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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무암 Dec 02. 2023

바위 아래에서 하는 생각

약이 다 떨어져 간다. 선생님이 이야기한 하루걸러 한 번씩 약을 먹는 것은 아직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가끔 너무 늦게 일어나서 혹은 약을 회사에 두고 와서 하는 수 없이 먹지 않은 날, 내 기분은 한없이 가라앉고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 우울은 둘째치고 이겨낼 수 없는 무기력이 바위처럼 나를 짓누른다. 사실 오늘 병원에 가서 이런 나를 설명하고, 다시 약을 처방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일어날 수 없어서 그저 눈만 깜빡이다 다시 잠이 들었고 병원에 가지 못했다. 다음 주에는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데. 걱정이다.


함께 하는 연구과제에 민폐를 끼치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스터디를 시작할 때, 시야를 넓히고 애매한 것이 선명해졌던 콘퍼런스를 들을 때까지는 이번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필요한 것을 많이 얻었으니, 정리만 잘하면 되겠다고, 걱정이 없다고. 그런데 그걸 할 수 없다. 어느 정도 내용이 파악된 자료를 다시 봐도 이것에서 내가 추출하려던 핵심을 뽑을 수 없고, 자료를 한 페이지도 만들지 못한다. 모니터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해져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번아웃이라기엔 내 업무량이 전에 비해 너무 적다. 번아웃을 겪고 있다고 느낄 때는 오히려 최소한은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 있게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도 해내지 못함에 지친다.


치료를 받은 지 일 년이 넘어가고 있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얼마나 더 나아져야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내 모든 불완전함을 인정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나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를 해낼 힘은 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나에게 사람답게 사는 것 이상을 요구하고 있는가?


동물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여기서 출발했다. 그저 살아가기 위한 행동들을 하면서 가끔 마주하는 기쁨들을 즐기고, 혹시 그것을 반복할 방법을 알게 된다면 반복하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살아가기 위한 행동을 하는. 오늘 내가 왜 살아있는지를 고민하지 않는, 그저 스스로 존재하고 있으니 마주하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뿐. 살아가는 동안 체득한 것과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들로 살아가다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과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그저 ‘살아있음’ 만을 생각한다면 나의 무기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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