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e메일 작법 feat. 미국인 의문사
그래 나 토종이다, 그 네 번째
세상은 돌고 도는 것. 올해 최애 드라마 JTBC‘부부의 세계’와 관련한 얘깃거리가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무렵, 원작자 ‘마이크 바틀렛’ 여섯 글자를 뜻하지 않은 곳에서 목도했다. 막 버닝을 시작한 영국 드라마 ‘프레스(Press)’에서다. ‘Press’라는 영 단어는 ‘누르다’ ‘다림질하다’ ‘압박하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에선 ‘언론’을 의미. 기자로 살아오며 강산이 바뀌는 것도 본 입장에선 안 볼 수 없는 드라마다. 마이크 바틀렛이 만든 드라마인 만큼, 막장의 향기에 새벽 2시가 되어도 “한 회만 더”를 되뇌게 하는 서스펜스가 있다.
'부부의 세계' 원작자인 마이크 바틀렛의 이름이 보인다. 할렐루야. ['프레스' 캡처]
1회의 제목은 ‘Death Knock’이다. ‘죽음의 노크’가 아니라, 언론계에선 ‘유족 취재’를 의미한다.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집에 방문해 문을 두드리는 것. 웬만한 뻔뻔함을 탑재해선 불가능하다. 해봐서 안다.
행인지 불행인지 내 경우엔 유가족이 미국인이었고, 직접 문은 두드리지 못하고 e메일과 전화를 했다는 게 다르지만. 이번 회에선 ‘유가족’이라는 존재처럼, 다가가기에 조심스러운 영어권 사람들에게 어떻게 e메일과 전화를 하는 게 좋은지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당시 그 취재의 결과 썼던 기사 링크는 여기. 나름 장문의 탐사보도였다.
때는 2003년.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햇병아리 시절이다. 의욕은 충만한데 아직 뭘 잘할지도 모르고, 실제로도 잘하지 못하는 때.
반미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이기도 했다. 홍대 클럽엔 “양키 고 홈(Yankee go home)” 또는 “미국인 손님은 안 받습니다(Americans not welcome)“이란 안내문이 붙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인이 한 명 죽었다. 의문사였다.
이름: 매튜 셀러즈(Matthew Sellers)
나이: 사망 당시 35세
직업: 영어 강사를 하던 평범한 미국인
특이사항: 귀국 편도 비행기표를 끊은 채 2003년 4월 20일 사망한 채 자택에서 발견.
당시 한국의 외국인 커뮤니티 사이에선 “반미 감정을 가진 한국인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미국인 에디터가 취재를 지시했다. 의욕 하나는 퓰리처상 감인데,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게 그는, “Ask around(주변에 물어봐)”라는 두 단어만 남겼다. 당장 내일 낼 기사가 아니니 시간을 들이고 품을 팔고 공을 들여 취재를 하고, 자기에게 매일 상황을 보고하라는 지시와 함께.
눈앞이 캄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이럴 땐 국민의 친구이자 지팡이를 자처하는 경찰에 물어봐야 한다. 사망자의 주소를 수소문하니 강남구 압구정동 원룸에 살았다고 가까스로 확인. 강남서로 무조건 갔다. 담당 형사를 찾았다. 영어신문이라 그런가, 무조건 기다리란다. 2시간 기다려서 얻은 답은 “우린 몰라요. 사건성은 없었습니다”라는 게 전부. 심장마비와 같은 사고사라는 거다.
이 질문에 현재 대한민국 기자들은 뭐라고 답할까?
취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귀인이 없으면 좋은 취재는 할 수 없다. 내 경우엔 셀러스의 친구들이 그랬다. 17년이나 된 일이니 기억이 상세히 남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셀러스가 강사로 근무했던 학원의 동료들을 수소문했고, 그들은 셀러스의 유가족의 e메일을 알려줬다. 잭팟이다. 바로 e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중간에 회사 계정이 바뀌고, 또 나의 부주의와 게으름으로 인해 당시 내가 썼던 e메일 원문은 안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쓴다면 도입부는 이렇게 쓰겠다.
Dear Mr. and Mrs. Sellers,
Greetings from Seoul. I am OOO, a staff reporter with the OOO.
First of all, my deepest condolences for your loss. I cannot imagine how heartbroken you must all be. Your son’s colleagues told me that he was such a great friend and teacher, and we all agree that he was such a kind soul. We are all at a loss in Seoul.
부모님에게 보내는 e메일 death knock이다. 자식을 앞세우는 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유교권에서도 ‘참척(慘慽)’이라고 해서 끔찍한 일로 여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 그런 그들에게 기자, 그것도 그들의 35세 건강하던 아들이 급서한 나라의 신문사의 기자가 연락을 하는 게 무에 반갑겠나. 조심에 또 조심을 해도 모자란다.
이럴 땐 정석대로 가야 한다. 어쭙잖은 공치사는 삼간다. 그래서 시작은 “서울에서 인사드리는 OOO입니다. OOO신문사의 기자입니다”라고 했다.
그다음엔 애도의 말. “(아들을) 잃으신 데 대해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지 상상도 못 할 정도입니다”를 붙인다. 그리고 내가 단지 기사 몇 줄 적자고 그들의 슬픔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진실성을 호소해야 한다. 사망한 아들의 친구들과 동료들과도 연락을 한 사이라는 것을 알려야 하는 것. 그래서 마지막 두 문장을 붙였다.
그다음엔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I have been trying to learn the truth that lies behind the sudden loss of your son. There are some rumors and theories about the sudden death, and I wish if you could kindly share some background with me.
아들의 죽음(처음부터 death라고 안 쓰고 에둘러서 loss라는 표현을 썼다)에 있어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 여러 설과 소문이 있는데, 부모님인 여러분이 좀 알려줄 수 있는지 정중히 문의했다.
당시 썼던 기사의 캡처본.
여기서 잠깐. 누가 영어엔 존댓말이 없다고 하는가? 무지한 생각이다. 영어엔 ‘습니다’ ‘하셨습니다’ 식이 아닐 뿐, 복잡한 존경어 구성법이 있다. 만약 위의 e메일을 쓰는데 “Hi there, I want to know about you son’s death, you know” 이런 식으로 썼다면? 한 대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여기까지 썼는데 이미 길이 너무 길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말도 길어지는데 글까지 길어지니 이를 어쩐담. 미국인 의문사에서 배우는 영어 e메일 작법은 다음 회에서 완결해야겠다. 아랍 왕자 인터뷰를 따낸 방법이 궁금해서 구독하신 분들께는 죄송. 하지만, 약속드린다. 아랍 왕자 커밍 쑨!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