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무용수를 인터뷰하고, 그들에 대해 다양한 글을 써왔고 쓸 테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이 두 무용수의 전막 공연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11월 1일과 3일,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무대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한 두 무용수의 무대를 직관한 지금.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으니. 나는 "박세은을, 김기민을 본 사람"(존칭 부러 생략)이라고.
사실 김기민 무용수의 '라 바야데르'는 올해 일본 도쿄에서 먼저 볼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7~8월 도쿄에서 열린 세계발레축제의 '라 바야데르'에 출연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였다. 지난해 일본 교토에 발레 여행을 가서, 현지 발레 학원에서 김기민 무용수가 '라 바야데르'에 출연한다는 브로슈어를 본 순간, 숙소와 비행기표를 예약했던 터. 하지만 여러 이유로 '라 바야데르' 전막은 성사되지 않았고, 대신 기민 무용수의 갈라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앞서 봄에는 기민 무용수가 직접 기획한 '발레 슈프림' 공연도 있었고, 여러모로 발레로운 한 해. 그러나, '라 바야데르'의 기민 무용수를 보았음으로 올해의 발레로움이 완성되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라 바야데르'는 기민 무용수가 유독 빛나는 작품 중 하나다. 그의 솔로르는 때로는 자신만만한 젊음의 패기가 흘러 넘치고, 때로는 권력 앞에 유약한 남자의 모습이 투영되며, 때로는 이중적 모습에 스스로 고뇌하는 젊은 남자의 고뇌가 보인다.
그걸, 직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2024년 11월에 감사. 국립발레단에 감사.
사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기민 무용수는 지금 최고조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모르는 사람은 무대를 보면서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사뿐한 점프, 빠르면서도 적확한 마네쥬, 높고도 빠른 앙투르낭 더블 등등.
여기에 하나 더. 발레 테크닉뿐 아니라 그의 연기력 역시 우주 최고였다. 혹시나 챙겨간 망원경. 효자 노릇을 했다. 그가 연기한 솔로르가, 자신이 배신한 연인 니키아를 마주보지 못할 때의 얼굴 각도, 정략 결혼이지만 자신에게 권력을 가져다줄 감자티 공주를 바라보는 자못 진지한 표정 등. 그는 하늘을 날지 않을 때도 월드 클래스였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타야하는 것 아닐까, 전하자 기민 무용수와 가까운 분의 말씀. "마린스키에서 매일 연습하는 게 연기이니까요." 역시. 높이 날고 많이 돌고 멀리 뛰는 것 그 이상의 예술을, 기민 무용수는 하고 있었던 셈.
뿐만이랴. 박세은 파리오페라발레단 에뚜왈(수석) 역시 명불허전. 처음엔 그의 복근을 보며 "왕(王)"자를 그리고 나온 줄 알았다. 그정도로 그의 복근은 선명하고 명확했으며 시종일관 존재감을 뽐냈다. 출산 후에도 저런 코어를 가질 수 있구나. 그걸 위해 박세은 무용수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시종일관 탄성.
김기민 무용수와 박세은 무용수의 파트너링도, 명불허전. 둘 모두 파드되(2인무)에서도 솔로처럼 각자의 100% 기량을 다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각자 100% 최선을 다하는 최고의 기량이 만나 빚어지는 반짝임. 좀 더 다듬어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이미 그들은 최고였다.
생각한다. 스스로의 100%, 아니, 1000%를 쏟아붓는 이들의 최선과 최고는 이렇게나 아름답구나. 이들은 오늘날의 스스로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 것인가. 때로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때로는 내 몸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힘들었을 터다. 이들도 인간이니까. 하지만 이들은 이겨냈다.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매일 매 순간 발레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난 오늘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사실 그간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더랬다. 몸도 맘도 굳은 나이에 발레를 배우면서, 점심을 안 먹고 대신 클래스를 듣거나, 혹시 오늘 회의 또는 취재원과의 저녁 약속이 취소될지 모르니 발레 가방을 항시 휴대하거나, 쉬는 날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발레와 글쓰기에 바치는 삶.
하지만 오늘 박세은 무용수와 김기민 무용수를 보며 깨달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란 없다. 그저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밖엔 없다. 발레라는 아름다움을 만났다는 그 자체에 감사하며, 발레에 나의 100%를 주면서, 나 스스로를 단련하고 가꿔나가는 것. 태어난 건 내 자의가 아니지만 태어나서 살아가는 건 내 자의로 열과 성을 다해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라는 것.
두 무용수의 무대가 빛난 건 또한, 국립발레단의 훌륭한 다른 무용수들과 지도자들, 스탭이 있었던 덕분이다. 쉐이즈 군무는...보면서 눈물이 났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