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토종이다, 그 다섯 번째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다가 불현듯 ‘촉’이 오는 때가 있다. 2003년 그 봄날도 그랬다. 지난 회에 적었던 미국인 영어 강사 매튜 셀러즈의 '의문사' 사건을 취재하던 나는 사방이 꽉 막힌 기분에 괴로웠다. 좀처럼 취재 진도가 안 나갔기 때문. 고인(故人)이 즐겨 찾았다던 압구정의 한 커피숍에 앉아 “에디터가 채근할 텐데 어쩌지”부터, “진짜로 반미 감정 때문에 맞아 죽은 걸까”라는 의문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유족과의 e메일 소통엔 성공했다. 지난 회에 소개했던 e메일 이후, 고인의 형제자매들이 답장을 보내왔다. 통화도 수 차례 했다. 그들도 매튜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며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줬다. 82-2 로 시작되는 번호. 서울 시내 번호였다. “이 번호가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거 같은데, 연결이 안 되어서 답답하다”는 말과 함께.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 이 번호에 미친 듯 매달렸다. 소득은 없었다. 강남 쪽 번호는 맞는데, 114에 전화를 해서 알아봐도, 경찰 측도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러다 고인이 좋아했다던 커피숍에서 앉아서 이러다 이 기사 영영 못쓰겠다 절망하던 때, 눈앞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공중전화.
홀린 듯 일어나 그 전화로 다가가 동전을 넣고, 내 핸드폰 전화번호를 눌렀다. 내 액정에 뜬 번호는 바로 그 번호. 매튜 셀러즈는 이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가족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었던 셈이다. 그 전화번호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던 가족에겐, 그저 공중전화일 뿐이라는 게 아쉬웠겠지만, 취재 기자로선 솔직히 조금 후련하기도 했다. 유가족에겐 이런 요지의 e메일로 알렸다.
Dear Lee and David,
Su-jin here in Seoul. Hope this email finds you in better spirits.
I have some news – about the phone number. I did some digging and finally found which number it is. Remember that he was a regular at the OO café in Apgujeong area? Well, it turned out that Matthew called you from a public phone booth right in front of that café. And I asked around but there were no strange incidents around that booth for the past few weeks.
Sorry that I cannot get back to you with news that would be a breakthrough to your dear brother’s case.
Do you and your lawyer have some new findings? If so, please kindly let me know.
Thank you for your time. Talk to you soon again.
All the best,
Su-jin
여기까지. 일단 지난 회를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단 더 친근한 톤이다. 이미 유가족들과는 수 차례 e메일과 전화로 소통을 한 상황이기에 시작은 “Dear 누구누구(first name)”로 했다. 끝맺음에도 성(姓)은 빼고 이름만 썼다. 친근함을 표시하는 장치다. 영어 표현 중엔 'We are on a first-name basis"라는 게 있다. 성 빼고 이름만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라는 표현이다. 기억해두면 쏠쏠.
그럼에도 상대를 존중하고 있다는 표현은 잊어선 안 되는 법. “please kindly let me know” 등이 대표적이다. “알려줄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에 해당하는 표현인 셈이다.
위의 e메일 중 주요 핵심 표현 몇 개 정리해보면 이렇다(의역 주의).
Hope this email finds you in better spirits. -> 지금은 아무쪼록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상황이기를.
Thank you for your time. -> 시간 내서 읽어줘서 고맙다. (이 표현은 거의 모든 e메일에 마무리 용으로 붙이기 딱. 영어신문에 근무하면서 에디터에게 배웠던 꿀팁이다.)
결국 이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셀러즈 가족은 변호사도 고용했고,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이 우려도 표명했다고 했지만, 그가 일각에서 제기된 설처럼 반미 감정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증거는 없었기 때문이다.
약 한 달에 걸친 취재 후, 5월 23일에 기사를 썼다. 기사의 이 링크도 유가족에게 보냈다.
https://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984460
마지막으로 그들과 했던 소통 방식은 e메일 아닌 전화였다. 여동생 Lee가 전화를 걸어온 것. 육성으로 자신들의 뜻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No matter what happened, Su-jin, thank you. I still know there are many great people in Korea. I feel sorry about Matthew, but I still have good feelings about your country.”
매튜를 위해 애써줘서 고맙다는 것, 그래도 한국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여동생의 말은 자주 끊겼다. 눈물 때문이었다.
시차 때문에 그때 서울은 밤 10시. 당시 나는 편집국 근처 중국 식당에서 회식 중이었다. 뛰쳐나와 전화를 받으며 보았던 식당의 간판은 내 기억에 묘하게 자리 잡았다. 시간은 흘렀고 그 식당은 업종을 변경했다. 서소문 골목, 그 간판이 있던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나는 아직도, 매튜를 생각한다.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