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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Feb 12. 2024

타이베이 여행 2

둘째날 - 시먼딩, 중정기념당, 타이베이대학교, 라호허제 야시

여행은 힘들다. 하하하!     


밀도 있는 여정이 아니었는데도, 이만 오천 보를 걸었다. 고삼 기간 동안 발톱 통증을 안고 살았던 큰아이와 발뒤꿈치가 아파서 오래 걷지 못하던 막내에게는 꽤 고통스러운 하루였을 것이다.      


하룻밤을 묵었던 호텔이 자리한 시먼딩을 기점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정오가 되기 전, 개점을 준비하느라 부산스러운 서울의 명동 같은 거리에는 이미 여행자들이 몰려들어 파도처럼 밀렸다가 쓸려가고 있었다. 인파에 휩쓸려 걷다 보니, 시먼딩의 명소인 무지개 거리여서 자동차와 행인들을 피해 급히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리고 굳이 찾지 않았는데도 눈앞에 나타난 음료 맛집 행복당에서 불맛을 낸 버블티를 사서 마셨다. 확실히 한국에서 먹던 버블티보다 맛이 있어서 막내의 눈이 동그래졌다.      



여행자인 우리는 계속 걷기로 했다. 다른 나라, 타이베이 중심지 거리는 낯설고 신기하기만 해서 두리번거리며 걷는 시간이 흥미와 흥분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타이베이는 아열대 국가의 수도라 그런지 바둑판처럼 반듯반듯 줄지어 서 있는 건물마다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회랑길이 주욱 연결되어 있어서, 햇빛을 피해 걷기에 편리했다. 핸드폰을 열어 구글맵을 보며 중정기념당까지 걸었다. 손바닥 안 작은 지도 위에서는 짧은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먼 거리였다. 게다가 초행길, 헤매기도 해서 점점 다리가 무거워졌다. 고딕 양식의 뾰족하고 높은 첨탑이 솟은 위압적인 총통부 건물 옆을 걷다가 앞에 놓인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이름도 모를 공원 한편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아직 컴퓨터로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 맺힌 장면은 대만을 특정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다. 제주도의 담팔수처럼 아열대의 특색있는 나무들을 도로 양옆으로 심어 놓아 인상 깊었다. 덩굴들이 서로를 얽어 나무가 되어 창공으로 가지들을 뻗어 내었고 수염처럼 하얗게 나풀거리는 가늘고 긴 가지들을 지면으로 드리운 모습이 신령스러워 깊은 밀림에서나 볼 것 같은 나무들이 가로수라니, 한겨울에 있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더운 나라를 걷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첫 관광지로 삼은 중정기념당은 압도적일 만큼 거대했다. 큰 아치형의 ‘자유광장’이라는 현판을 단 패방을 지나면 왼편으로 국가음악청을, 오른편으로 국가희극원을 거느린 기념당이 높은 지반 위에 굳건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정문부터 넓고 깊게 이어진 광장길과 기념당을 향해 오르는 89개의 계단은 걸어서 기념당을 향하는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경외심을 심어주고자 하는 인위적인 장치 같아서 걷는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대만의 국부인 장제스를 향한 의도적인 경외심을 심기 위한 것 같은 길 위에서 이곳이 미국의 링컨 기념관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다는 것, 건물이 바라보는 방향이 대륙 수복 의지를 표현해 중국이 있는 서북쪽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소설 1984의 명구가 새삼 떠올려졌다. 곧은 길과 광장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마네킹처럼 굳어있는 근위병들이 병립해 있는 장제스 총통의 커다란 좌상 위로 윤리, 민주, 과학이 돋을 글자로 대만의 국시인 것 같았는데, 공산당에 패배해 대만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장제스 총통의 마지막 자존심처럼 느껴졌다. 이 자존심이 후대에 흘러 작은 섬 대만이 중국에 복속되지 않고 점점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아 마네킹 같다고 느꼈던 근위병들의 교대식까지 지켜보았는데, 대학을 입학하면 일이 년 내 입대해야 할 큰아이를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아들! 군대 가서 저런 것 시키면 해야 해! 잘할 수 있겠어?”     



점심밥을 먹으러 융캉제로 향했다. 우리나라에도 분점이 있을 만큼 유명한 딘파이펑 본점에서 딤섬을 먹기로 했는데, 본점은 테이크-아웃만 된다고 해서 그 옆 분점까지 걸어가 대기까지 하는 수고를 곁들이며 딤섬을 맛보았다. 딤섬 2종류와 우육면 등을 주문해 먹었는데, “아주 맛있어. 끝내주네”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본토에서 먹는 대만 요리에 꽤 만족스러워했다. 조금 느긋하게 여행하고자 융캉제 거리에서 망고 빙수를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행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빙수는 주문하자마자 나왔지만 앉아서 먹을 테이블이 없어서, 서서 먹는 불편을 감수했다. 게다가 다들 지친 모습이라 잠시 쉴 카페를 찾았는데 근처 카페마다 사람들로 북적여 몇 번을 실패하고 나서는 우버 택시를 불러 타고 국립 타이완 대학에 가게 되었다.   

  


대만 최고 지성의 요람이라는 타이완 대학은 방학이라 학생들이 많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엄숙한 자태로 자리해 있었다. 발이 아파서 자주 주저앉는 막내와 함께 대학 건물앞 계단에서 쪼그려 앉아있다가 살며시 학내 작은 호수를 둘러보고 대학 구경을 마치려 했다. 다행히도 호수 쪽이 학생들의 생활공간인지 배구와 농구를 하는 학생들이 뿜어내는 활기를 우리 가족 역시 마실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호수공원에서 오리와 청설모, 수면을 노니는 잉어들과 함께 나긋한 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평온한 캠퍼스의 분위기를 만끽하니 비로소 속 편한 여행자가 되었다.     



지치고 피곤했기에 다시 우버 택시를 불러서 호텔로 돌아왔다. 잠시 쉬고 야시장에 가기로 했는데, 인솔자인 내가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침대에 잠깐 누웠는데, 시간은 두 시간 이상 훌쩍 지나있고, 잠들지 않은 아이들은 내가 깨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음 여정을 고민하다가 계획대로 라호허제 야시장에 갔다. 이만원 정도의 거금을 들여 다시 우버 택시를 불러 타고 이십여 분간 달려 도착한 라호허제 야시장은 오길 잘했다 싶도록 번화하고 북적이는 곳이었다.     


우리는 떼를 이뤄 유영하는 정어리 떼의 일원이 된 것처럼 사람들에 파묻혀 야시장 순례를 시작했다. 도로 중앙에 자리한 노점 좌우를 순례하며 오징어 튀김과 타코야끼, 파인애플과 홍과, 양념 조리된 닭꼬치를 먹었다. 하나씩 뜯어보면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었는데, 여행자 된 우리는 서슴없이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야시장을 즐겼다. 한 시간 넘는 야시장 투어로 눈요기와 든든히 배를 채웠고 바로 옆 화려하게 지어진 도교 사당인 자오궁을 둘러보았다. 호텔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타보자고 의기투합해서 송산역 기차역으로 갔다. 여기서부터가 난관이었다. 교통카드로 쓸 수 있는 이지카드를 어디에서 사야 할지, 충전을 얼마 해야 하는지부터 헷갈려서 난민처럼 여기저기 떠돌다 간신히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손짓발짓 해가며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들어간 송산역.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입장한 역사가 지하철역이 아닌 철도역이라는 것이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분위기를 감지한 우리는 물어물어 지하철역을 찾아 헤맸다. 아이들도 다음날까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좋은 경험을 했는데, 당시에는 내 머릿속 계획이 백지처럼 새하얗게 된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하철 개찰구를 찾았고 다행히 종점역이라 편하게 앉아서 시먼역까지 왔다. 그리고 심야에도 흥청대는 시먼딩 거리를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이게 여행 첫날의 풍경이다. 편하고 느영나영 여행하자고 다짐했는데, 어쩔 수 없는 강행군이 되어버렸다. 이유로는 타이베이 관광지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고, 여행자인 우리는 여행자들이 몰려다니는 곳에서 이리저리 치였지만 안전감을 가졌다는 것이겠다. 그리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지식이라야 모두 다 관광객들이 공유하는 정보가 전부라서 행동반경에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제주에 온 외국 관광객들이 연동의 번화가만을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그러면서 제주에 사람 참 많네 하는 것처럼.     

이틀차 여행은 버스 투어다. 일명 ‘예스폭진지’ 패키지 하루 여행인데, 시간 맞춰 시먼딩 지하철역 출구에 가면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나도 오늘은 마음을 놓고 편히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자유라며 패키지여행이 싫었지만, 자유일정에 넣은 패키지 일일 투어가 꽤 마음에 든다. 내가 조금 쉴 수 있으니 말이다. 초행길에서 매번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번민에서 오늘은 자유로울 수 있겠다.     

나이를 먹어가니, 가이드가 인솔하는 여행을 따라가는 것도 괜찮겠다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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