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더하기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주얼페이지 Nov 11. 2022

나의 두려움이 우리의 아침을 잡아먹었다.

두려움은 전염이 되고

아이를  때까지 불안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는 다행히 나의 손을 잡았고, 계속되는 나의 질문을 듣고만 있었다. 애가  나는 분위기 전환 삼아 오늘 간식은  먹었냐고 물었다. “초콜릿 우유와 내가 싫어하는 붕어빵 먹었어라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이제 아이의 입에서는 말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어제 아침, 잠에서 깬 둘째가 내게 다가오는 자세며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오늘도 힘든 아침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둘째가 지난달부터 갑자기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 이제는 이유를 알게 됐지만 한동안 아침마다 어르고 벼르고 온갖 말을 쏟아내면서, 아이 눈치를 보며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어제는 아침 내내 뾰로통하게 있어서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양치질을 서둘러하는 바람에 본인만의 루틴이 깨졌다. 울음이 터졌고, 동작이 굼떠지기 시작했다. 피가 마르는 기분. 회유 반, 협박 반으로 재촉해서 유치원 버스 앞까지 끌고 왔더니,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버텼다. 눈물만 펑펑 쏟으면서 내가 하는 말엔 고개만 도리도리 하고 있었다.


두 마음이 싸웠다. ‘내 차에 태워 보내도 되는데 굳이 버스를 태워야 하나, 아니다, 습관이 되면 안 되니까 어떻게 해서든 태워 보내야 한다.’ 후자의 마음이 더 컸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재빠르게 끄는 게 쉽지 않았다. 버스 출발 시간과 학부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기에 불이 난 원인(연소물질)을 찾을 생각을 못했다. 어떤 불였는지 알아야 소화기를 쓸 건지, 물을 쓸 건지, 담요를 쓸 건지 알 텐데…… 버티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볼 시간이 없었다.  


5분 사이에 말인지 방귀 일지 모를 말들을 생각나는 대로 쏟아냈다. “버스 안 타고 가면 다음 주 체험학습 가는 목장에 못 가, 6살은 대답을 잘하는데, 말을 안 하고 있네, 말을 못 하니깐 내년부터는 유치원에 못 간다고 해야겠어. 7살 언니가 못될 거 같아.”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커져가고, 나의 말도 빨라져 가고…


결국 버스 문은 닫혔다. 아이는 버스 바퀴가 돌아가자, 버스가 가버렸다며 발을 구르며 더 큰소리로 목놓아 울었다. “그냥 엄마 차 타고 가자.”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다급하게 아이 손을 잡고 버스를 쫓아가며 손을 막 흔들었다. 100미터쯤 쫓아갔을까. 아파트에서 나오던 차들 덕분에 서행으로 가던 버스의 도우미 선생님이 우리를 발견하셨고, 차가 섰다.


여전히 눈물 콧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보냈다. 아이는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까? 나의 협박이 이 아이에게 더 큰 두려움이 되었을까? 내가 겁을 주기 위해 말한 것들- 유치원에서 할 수 없게 되는 것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버스를 탄 것일까? 다 거짓말인데, 아이는 무서웠겠지.


나는 왜 그런 말들을 쏟아냈을까. 왜 아이를 겁나게 만들었을까. 불안해서 그랬던 것 같다. 아이가 또 버스를 안 타겠다고 고집부릴까 봐, 그래서 내 계획이 어긋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아이의 안정보다 나의 하루를 더 걱정하는 이기심. 정말 나빴다.


그냥 입 다물고 안아주고, 버스 탈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기다릴 걸,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로 괴롭혔을까. 왜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겁을 줬을까. 한 번만 허용해도 되는데,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보낸 거지.


아이는 왜 버스를 안 타려고 했을까. 내게 화가 났다면 왜 화가 났는지, 유치원에 가기 싫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불안과 죄책감에 유튜브와 네이버에서 생각나는 대로 원인이나 해결책을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담임선생님과의 전화통화를 통해서 원에 도착했을 때는 전혀 울지 않고 들어왔고, 여느 때처럼 잘 지냈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이가 나에게 여전히 화가 나있을까 봐 겁이 났다. 다행히 아이는 버스에서 내리며 손을 내게 내밀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저녁에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양치 전에 입을 한 번 헹구지 못한 게 속상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 여파로 등원 거부까지 이어졌다니, 정말 아찔하다. 아침마다 이런 상전을 모실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내 수명이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런 아이임을 알면서도 미리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서두른 게 잘못은 맞으니깐, 아이의 성향에 맞춰서 준비하면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의 두려움이 협박과 재촉의 형태로 아이에게 전해져, 아이도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의 두려움이 우리의 아침을 잡아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3분 말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