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순 김치
시어머니가 내게 보내는 사랑의 징표
“또?”
나는 저녁 밥상을 준비하며 고구마 순 김치를 접시에 옮겨 담았다. 어머니가 주셨다는 내 말에 놀란 남편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큼지막한 김치 통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바로 이번 여름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고구마 순 김치다.
고구마 순 김치. 언제부터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여름이면 꼭 먹어야만 하는 소울 푸드가 된 지 꽤 오래됐다. 누군가에게 더운 여름을 이길 힘이 삼계탕에 있다면 내게는 단연 고구마 순 김치다. 아이를 낳고부터 더위를 타기 시작했고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것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고구마 순 김치를 담가주던 친정엄마가 몸이 아팠다. 그해, 나는 고구마 순 김치를 직접 담갔다. 겁도 없이 욕심 있게 손질되지 않은 고구마 순을 사서 밤새 껍질을 벗겼다. 엄마가 해 준 맛과 냄새를 복기하며 양념을 만들어 고구마 순 김치를 완성했다. 친정엄마와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처음치곤 꽤 맛있게 잘했다고 칭찬을 받고 나는 매년 고구마 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어머니가 고구마 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때가. 평소 고구마 순 김치를 담가 드시지 않았던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나를 위해 고구마 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올해는 텃밭에 고구마를 심으셨다. 그 고구마가 이번 여름 어머니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님과 함께 40분 거리에 있는 텃밭에 수시로 다녀왔다.
“괜히 저 때문에 더운데 고생하셨네요.” 나 때문에 이 더운 날 애쓰신 시부모님을 생각하니 죄송스러웠다. 올해 너무 더워서 힘들었는데 고구마 순 김치 먹고 힘이 났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먹고 다 먹으면 또 말하라며 작은 반찬통에 한 주먹 남기고는 가지고 가라고 통째로 싸 주셨다. 봉투 끈을 묶는 어머니의 손 밑이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얼마 전, 나는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이틀 동안 고열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내 걱정에 몇 번이나 전화를 하셨다. 며칠이 지났다. 어머니가 맛있다고 했던 집 칼국수가 생각나 포장해서 시댁으로 갔다. 어머니는 내게 커다란 김치 통을 꺼내 보여주셨다. “이거 가지고 가. 아파서 얼굴이 빠졌네. 잘 먹고 아프지 마. 응?” 통 안 가득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순 김치였다.
결혼 전, 내 몸이 아픈 것에 관해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남편과 고민을 나눈 적이 있다. 걱정하던 내게 그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 엄마는 절대 뭐라고 하실 분이 아니야. 자기를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대해 주실 거야. 자기 몸에 좋다는 거 다 찾아서 더 좋은 거 많이 해 주실 분이야.” 그는 내 아픔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또 괜히 위축될지 모르는 나를 배려해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가 부러웠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일말의 의심은 9년 내 결혼생활 중에 사라졌다. 그의 말이 옳았다. 어머니를 향한 그의 믿음대로 어머니는 동일한 사랑을 내게 보이셨다. 그리고 그가 내게 보인 사랑이 어머니를 꼭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내게 보여 준 사랑의 깊이도.
진한 무더위의 바람이 식어가고 내가 사랑하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10월 초, 책이 나오기 전. 나는 어머니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마음의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소화제. 지친 몸을 깨우는 마법의 약. 어머니가 내게 보내는 사랑의 마음. 그 모든 것이 담긴 고구마 순 김치는 올 가을 나를 용기 있게 할 것이다.
나는 오늘. 마지막 고구마 순 김치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아마도 이 접시에 놓는 고구마 순 김치가 오늘의 밥상에 놓는 이번 여름 마지막 보약이 될 것이다. 세 번의 계절이 지나 또 여름이 온다는 신호가 울릴 때쯤 반가운 전화가 올 것이다.
“아가, 너 좋아하는 고구마 순 김치 담갔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