훈련을 해야 한다. 이왕이면 배우를 대상으로 한.'


신체를 강화하기 위해서 액션 아카데미를 지속적으로 다니기로 결심했고, 내가 원하는 신체훈련을 제공해 줄 선생님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치 입시생인 것처럼 다시 호흡과 발성을 연습하고, 연습 일지를 작성하는데 또 다시 애매한 난관에 부딪혔다.


'잠깐,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정말 처음처럼 하고 있잖아. 정말 처음'


0퍼센트의 기량치를 가진 훈련생이 하는 방법과 똑같이 다시 훈련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처음과 같은 태도와 훈련의 수준과는 다른건데. - 고 생각하던 찰나, 요정 워크숍이 마법처럼 SNS 알고리즘을 타고 와 내 앞에 도착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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