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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Feb 18. 2024

나의 발레 해방일지 "실패를 잘 해야 성공한다"는 말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5화

발레는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재능도 없는 주제에 이렇게 쓰기는 민망하지만.

만 2년 동안 약 1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취미발레 클래스를 하다 보니, 느낀다. 발레의 얄궂음. 조지 발란신 할아버지 말이 맞는 것 같다. "처음엔 땀을 흘려야해.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하고, 너가 정말로 운이 좋다면, (발레의) 아름다움이 널 찾아올 거야."

흥.
결국, 열심히 해도 잘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뭐 그런 말씀이렸다.

그런데 말이다.
그럼 또 어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나같은 취미발레인이니 가능하다.

발레가 직업이 된다면 (물론 그 자체로도 선택받은 극소수이지만) 가시밭길 시즌2의 시작이다.  


차코트가 공유해준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 by Sujiney

하지만 취미발레 세계에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몸이 다 굳어서 발레를 배우려니 생기는 다단한 고충은 디폴트 기본값이니 쓰면 손가락만 아프다. 지금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싶은 건, 어디에서 배워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는, 뭐가 좋은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는 답답함이다. 취미발레 커뮤니티인 '레오타드를 입는 사람들', 일명 '레사'에 학원 및 티칭 관련 고민이 많이 올라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때 나는 선택받은 취미발레인이라고 믿었다. 수년 간, 꽤 오래. "다른 곳에서 하는 발레는 멋만 부리고 몸은 비뚤어지는 발레"라면서 그랑쁠리에도 금지하고 흰색 긴팔 면 레오타드만 입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음악도 CD 하나만 매일 틀었기에, 나는 발레 클래스 음악은 그거 하나뿐인 줄 알았더랬다. 다른 정보가 많은데 왜 안 찾아봤냐고? 아픈 질문이다. 다른 영상이나 정보를 입에 올리는 건 물론, 검색도 죄악시했던 곳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

여러 사정 상, 나는 그 우물을 탈출했다. 내가 '발레 광복'이라 부르는, 내 인생에선 일대의 사건. 당시의 이야기는 예전 브런치스토리에도 썼고, 지금도 마음이 아프므로 이번은 패스. 대신 그당시 칠흑 같은 어둠 속 빛이 되어줬던 존재를 소개하려 한다.


한나 오닐(Hannah O'Neil).
파리오페라발레(L'Opera de Paris, Paris Opera Ballet) 에뚜왈(l'Etoil, 수석 무용수, '별'이라는 뜻)이다.

그를 인터뷰하거나 그의 무대를 본 적은 아직 없다. 그럼에도, 그는 내게 그야말로 '별'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프랑스 파리 출장. 나는 당시 의기소침했다. 발레 광복 직후였다. 지금까지 내가 철썩같이 옳다고 믿었던 길이 사실은 늪이었다는 것을 안 직후.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발레를 배울 자격이 있긴 한 건가, 그럼에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뒤섞여 괴로웠다.

그때, 나는 만났다. 모든 발레인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가고 싶어하는 곳, 파리오페라발레(PoB라고 부르기로 한다)의 기념품 샵에서. 한나 오닐의 영상을. 아래 사진처럼, DVD로도 나와있다.


차코트 다이칸야마는 지금(24년 2월),한나 오닐 축제 중. 모니터의 인물은 다른 PoB 에뚜왈. by Sujiney


'Hannah in Paris'라는 제목으로, 한나 오닐이 발레 클래스를 받는 걸 찍은 영상이었다. 지극히 단순하고, 현란한 카메라 워크 따위 없으며, 등장 인물도 한나 오닐과 발레 마스터 단 두 명.
그럼에도, 천상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한나 오닐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폴드브라(port de bras, 팔 움직임)와 단단한 코어와 하반신, 스스로를 엄격하게 대하는 자세에 나는 눈물이 나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발레를, 포기할 수는 없다. 과거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진 말자. 취미로라도, 발레로운 아름다움의 변두리에서라도, 꿈을 계속 꾸는 거야.   




그렇게 나는 한나 오닐 덕에 용기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이 순간은 나의 발레 해방 일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서울의 훌륭한 선생님들이 등대가 되어주셨고, 되어주시고 계시며, 되어주실 것이지만. 등대를 찾기 전에 항해를 멈출뻔 했던 나는, 한나 오닐 덕에 취미 발레라는 배의 키를 다시 잡았다.

도쿄에서 만난 올 첫 벚꽃. by Sujiney


그리고, 다시 겸허한 자세로, 바닥부터, ABC부터 다시 배워갔다. 틀리고 못하는 거, 부끄러워할 겨를이 없었다. 부끄럽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지금도 부끄러운 일 투성이다. 이번 주 최시몬 선생님의 클래스에서도 나는 마음의 소리를 들키고 말았다. 예쁘고 멋지면서 트레이닝까지 제대로 되는 그랑 순서를 내주시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하고 만 것.

"선생님, 저기...틀려도 되나요?"

왜 그랬니, 나 자신아. 창피하다. 시몬 선생님은 웃으시며 "괜찮아요, 아니라면 지금 여기가 아니라 예술의전당에서 몸을 풀고 있어야죠"라며 쾌활하게 말씀해주셨지만.

끝이 없다. 발레라는 얄미운 아름다움은. 다다음 생 정도엔 그 손길이라도 잡아볼 수 있기를.   


차코트 다이칸야마. 시그니처 핑크 색상. by Sujiney


그리하여 지금 나는, 일본 도쿄.
취미발레의 성지 차코트(Chacott) 다이칸야마 본점에 있다.

이곳에 제일 먼저 득달같이 달려온 이유. 한나 오닐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서다.   


한나 오닐 특별전 입구. by Sujiney


한나 오닐은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첫 발레 슈즈는 아마도 차코트. 첫 콩쿠르 의상은 분명 차코트였다. 어떻게 아느냐고? 특별전에 전시되어 있었으므로. 말보다 사진으로 갈음한다. 아래 사진과 사진설명을 즐겨주시길.  


한나 오닐이 콩쿠르에 입었던 차코트 의상. 어머니가 일일이 추가로 비즈를 달아줬다고. by Sujiney
발레 '지젤'의 내 최애 캐릭터, 미르타 열연 중인 한나 오닐. by Sujiney


한나 오닐은 로잔 콩쿠르(Prix de Lausanne)에 출전하면서 프랑스 PoB에서 춤추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사실 한나 오닐은 운이 좋은 편이다. 특별전과 Dance Magazine의 기사를 종합하면, 그에겐 우선 재능이 있었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있었으며, 스스로를 믿는 능력과, 안 되면 되게 하고야 마는 의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길은 아니었을 거라고, 100% 확신한다. 발레는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특별전에서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건, 한나 오닐이 소중히 간직해왔다는 오마모리, 즉 부적 인형이다. 예쁜 곰인형.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고, 모든 게 다 쉬워보이는 한나 오닐마저 부적의 힘을 빌려야할 정도로 발레는 괴롭고 외롭고 힘들고 아팠다는 반증이다. 아래 사진.


by Sujiney


차코트 다이칸야마 본점의 인스타그램에서 라이브로 중계해준 그의 Dance Magazine 인터뷰에선 이런 말도 했다. 공연 전 루틴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

"물론 있습니다. 장어덮밥을 꼭 먹어요.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그의 인터뷰 영상에서 개인적으론 제일 인상적이었던 말을 공유한다.

"중요한 건, 힘을 빼야 한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불필요한 힘이 몸, 특히 상체에 들어가 있으면 굳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움직임도 딱딱해지죠. 실패하고 싶지 않아, 라는 생각을 지나치게 하게 되면 몸에 힘이 들어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대로 실패할 수가 없어요. 잘 실패하고, 교훈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한나 언니, 사랑합니다. 멋있으면 다 언니.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용기를 얻는다. 한나 오닐 덕에. 시몬 선생님께 "틀려도 되나요"라고 말했던 나 자신을 조금은 용서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1년 후도, 잘 실패하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Merci beaucoup, Hannah O'Neil.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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