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영국인 원작자 인터뷰, 이렇게 했다

'그래 나 토종이다' 두 번째 이야기

by Sujiney

영어로 시작해 한국어로 기사를 써온 지 15년 이상이 훌쩍 지났다. 이젠 20년도 머지않은 미래.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기자로 살아왔다. 대학 학보사 경력까지 합하면 오 마이 갓, 이건 너무 길잖아.


한 업(業)을 20년 가까이하다 보니 나름의 무기가 생겼는데, 지난 소개 글에도 밝혔지만 영어 취재의 기술이다. “영어 좀 한다고 잘난 척하냐”고 생각하셨다면? 노 노.


한국어가 모국어라고 다 한국어 기사 잘 쓰는 거 아니고, 다 한국인 취재 잘하는 거 아니지 않나. 영어가 뭐라고 그렇게들 "영어만 잘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안타깝다. 혀만 굴릴 줄 알지, 콘텐츠는 바닥이면서 우쭐해하는 교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 괜히 주눅 들지 말자, 좀.


JTBC '부부의 세계' 공식 포스터. 희애 언니 사랑합니다. [사진 JTBC]


각설하고, 기자 일 – 혹자는 기자질이라고도 하겠지만 – 중 가장 큰 즐거움은 내겐 질문할 권리다. 궁금하면 찾아가 질문해서 답을 얻고, 그 답을 남과 나누는 일로 전기세를 내고, 발레 학원에 다니며 광화문 단골 옷가게 Choi.s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산다니, 이 얼마나 복 받은 삶인지.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요즘 가장 궁금했던 것. 이거다. 조심스럽지만 올해, 적어도 올 상반기 최고의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JTBC ‘부부의 세계’의 원작자는 누구고 어떻게 왜 이걸 썼을까. ‘부부의 세계’ 팬들이 으레 그렇듯, 이미 원작인 ‘닥터 포스터’ 시즌 1과 2를 섭렵한 상태였기에 더 궁금했다. 이런 궁금증으로 시작된 약 10일간의 취재(라고 쓰고 스토킹이라 읽는다)의 결과물이 이 인터뷰 기사다. 인터뷰 성사 과정과 그 뒷얘기를 나름 소상히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기사부터 읽어주시길.


https://mnews.joins.com/article/23762849?cloc=joongang-mhome-Group4


성격 급하기론 한반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인터뷰를 위해서는 연락처를 알아내고, 마음을 열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깊이 있는 질문을 하고, 저작권 우려가 없도록 쓸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받고, 필요하면 추가 질문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먼저, 구글 검색창을 열었다. 원작 제목 ‘Doctor Foster’와 함께 ‘written by’를 입력. 구글 검색에선 완벽한 문장을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 그다음에 할 일. 이 Mike Bartlett이란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할까 그것이 문제로다.


다음 검색어는 그래서 이렇게 넣는다. Mike Bartlett email, Mike Bartlett phone number. 그랬더니 빙고! 많은 검색 결과 중(대부분은 쓰레기다) 그의 에이전트의 것으로 보이는 결과가 하나 있다. 느낌이 좋다. 당장 e메일을 썼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건 e메일의 기술이다. 에이전트들의 e메일 계정은 수백 개의 메시지로 차고 넘친다. 생판 모르는 남, 그것도 지구 다른 편의 코리아라는 곳에서 온 e메일을 열어보고 답장까지 해줄 가능성은 솔직히 매우 낮다고 보는 게 현실적. 잘 어필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썼던 e메일을 공개한다. 부끄럽지만 아부성 발언도 많다. 어쩌겠나. 인터뷰를 요청하기까지 나는 철저히 ‘갑’ 아닌 ‘을’이다.



일단 호칭부터. 성(姓)을 붙여 Dear Mr. OO이라고 할까, 이름으로 친근하게 Dear Nick으로 할까.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그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니, Nick이라고 스스로를 칭한 부분이 있다. 오케이, 그럼 Dear Nick으로 결정.


다음은 자기소개다. 골든 룰(golden rule)은 이거다. 절대 길게 하지 말 것. 짧되 임팩트 있게 가는 게 열쇠다. 그래서 아래처럼 했다.


Greetings from Seoul, Korea. I am OOO, a staff reporter with the paper called OOO with OOO million subscribers online plus OOO million offline.


요약하자면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 서울의 OOO이고, OOO 부를 온오프라인에서 발행하는 OOO 신문사의 기자입니다”가 되겠다. 이 부분은 분야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외국인 인터뷰이들에게 e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할 때 공통으로 쓴다고 해도 과언 아님.


이것만으론 2%가 아니라 많이 부족하다. Nick 입장에선 “그래서 뭐?”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인터뷰이 성격에 따른 맞춤형 소개 및 요청이 아래처럼 들어간 이유다.


I would love to do an email or phone interview with Mr. Bartlett regarding 'Dr. Foster' being remade in Korea, the land of the 'Parasite' and BTS. The show, dubbed in Korea as 'The World of Mr. and Mrs.' is enjoying rave reviews and viewers here - myself included - would love to learn more about the original work.


요약하자면 이런 톤 정도 되겠다. “저는 Bartlett 작가와 인터뷰가 하고 싶어요. 당신도 알죠? 한국이 요즘 ‘기생충’과 BTS로 뜨고 있잖아요. 이런 나라에서 ‘닥터 포스터’가 리메이크되고 완전 호평받고 있다니까. 심지어 나도 팬이에요. 우린 원작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인터뷰, 꼭 해줘요.”


JTBC '부부의 세계'. 주인공 지선우가 파멸로 치닫는 과정이다. 저 표정...ㅠㅠ [사진 JTBC]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듯, e메일에서 아예 질문까지 짧게 보내 놓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붙인 다음 문장.


I took the liberty of writing up some questions in the following.


다음 정도로 의역이 된다. “그래서 제 마음대로 미안하지만 다음 질문들을 하고 싶으니 참고해주세요.”


마무리도 중요. 영국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힘들다. 그러니 이렇게 인사.


Thank you. Will be looking forward to hearing from you and Mr. Bartlett. Hope you and your family and friends all stay safe and happy.


요약하면 “읽어줘서 고마워요. 답장 오매불망 기다립니다. 당신과 가족, 친구들 모두 무사하고 행복하길 빌어요.”


요즘 시대에 “Stay safe”는 e메일 마무리에 붙이기 딱 좋은 인사다. 밑줄 쫙. 안전하게 머물러요, 라기보다는, 건강히 잘 있어, 정도의 인사다.


e메일을 다 쓴 뒤엔 맞춤법 검사는 적어도 세 번 하자. 기본 중 기본이다. 그리고 Send를 누른다. 자고 일어나면 답장이 와 있기를 기도하면서.


물론, 그럴 일은 없다. 하루를 더 기다렸지만 묵묵부답. 이럴 때 무턱대고 기다리기만 해선 승산 제로다. 다시 e메일을 보내는 방법도 있고, 전화를 거는 방법도 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이번엔 촉이 왔다. 전화다. Nick의 거주지 및 직장 주소를 확인한다. 왜? 시차를 봐야 하니까. Nick이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해도 아침 7시 또는 자정에 걸려 오는 업무 전화는 달갑지 않을 테니까.


찾아보니, 런던에서 살고 일한다. 그렇다면 영국 시차에 맞춰 10시 45분쯤이 좋겠다고 결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는 11시 이후나, 아침에 출근해서 바쁜 9시~10시보다는 한 숨 돌리고 있을 수 있는 10시 30분~11시 사이가 좋을 것 같다는, 그냥 '촉'이다.


그렇게 전화를 건다. 전화 대화 법도 기술이 있지만, 그건 나중에. 워낙 팁들이 많아 책도 쓸 수 있을듯.


JTBC '부부의 세계'의 B컷 포스터. 언니 화이팅! [사진 JTBC]


몇 번 신호가 간 뒤, 오, 받는다! “Mr. OO?”이라고 했더니 “Just call me Nick”이란다. 그냥 이름을 부르라니, 좋은 신호다. e메일 보냈는데 혹시 받았냐고 물었더니 잘 받았고, 조금 기다리란다. Mike에게 전달은 했고 그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오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모두 감사합니다.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 또 시작된 기다림.


Mike가 바쁜가. 답이 또 2~3일 간 오지 않는다. 이럴 때도 무작정 기다리면 안 된다. 또 다른 e메일을 준비할 때다. 왜 당신이 내 인터뷰에 응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부여하면서 또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부의 세계’ 클립과 공식 스틸컷 등을 보내는 게 방법. 그래서 보낸 게 아래의 e메일이다.



요약하자면, “일전에 통화해서 좋았어요, Nick. 근데 생각해보니까, 한국 리메이크 버전이 영국에선 구하기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몇 개 영상을 보냅니다. 그리고, ‘부부의 세계’가 막 14%라는 시청률을 기록했어요. 대단한 숫자랍니다!”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또 기다림. 이제부턴 닦달은 금물. 지긋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e메일을 보내고 정확히 1주일 넘게 기다렸다.


찾아온 희소식. Nick에게서 Mike가 곧 답을 보내올 거란 회신이다. 야호! 고맙다고 답을 보내고, 도 기다린다.


그렇게 며칠 후, e메일 계정에 살포시 도착한 Mike의 답장. 월척이다.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으니, 이제부터의 내용은 다음 회차에 소개드리겠다.


이만 총총. Stay safe, everyone!


By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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