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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려동물PD Jan 27. 2021

CCRT와 재활전문 수의사

강아지 재활 치료의 필요성과 국내 상황

CCRT 취득을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다

우선 CCRT 란 미국의 재활치료사 자격증을 말합니다. 기초 교육부터 여러 단계의 교육을 거쳐 인턴쉽 과정을 마치고 시험을 본 후 CCRT자격증을 취득하게 됩니다. 


외과를 전공하고 외과 수의사로 일하다 보니 수술 후 재활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특히 신경외과, 정형외과 환자들은 수술 후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술 후 보행장애를 겪는 아이들과 여러 질환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다가 재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와 같은 뜻을 가진 임상 수의사와 교수님들이 계셨고 재활 학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학회를 설립할 때에는 국내에서 동물 재활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재활치료 분야가 활성화된 미국의 재활 전문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중에서 CCRT 교육이 가장 체계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판단하여 여러 수의사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러 미국으로 날아갔습니다.


당찬 포부로 시작했지만 CCRT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국내에서 공부할 때도 전문서적은 대부분 영문이기 때문에 전문용어에 대한 이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질병과 치료의 정의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와 실제 현장에서의 활용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CCRT 교육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교육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고, CCRT 운영진에게 영상 촬영 허가를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고 미국 마이애미까지 20시간 가까이를 날아왔다, 국내에 돌아가 영상을 다시 보고 공부하고 싶다 라는 말로 운영진을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교육을 성공리에 마쳐야 대한민국에 돌아가서 CCRT의 교육 체계의 필요성과 동물 재활 선진국의 지식을 온전히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영상 촬영을 허락해주셨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 영상을 보고 또 보며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저희가 교육을 마치고 난 후에 국내에도 CCRT가 알려지게 되었고 여러 수의사들이 교육을 받으러 미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낯선 나라, 낯선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결과를 생각하면 뿌듯하고 보람찬 일입니다.


CCRT 교육 과정은 그 내용 자체로도 알차고 가치 있었지만 동물 재활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해 직접 눈으로 보고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CCRT 인턴쉽으로 참여한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도 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질환으로 재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중에서 허리 디스크 수술 후 뒷다리 마비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내원한 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의료진은 10여 분간 아이가 집에서는 어떤 운동을 하고 일상생활은 어떻게 하는지를 꼼꼼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후 본격적인 재활 치료가 시작되었고 아이가 처음으로 스스로 걸음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장면을 본 모든 의료진과 보호자가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갓난아이가 첫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때의 뭉클한 마음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재활 치료는 기술적인 치료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치료구나, 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치료 시간이 아닌 아이의 일상생활까지 꼼꼼히 체크하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Love Therapy라는 말을 직접 눈으로 본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도구를 이용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아이를 걷게 할 수 있구나, 눈가가 시큰했습니다. 의료진과 보호자가 반려견을 진심으로 사랑을 담아 대할 때, 그 특별한 마음이 기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수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다시 한번 느끼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CCRT 자격 취득이라는 말 보다 중요한 건, 그날 제가 보고 느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 동물 재활에 대해서


미국에는 CCRT를 비롯하여 동물 재활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 과정 및 심도 깊은 연구가 있습니다만 국내 동물 재활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은 5년 남짓입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여 재활을 해오던 수의사들도 있었으나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보편적으로 진행하지는 않았습니다. 2017년도 CCRT 교육을 받을 때, 미국에는 이미 많은 전문의가 활동하고 있고 재활 치료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도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반려동물 문화가 훨씬 더 빨리 발전했고 의료 시장도 크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국내 동물 재활의 경우, 시작된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실외활동과 중 대형견의 비중이 많은 미국과 달리, 국내의 반려견들은 소형견 위주에 대부분 실내생활을 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종과 환경의 차이는 발생하는 질환의 종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국내 소형견들은 활동량이 적어 근육과 관절이 취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병원을 방문하는 소형견 중 많은 아이들이 슬개골 탈구나 그와 관련한 근골격계 질환 때문에 수술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특성은 강아지 재활에서도 소형견에게 자주 발병하는, 근골격계 질환 위주의 재활 치료에 대한 수요로 이어집니다.


한 예시로, 최근에 치료한 아이들 중에서 6개월 된 어린 포메라니안 환자가 있었습니다.

대퇴골(넓적다리 뼈) 머리 부분에 허혈성 괴사가 있었고 슬개골 탈구까지 있는 아이였습니다. 나이가 너무나도 어리고 수술 후 살아갈 날이 너무나 많이 남은 아이이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한참 성장기에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아무리 수술이 잘 되더라도 재활에 성공하지 못하면 수술한 다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강아지는 네 발로 걷기 때문에 각 발에 주어지는 무게중심과 네 다리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합니다. 한 다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머지 다리에 무리한 힘이 가해져 자세 이상과 근골격계의 비정상적인 발달로 이어져 관절 질환, 근육 통증, 허리디스크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호자에게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수술 후 재활 계획까지 고민한 끝에 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6개월 작디작은 포메라니안 아이는 기특하게도 힘든 수술을 잘 이겨내 주었고 3개월간 주 2회씩 재활치료를 진행하여 결국 정상적인 보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동물에 대한 치료는 단순히 수의사의 테크닉과 값비싼 장비만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재활을 마치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보호자와 웃으며 병원을 떠나는 그 모습은 언제나 뭉클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국내 반려동물 재활은 아직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운동의 필요성, 방법 등을 아직 알고 있지 못하는 보호자들도 많고 연구되지 않은 사례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껴집니다. 반려동물이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는지, 적절한 스포츠 활동이 반려견 문화의 성숙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더 널리 알리고 발전시키는 것이 재활전문 수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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