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무대 입구 앞에 서있다. 스탭이이름과 작품명을 부른다. 조명 안으로 걸어 나간다. 최대한 사뿐사뿐.이 1분 30초를 위해 지난 몇 달간을 연습했다.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나를 믿자.”
하이라이트인 연속 턴을 완벽히 소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자신 없는 점프 동작을 실수 없이 마쳐야 해, 이런 생각은 안 든다. 지금 조바심을 내고 아등바등해봐야 무슨 소용. 이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무대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잘했냐고 물어봐 주시는 분들께는 이렇게 웃으며 답한다. “넘어지지는 않았어요!”
대기장소. 떨리고, 떨리고 또 떨리는 장소. By SJ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런 생각도 든다. 대단한 돈오점수의 깨달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피곤해서 별 생각을 할 에너지가 없었던 걸 수도 있겠다는. Runner's high처럼 ballet high도 있는 듯하다.
콩쿠르 준비는 극기훈련이다. 퇴근은 물론 회식 후에도 학원으로 직행해서 자정께, 늦을 땐 새벽 1시까지 연습을 했다. 국립발레단 출신인 원장님께서 거의 매일을 쉬지 않고 학원을 열고 기다려 주신다. 이런 학원, 아마 은하계에도 없을걸. “저 다음날 출근인데요”라는 변명 따윈 노노. 같이 출전한 동료들 모두 회사원이다. 서로 격려하고 때론 서로 채찍질해주는 동지다.
대기실로 향하는 길. 마음이 따듯해졌다. By SJ
그렇게 연습을 한 뒤 D데이가 찾아오면 하루 시간 순삭. 대개 새벽 6시까지 학원으로 집합한다. 전날엔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도 금물. 어렵게 잡아놓은 근육이 풀리기 때문이다. 미지근한 물로 가볍게만 샤워한 뒤 눈을 붙이고 일어난다. 학원에 오면 먼저 분장 시작. 머리를 단단히 틀어 올려 고정시키고, 정성 어린 분장을 받는다. 틈틈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근육을 잘 다듬어 놓지 않으면 무대에서 다치기 십상.
분장이 끝난 뒤엔 다들 의상과 소품을 소중히 챙겨 콩쿠르 장소로 향한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탑승한 다른 분들은 우리 분장을 보고 ‘헉’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이런이런, 아침 댓바람부터 도깨비 분장을 보셨군요, 죄송합니다ㅠ 언젠가, 콩쿠르 후에 분장을 채 못 지우고 학원 1층의 카페에 갔다가 알바생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지는 걸 보곤 어찌나 민망하던지ㅋ
지난해 로잔 콤쿠르의 백스테이지. 다다음생엔 저들 중 한 명이기를. [로잔콩쿠르]
현장에 도착해선 일단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편다. 분장의 마무리를 하고, 각자 조심히 몸을 풀고 동작을 연습한다. 곧 스탭의 안내로 대기실로 향하고, 눈 깜짝할 새 내 이름이 불린다. 백스테이지에선 바라보는 무대는 솔직히 정말 진짜 완전 떨린다. 대개 3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도 엄청 너무 진심 무섭다. 하지만 원장님이 알려주신 무대 직전 심호흡 루틴을 하고 나면, 조금은 안정이 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래, 완벽하진 못했지만 열심히 했잖아.”
그렇게 무대에 들어서면 그때부턴 머릿속이 하얘진다. 심사위원들을 향해 작품 콘셉트에 따라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 그저 최선을 다해 춘다. 물론, 즉흥적 대처가 필요할 때도 있다. 턴을 네 번 돌아야 하는데, 이번 출전 무대가 생각보다 작았다. 한 번 더 돌면 떨어질 것 같기에 과감히 한 번은 생략. 예전엔 심지어 너무 긴장한 탓에 순서를 까먹은 적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실수인 걸 드러내고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으면 네버 에버 안 된다. 심사와 관객에게 실례다. 뻔뻔할 정도로 계속 웃어야 한다. 인생이랑 좀 닮은 거 같다.
프로 무용수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계속 연기되다 드디어 국립발레단 공연이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열렸다. 오랜만의 무대여서인지, 첫 작품에서 실수가 나왔다. 네 커플의 파드되(pas de deux)가 이어지는 장면 중 하이라이트가 리프트(lift, 남자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를 들어 올리는 것)였는데, 호흡이 안 맞아 들어 올리지를 못했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는 어떻게 했을까? “아 난 몰라”하며 울었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태연하게, 웃으면서 무대를 마무리했다. Bravi.
지난 8월1일의 국립발레단 공연, 제일 앞 뒷모습은 무려 강수진 단장님이다. By SJ
무대가 끝나면 후회 타임. 아,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때 와인 좀 덜 마실 걸. 살 조금만 더 뺐어야 하는데 등등. 후회할 게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다음 기회가 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아름다운 마무리.
5년 전쯤, 공연 뒤 인사를 온 당시 가족 중 한 명에게 원장님께서 “SJ가 몇 년만 더 빨리 발레를 했어도, 한국에 없을 거에요”라고 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발레를 조금 빨리(음...약 10년쯤 더 빨리?) 시작했다면 전공을 했을 수 있고, 아마도 유학을 갔을 거란 의미였다고 한다.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다. 회원들에겐 자만심을 제일 경계하시는 분이라 칭찬 한 번 안 하시는 분인데. 물론 내겐 “다리가 너무 안 올라가욧”이라고 혼내주셨다. 이렇게 줄곧 올곧게 나를 야단쳐 주시는 분을 만난 건 내 인생 행운 톱 10 중 하나.
강수진. 이름 석 자로 모든 게 설명되는 분. 발 사진은 워낙 유명하니 패스. By SJ
지금 내 발엔 물집이 여럿 잡혀있다. 아프다. 지난주부터 토슈즈를 신고 작품을 연습하기 시작해서다. 아픈데 좋다고 쓰면 변태 취급당할까. 목표가 없는 아픔이라면 짜증과 고통의 대상이겠지만, 이 아픔은 내게 성장통이다.
물집이 잡혀야 굳은살이 자리 잡고, 굳은살이 잡혀야 토슈즈의 딱딱함을 이겨낼 수 있다. 아니, 이겨낸다는 표현은 잘못됐다. 토슈즈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가 되는 대상이다. 굳은 살은 곧, 토슈즈와 내 발이 하나로 밀착한다는 얘기다.
참, 많은 분들이 물어보셨다. “그래서, 상은 탔어?” 이 자리를 빌려 답한다. 네, 탔습니다.
무려 발레협회에서 주신 상이어서 - 아무리 생각해도 100퍼 원장님 덕에 탄 것 같지만 - 가문의 영광이다. 앞으로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계속 무대에 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