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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Mar 10. 2024

발레 '마농', 여성의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다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8화

좋은 글엔 좋은 계기가 필요하다. 글의 패착은 대개, 쓰고 싶지 않거나, 쓸 수 없는 것을 쓸 때다.


계기,라는 것은 대개,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8일 영국 로열발레단(the Royal Ballet) 인스타그램에 '마농(Manon)' 포스팅이 나왔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마농'에 대한 글을 쓰고 싶던 차, 계기가 하늘에서 떨어진 셈이었으므로. 포스팅 스크린샷은 아래와 같다.     

출처 및 저작권 the Royal Ballet Instagram


내용인즉, '마농'의 발레 버전이 탄생한 지 이날로 꼭 50주년이 됐다는 것.

25년도 아니고, 49년도 아니고, 딱 반세기라니. '마농'의 팬으로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지. 지난달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일본 도쿄 무대에 올린 작품이 '마농'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파리오페라발레단 말고도 앞서 언급한 로열발레단 등, 세계 유수 발레단이 '마농'을 올리는 까닭.    

지난 1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마농' 소식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마농'은 한국에선 아직 볼 수가 없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저작권의 문제일 수도, '마농'이라는, 아무래도 다소 덜 알려진 작품을 올리기엔 리스크가 커서일 수도 있다. 불필요한 추측은 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마농'에 대한 팩트 몇 가지.     


이 공연을 직관한 건 올 가장 잘한 일 중 하나. 출처 및 저작권 Dorothee Gilbert Instagram



문학을 좋아한다면 '마농' 두 글자를 듣는 순간, 한 소설이 떠오를 터다. 맞다, 그 작품. <<마농 레스코>>. 발레는 이 작품을 토대로, 케네스 맥밀란 경(Sir Kenneth MacMillan)이 1974년 안무했다.

마농 레스코라는 여성이 돈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고 분투하다 스러지는 이야기.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줄거리를, 챗GPT에 시키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직접 요약해 본다.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프레보가 1731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명문가 자제 데 그리외(Des Grieux)는 학교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기 전날 밤, "음탕한 여자(라고 네이버에 나와있다, 마음엔 안 들지만 일단 그대로 인용)" 마농 레스코를 만나, 사랑에 빠져 파리로 달아난다. 그러나 마농은 (또 네이버 그대로 인용) "허영심이 강하고 사치스러운" 여자였다. 돈이 필요했기에 마농은 부유한 노인과 정을 통하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마농은 미국으로 추방된다. 거기에서도 또 사랑의 파란을 맞는 마농은 결국, 데 그리외의 팔 안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래서, 검색을 조심해야 한다.

자, 시작한다. 마농을 위한 변명 또는 변론.   

위의 내용만 보면 마농은 한때 유행했던 이상한 단어, '된장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보석과 좋은 옷 등등을 사고 싶어서, 사랑하지도 않는 노인과 정을 통하는 여자. 하지만, 좀 더 알고 볼 필요가 있다.



'마농'의 마지막 장면. 출처 및 저작권 Dorothee Gilbert Instagram


적어도 발레의 버전은 더 상세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공연과, 그 공연 책자를 열심히 공부한 내용 중 핵심 두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농에게 부자 노인을 소개한 것은 다름 아닌 마농의 오빠이다. 데 그리외는 마농의 오빠의 친구이기도 했다.

둘째, 마농은 데 그리외와의 사랑에 빠져있었지만, 경제적 자유는 둘 모두에게 없었다. 18세기 당시의 상황 상,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남자였다. 여자는 돈을 벌고 싶어도 벌 수가 없었다. 거의 유일한 돈 버는 수단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는 일뿐이었으니. 만약 데 그리외가 가정을 꾸려갈 경제적 능력이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   




케네스 맥밀란 경의 발레는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일명 '드라마 발레'다. 맥밀란 경은 '마농'의 스토리를 꾸려가기 위해 3막으로 극을 끌어간다.


마농의, 마농에 의한, 마농을 위한 무대.

마농은 강단 있는 여자로 그려지지만, 경제적 자유 없이는 자신의 성격은커녕, 품격도 지킬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맥밀란 경의 안무에서, 마농은 유독 남자 무용수들에 의해 리프트 되는 구성이 많았다. 파드되뿐 아니라, 남자 무용수 셋 또는 다섯, 또는 그 이상이 마농을 무대 상수에서 하수로 이끌어가며 계속 리프트를 한 채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장면. 이는 마농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제적 이유로 구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적어도 내겐 그리 느껴졌다.     



이것처럼. 출처 및 저작권 Dorothee Gilbert Instagram



마지막 장면에서 '마농'은 거적때기만 겨우 걸치고, 화려한 보석 장식을 꽂던 머리카락은 무참히 잘려 나간 채 기진맥진하다. 발레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예쁘고 청순가련한 요정 또는 귀신은 없다. 마농은, 그냥 현실의 여자 그 자체인 것이다.   



오늘(2024년 3웧 10일) 들은 세종발레디플로마 강의실 입구의 '마농' 포스터. by Sujiney


이 때문일까. 발레 '마농'은 초연 당시 혹평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 지 실제 비평 기사를 보면 "이상하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

하지만, 좋은 작품의 생명력은 찰나의 비판을 뛰어넘는다. 지난달 도쿄 분카카이칸(문화회관)에서, '마농'의 도로테 질베르(Dorothee Gilbert)와 위고 마르샹(Hugo Marchand)은 기립 박수를 받았다. 커튼콜만 10회 이상.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울면서 박수를 쳤다.

21세기 하고도 24년째인 지금.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성이어서, 다행이다. 데 그리외 따위, 부자 영감 따위, 날 밑천 삼아보려는 오빠 따위 개의치 않고 내 힘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남을 감사히 생각한다.

마농은 알려준다. 경제적 자유의 중요함을. 이 아름다운 강인한 여성의 비극을 무대로 올려준 맥밀란 경에게, 존경을 보낸다.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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