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초 Dec 18. 2022

절연한 부모에게 돌아가는 심정은 뭘까요?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절연한 부모님이 위독하다면, 병원에 갈까요? 문득, 드라마를 보다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병원에 있다면, 만나러 가게 될까요. 왜냐하면 저는 집을 나올 때부터 다시 볼 일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날 수밖에 없는 일은 강제적으로 부딪힐 때나 법정에서 맞이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쪽에서 만나고 싶어질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있더라도 장례식에 잠깐 얼굴을 비치는 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장례식도 가고 싶지 않아요. 


가끔 TV에서도 자식과 절연한 부모가 나옵니다. 때로는 절절하게 찾거나 부르기도 합니다. 과거의 사연과는 달리 만나러 갔다가 간병을 한다는 소위 "미담"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정도로 힘들거나, 그 정도로 크게 학대받은 것도 아니지만 왜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걸까요. 가끔, 어머니는 자주 저를 차갑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야 말로 가장 고통받는 존재였으면서도 아버지를 챙기냐고 물을 때나, 제게 그래도 아버지라고 말할 때마다 자주 "왜 이렇게 냉정하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스스로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이 그토록 시끄러워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흔히 있는 사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보통의 사람"에 대해 궁금해서 여러 심리학 서적을 읽다가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상적인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표정을 잘 읽지 못한다고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환경이라 그냥 감정을 신경 쓰지 않는 척 넘어가버리게 됩니다. 저도 그 집에 살면서 많은 걸 그냥 모르는 체하면서 버텼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현실도피가 제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습니다. 이제 생각하면 어떤 행동을 할 때 자극해버릴지 모르니까 내 탓으로 돌려지고 싶지 않아 계속 웅크렸습니다.


집을 나온 후에야 뒤늦게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조금씩 깨달아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의 폭이 이렇게 넓었다는 걸 알았는데 이제는 그걸 처리할 시간이 없고, 무엇보다 너무나 오래된 감정들이라 미세한 잔향만 남아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걸 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가장 들어야 할 사람은 들어줄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 감정의 잔재 중에 아직도 저를 눈물 나게 하는 감정은 역설적으로 사랑받았다는 감각입니다. 제겐 잊히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 얕은 강물 속에 실수로 지갑을 빠뜨렸는데 직접 바지 걷고 들어가 꺼내 주었던 기억입니다. 제 실수이지만 화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타인에게 어느 정도로 해줄 수 있는지가 애정의 척도라면 적어도 그날 그 정도만큼의 애정은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어느 정도는 날 사랑했다는 걸 압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관계가 달라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설령 변했다고 해도 이제는 제가 싫습니다. 그 정도의 애정은 눈송이 같은 것이라 자신의 심기에 어긋나는 순간에 바로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겪었습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미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도 겪었으니 빚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가끔 진짜 못 견디게 힘들 때마다 그 생각을 떠올리면 눈물이 납니다. 신발 대신 가슴속에 들어간 깔끄러운 모래알 정도의 감각이라, 파도가 밀려오면 덮이고 쓸려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지만요. 분명, 멀리 있다 보니 과거의 기억이 희미해져서 좋은 점이 떠오르는 것일지도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면 병원에 가게 될까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때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요? 지금의 모래알 같은 감각이 언젠가 그 사람에게 돌아갈 작은 끈이 돼버릴까요. 확실한 건 저는 과거와 달리 되돌아가는 심리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낄 수 있게 만든 것도 지금은 아버지와 떨어져 있기 때문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힘들 때마다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한 번 해보세요 : 도움의 한계를 알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