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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Apr 21. 2024

너무 늦었잖아요. 회한의 발레, '오네긴'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11화

어긋난 사랑의 타이밍. 그 아픔과 회한은 발레 '오네긴'에서 절절히 피어난다. 이 작품은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이 8년간 공 들여 쓴 시 형식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원작으로 한다.


5500행의 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제목은, 남자 주인공의 이름. 출중한 외모와 지적인 분위기, 오만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남자다.


수많은 무용수들이 사랑하는 작품, '오네긴.'


먼저, 작품에 대한 이해.  『예브게니 오네긴』은 러시아 문학을 세계적 위상으로 올려놓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등장인물의 세밀한 묘사가 압권이다.


푸쉬킨이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건 24세 무렵이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건 32세였다.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에서 30대의 성숙의 시기를 거치며 작품을 쓴 셈. 어찌보면 이 작품은 푸쉬킨 본인의 성장소설이다.


알렉산드르 푸쉬킨. 게티 이미지 via 구글



푸쉬킨은 이 작품을 완성한 약 5년 뒤 사망했다. 자신의 부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린 이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예브게니 오네긴』에선 공교롭게도 오네긴이 친구 렌스키를 결투로 죽이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예브게니 오네긴』의 힘은 그러나 문학사적 의미에만 있지 않다. 대중적 인기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에선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오페라로도 크게 사랑받는다.


이 작품을 발레로 탄생시킨 인물은,  독일에서 활약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안무가, 존 크랑코(John Cranko).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를 처음 접하고 1960년, 당시 일하던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임원진에게 발레 '오네긴'의 창작을 제안했다. 처음엔 거절당했다.


걸작은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    


군무도 아름답고 음악도 감미로운 동시에 힘차다. 이 장면은 귀부인이 된 타티아나의 무도회. Google



크랑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으로 옮긴 뒤, '오네긴'의 뜻을 관철했다.


초연은 1965년. 이제 크랑코의 '오네긴'은 전 세계 발레단에서 공연하고 싶어하는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회한의 파드되. Google

타티아나는 1막에 등장했던 앳되고 순수한 아가씨가 아니다. 사랑의 실패를 딛고 성장해, 어엿한 한 귀족 가문의 안주인이 된 어른이다. 그런 타티아나를 본 오네긴.


이젠 오네긴도 차갑고 오만했던 시절의 청년이 아니다. 자신의 친구인 렌스키를 자신의 치기로 질투에 불타게 하고, 결국 결투에서 죽이게 된 후 방랑의 시간을 겪은 그는, 깨닫는다. 어엿한 귀부인으로 성장한 품위있는 타티아나를 보면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은 타티아나였음을.

너무 늦었다.

타티아나의 마음도 흔들린다. 오네긴은 절규하고 읍소한다. 늦었지만 자신을 받아달라고.


타티아나는 마음을 다잡고, 수년 전 오네긴이 자신의 마음을 찢었던 같은 방식으로 이별을 고한다. 오네긴은 뛰쳐나가고, 타티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외면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본다.     


너무 늦었다고요 나쁜 남자여. Google


어긋난 사랑은 남은 삶까지 눈물과 회환으로 채운다. 무용수들이 이 마지막 2인무를 소화하고 나면 격정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리는 일이 부지기수인 까닭. 이 발레 작품은 미묘한 표정과 눈길과 손짓까지, 섬세한 의미가 담뿍 담겨 있다.


이를 추는 무용수는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관객의 가슴은 미어지고 눈시울은 붉어진다.

 



이번 발레 슈프림 2024에 '오네긴'이 오른다는 희소식.



'오네긴'의 고향,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간판 수석무용수 프리드만 포겔은 오네긴의 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의 대표 레퍼토리가 '오네긴'인 데는 이유가 있다. 차갑지만 그래서 매력있는 오네긴을 포겔은 이번 발레 슈프림 2024 무대에도 그대로 가져온다.

차가운 오네긴에게 뜨거운 사랑을 쏟는 여성 주인공, 타티아나 역을 맡은 무용수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즉 에뚜왈인 루드밀라 파글리에로. 발레의 최고 영예,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수상한 파글리에로가 표현할 타티아나는 기대를 한껏 모은다.


발레 슈프림 2024에서 무대에 올리는 '오네긴' 파드되는 마지막 2인무. 서로 엇갈린 사랑과 미련, 절망과 아픔을 춤으로 녹여낸 무대다.


누구에게나 있다. 회한의 사랑.

그 사랑을 다시, 만나자.    




주요 참고자료
『예브게니 오네긴』 알렉산드르 푸쉬킨, 존 크랑코 재단 공식 홈페이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홈페이지, 뿌쉬낀하우스 관련 자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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