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퇴근 후에도 계속되는 두통에 혼영이라는 셀프처방을 내렸다. 선택한 영화는 <대도시의 사랑법>. '미친 x과 게이가 만났다!'라는 소개 멘트에 흥미가 생겨서였다. 사람도 몇 없는 평일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예상외로 정말 마음에 들었다.
로맨스스러운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학교 공식 미친 x 재희와 동성애자 흥수의 우정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별도,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둘은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이해자가 됨으로써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 우정과 함께 이루어지는 재희와 흥수의 성장을,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 영화는 유쾌하고도 진지하게 담아내고 있다. 오랜만에 본 마음에 쏙드는 영화인 만큼, 스포가 될 내용은 생략하고, 간단한 소감만 남겨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주제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신조어가 있다. 바로 '남이사.' 이다. (신조어라고 하기엔 살짝 오래된 감이 있지만) 남이사. 남이 뭘 하든 나랑 뭔 상관이냐, 로 풀어낼 수 있는 이 말은 사실 내 인생 모토 중 하나이다. 남이 뭘 하든 말든, 그건 어디까지나 남이 사는 이야기일뿐. 내가 상관하고 신경쓸 필요도, 권리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살다보면 넘쳐나는 타인의 평가에 숨이 막혀올 때가 있다. 직업이 어떻고, 결혼 및 연애사는 또 어떻고, 표정과 옷차림과 얼굴, 몸매는 어떻고... 아. 넘쳐나는 평가들 속에 앉아있다보면 도마 위에 오른 기분이다. 에픽하이의 가사처럼 '도마 위에서 춤을 추며 즐기'지는 못하는 나라서, 타인의 평가는 내게 언제나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칼날같다. 그런 타인의 시선에 지친 와중에 만난 영화는 유쾌한 친구의 다정한 위로 같기도 한 한편, 무의식적으로 남을 재단하려는 내게 주는 따끔한 일침 같기도 했다. 남이 뭘하건, 도덕적으로 잘못되지 않은 한 신경 끄라고. 혐오할 권리가 어디 있냐고.
영화를 보며 느낀 또다른 감상은 청춘은 역시 고단하다는 것이다. 사실 미디어에서 다루는 청춘은 푸른 봄, 인생의 하이라이트, 눈부시게 아름답고도 행복한 순간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는 어떨까? 나는 딱 20대 중반, 청춘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하지만 나의 20대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물론 아름다운 순간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치열하게 노력하던 순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 관계에 한숨을 쉬던 순간, 미숙한 선택을 후회하는 순간이 더 많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나의 지리멸렬한 청춘은. 역시나 고단하다.
이런 나에게 재희와 흥수의 청춘의 모습은 덤덤한 위로 같았다. 치열하게 사는 것도 청춘의 한 모습이라고, 지나고 돌이켜보면 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거라고, 괴로운 오늘을 보내고 나면 또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을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이 땅의 청춘들에게도, 이런 위로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유쾌하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티켓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이다. 재희의 주정을 인용하며 감상을 마친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