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때 떠나는 용기" 발레는 인생(7) 에샤페

브런치 시즌2 by SJ 60번째 feat. ‘폴리나’'드라이브 마이 카

by Sujiney

“나는 사실 깊게 상처받았어. 하지만 그 상처를 못 본 척했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어. 강하지 못했던 거야. 사과하고 싶지만 너무 늦었어.”


상영시간이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두 번이나 봤는데도, 최애 대사인데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주인공 카후쿠(家福)가, 사랑했지만 다른 남자와 계속 관계를 맺은, 그러다 급서한 부인 오또(音)에 대해 털어놓는 이야기.

카후쿠는 오또의 불륜을 심지어 목격까지 하면서 상처를 받지만, 그 상처를 제대로 직면하고, 문제를 제기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왜냐고, 바보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발끈할 것 같다. 카후쿠가 왜 그랬는지 너무 알 것 같아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선택지는 크게 해결 or 파탄의 두 가지다.

두 번째가 되면 어쩌나, 아무래도 두 번째가 될 것 같은데. 카후쿠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냥 나만 모르는 척하면 현상 유지는 되는데. 그렇게 질질 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오또는 쓰러져 그대로 죽는다. 파탄은 면했지만 해결의 가능성까지도 져버린 셈.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일본 포스터. "앞에 어떤 일이 있을지, 나는 아직 모른다"는 말이 좌측에.


훌륭한 콘텐트는 독창적인 소재로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훌륭한 여러 이유 중 하나도 그렇다. 영화를 보며 나는 내 ‘잃어버린 10년’ 1과 2를 떠올렸다. 1은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마지막이 아니었던 관계, 2는 첫 발레 학원에서의 악몽으로 끝난 10년.


행인지 불행인지 카후쿠와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1에서 관계의 끝을 목도한 나는 비겁한 선택을 했다. 관계의 끝을 못 본 척했던 것. 아니야, 끝이 아닐 거야. 괜찮아지겠지. 그러면서 매일을 바쁘게 살며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 상대방도 마찬가지. 그렇게 어영부영. 벌써 4년.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끝의 시작을 끝낼 용기를 내야 할 때다.

이미 늦었지만 더 이상 늦을 수는 없다.

이 글을 쓰고 나는 한 걸음을 내디딜 작정이다.

끝나버린 관계를, 괜찮은 척, 못 본 척하며 10년이 흘렀다. 이 정도면 됐다.


그래도 지난 발레학원은 스스로 걸어 나왔다는 점에선 그나마 1보단 낫다고 할 수 있을지. 지난 가을 내가 학원비를 떼먹었다는 거짓 험담을 원장님과 일부 진성 회원들이, 다른 회원들에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바로 발길을 끊었다.


내 잘못이다. 더 빨리 그만두지 않은.


뭔가 잘못된 건 느끼면서도 괜찮아지겠지, 오늘은 원장님이 기분이 안 좋으셔서 그런 걸 거야, 이렇게 넘어가다 꾸역꾸역 10년이 됐다. 이런 바보. 발레의 기본 센터 동작도 배우지 못했는데도 다른 곳에 가면 몸이 다 비뚤어지고 멋만 부리는 발레를 하다 몸을 다 버린다는 가스라이팅에 속는 줄 알면서도 속았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은 많았다. 조교일까지 도맡으며 원장님의 총애를 입고 전공까지 생각하던 성인 회원 A에게, 사이가 틀어지자 원장님은 모두가 있는 곳에서 “무슨 성인 주제에 전공까지 하려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그때, 바(barre)를 닦던 그 회원의 얼굴이 일순 새까매진 것, 탈의실에 들어가 눈물을 닦으며 옷을 갈아입던 것. 그걸 모두 목격하면서도, 원장님 눈밖에 날까 싶어 제대로 된 위로 한마디 못했던,

비겁한 나.


한때는 원장님의 심복 오브 더 심복이었다. 원장님이 쓰신 논문 교정 및 에디팅까지 해드렸고, 밤을 새워가며 출석부 정리도 도왔던 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의 궤도 이탈을 감지한 원장님은 또 다른 심복들과 함께 나를 왕따 시키셨다.


단체 레슨 시간에 “왜 이렇게 키가 커서 걸리적거리느냐” “자기가 무슨 대단히 잘하는 줄 착각한다”는 폭언이 이어졌다. 그래도 코로나 핑계를 대거나, “여기 아닌 다른 학원에 가면 몸이 비뚤어진다는데 참자”고 꾸역꾸역 다녔던 내가 한심하다. 다른 곳을 가볼 용기도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거기에 있는 게 그래도 편하고 익숙하다는 게 나 나름의 한심한 이유였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나오는 다음 대사 같다면 좀 멋있어 보이려나.

“It’s like a precious wound, a heartbreak you won't let go of because it hurts too good.”

“소중한 상처 같은 거야. 그 아픔조차 너무 좋아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음의 상처.”


최근 발견한 연희동의 소중한 작은 공간, ‘La Drogheria’에서 발견한 책 중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슬픔에 잠겨 있다 보면 어느새 슬픔을 즐기게 된다.”


나는 고통과 슬픔을 즐기고 있었던 거다.


'에샤페' 즉 '탈출'이라는 제목의 발레 영화 공식 포스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는 생각을 하고 뛰쳐나온 지 이제 약 100일. 그동안 나는 미친 듯이 한강을 가로지르는 것도 마다 않으며 주7일 다양한 선생님을 찾고, 그 전엔 원장님이 금지했던 예쁜 레오타드와 발레 스커트를 마음껏 사 모으고 있다.


하지만 오늘 깨달았다. 나는 지난 학원에서의 10년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심 꽤나 억울해하고 있다는 걸. 첫 학원에서 그랑플리에라는 기본 동작도 한 적이 없다는 내 얘기에 발레메이트 분들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는 호탕한 듯 웃었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입맛이 썼다.


그래도 10년 했는데. 콩쿠르도 여러 번 나갔고, 학원 공연에선 주역으로 무대도 섰는데. 나는 이게 뭔가. 왜 주뗴도 못 뛰고 그랑플리에는 여전히 코어와 무릎이 아닌 어깨로 하는 것일까.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때의 내게 아래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너도 빨리 도망쳐, 폴리나.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떠나야 되는 거야. 절대 나처럼 하지 마. 계속 남아있다 보면 결국 썩어 문드러져.” from ‘폴리나’ by 바스티앙 비베스(Bastien Vivès).


출판사 '미메시스'가 펴낸 바스티앙 비베스의 명저 '폴리나'


‘폴리나’는 프랑스 작가 비베스가 그린 발레리나의 성장 만화 겸 소설이다. 자신이 속한 발레단과 발레 동료들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폴리나. 비베스 작가는 이 장면 조금 뒤에 폴리나가 방에서 홀로 이 동작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에샤페(échappé).


영어의 escape, 즉 탈출에 해당하는 말. 폴리나는 그렇게 자신이 처한 잘못된 현실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멋진 무용수가 되어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나의 비루한 그랑주떼와 그랑플리에를 보며, 괜찮은 척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것 같고 억울하고 힘이 든다. 잊어보려고 주7일 발레로 몸을 힘들게 하지만 그건 내 맘을 돌보는 게 아니다. 몸을 피곤하게 함으로써 맘을 못 본척하는 것일 뿐.


늦었지만 그래도, 많은 구원을 찾았다. 호아나 쌤부터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 테일러커피의 크림모카, 라드로게리아의 파스타, 두두모자 시 모임(내 닉네임이 '에샤페'). By SJ


나의 에샤페는 너무 늦었다.

그래도 한 가지 또 분명한 것.


이제라도 한 게 어딘가.


그랑플리에와 그랑주떼는 못했을지언정, 나름 지난 10년이라도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 몸 상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잃어버린 10년이지만 발레조아 김현우 원장님과 오윤주 선생님 말씀처럼 “헛된 시간은 없다.”


영화 'Eat Pray Love' 중 명대사.


이젠 익숙한 상처에서 에샤페.


엉망이 된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위기 또한 기회라고, 애써 생각하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또 다른 명대사,

“Ruin is a road to transformation” 폐허가 됐다는 건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이니까.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없는 척은 이제 그만. 안 괜찮았던 현실에서 에샤페 하자.

발레 인생에서도, 사랑에서도.


By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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