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날 들었던 말. 화자는 직속 선배. 학위는 미국 어디에서 했느냐는 그의 질문에 “저, 한국 OO에서요”라고 답하자 나왔던 반응. 그럴 만도 했다. 그곳은 영어신문. 에디터들은 전원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었고, 기자들은 압도적 다수가 영어 이름을 쓰거나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더 편한 교포들이었다. 그런 곳에, 해외여행 경험이 당시 ‘0’였던 내가 합격한 것은 내가 생각해도 불가사의였다. 맨땅에 헤딩, 맞았다. 많이 아팠지만 많이 즐거웠다.
뉴스룸은 내게 작은 미국이었다. 회의도 농담도 논쟁도 영어로 해야 했다. 영어를 전공하고 학교 영어신문에서 편집장까지 지냈지만 처음 만나는 세계였다. 출근이 꼭 출국 같았다. 회사 가는 게 신났다. 해외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월급까지 나오니 어찌 아니 좋으랴.
영어로 일을 하면서 얻은 건 영어 그 이상이었다. 영어권의 생활 문법을 익히는 재미도 컸다. 예를 들어 영어식 존대법. 영어에 존대어가 없다는 건 반만 맞는 말이다. 존경을 표하는 방법은 문법책에만 나오지 않을 뿐, 세밀하고 다양하다. 그런 말을 구사하는지 여부를 두고 그들도 상대의 품격을 평가한다.
몇 년 전 기자협회에서 초청해주셔서 했던 '토종 영어 취재법' 강연 중. 또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by SJ
그렇게 맨땅에 헤딩 만 9년 뒤, ‘mother paper’라고 불렸던 한국어 신문의 제안을 받았다. 외국인 인터뷰를 한국어 기사로 쓸 수 있는 기자를 찾고 있는 편집국에 어찌 보면 맞춤형이었다. 나로서도 10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새로운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컸다. 바로 “예스.”
물론, 새로운 환경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텃세 및 상명하복 문화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 언론사다. 공채가 아니었던 나는 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피할 수 없으니 즐겨라, 는 말은 거짓말. 그냥 했다.
혼도 많이 났고 오해도 꽤나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내 구세주는 두말하면 잔소리. 영어였다.
2002년 월드컵 기적을 일궈낸 거스 히딩크 감독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자크 로게 위원장, 미국의 '세컨드 젠틀맨(the Second Gentleman, 부통령 남편)'과 영국의 로더미어 자작부인, 페미니스트의 대모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등 해외 VIP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점차 인정을 받았다. 외국인 인터뷰를 따내고, 통역 없이 인터뷰를 하고 녹취록 작성 없이 기사 마감을 바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메리트였다.
그 덕에 나는 영어를 잘하면 꽤 유리할 수 있는 외교부 출입이라는 꿀보직과, 이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국제 유치전 과정을 취재하는 기회를 누렸다. 평창 유치전은 특히 투표권을 가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을 만나는 호재였다. 대개가 왕자 아니면 공주, 기업의 리더들인 내로라하는 100여 명을 취재할 수 있던 건 특권이었다. 내게 영어는 날개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기 전까진 많이 망설였다. "잘났어 정말", 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인 거, 잘 알아서다. 한국에서 영어란 특이한 출세의 사다리다. 어쩌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그 사다리가 사다리인 줄도 모르고 좋아했고, 갖고 놀았고, 친해졌다.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각고의 노력도 했고, 올라가다 많이 떨어져도 봤다.
그러면서도 의문은 항상 있었다. 이 사다리를 왜 모두가 그렇게 기를 쓰고 올라야 하는 걸까. 영어를 잘한다는 게 왜 뜨개질을 잘하고 발레 피루엣 턴을 잘 돈다, 정도의 의미만 가지진 않는 걸까.
고(故) 자크 로게 IOC 위원장님과의 첫 단독 인터뷰. 깜짝 선물에 진심 좋아하시던 모습. 명복을 빕니다. [중앙일보]
영어라는 사다리는 얄궂다.
혼자 오르기 위해선 각고의 노오오오력이 필요한데,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부모 찬스 등 환경 덕이 있으면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하니까.
어린 시절 영어 생활권에서 성장을 하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 굳이 성문 기초영어나 VOCA 3만 3000 등 책을 외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된다. 물론 그들도 어린 시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으나, 영어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권력을 갖기 위해선 그 정도 통행세는 당연히 내야 하는 거 아닐까(라고 쓰면 너무 잔인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발음은 또 어떤가. 왜 다들 버터 발음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원어민 발음은 맹목적 동경의 대상이다. 그래서 더 영어라는 게 얄궂다. 어린 시절 영어 생활권에서 살면 어휘력은 차치하고 발음은 기본으로 장착할 수 있으니까.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or 주어진 환경으로 손에 쥘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영어에 관련한 열등감이나 불필요한 우월감이 생겨난다. 영어가 권력이자 갑인 한국에서 ‘영어 양극화’ 혹은 ‘영어 divide’는 교육 문제를 넘어선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
어린 시절 해외에서 거주한 경험이 없어서, 무시도 많이 당했다. 대학생 시절 과외를 했던 한 중학생 남자아이는 내게 “선생님은 외국에서 살아본 적 없잖아요?”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그 아이, 발음은 좋았는데 문법은 엉망이었다. 해외 경험은 있는데 영어 점수가 낮으니 과외를 받은 건데, 공부할 의욕은 1도 없었던 터라, 안타까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는 지인의 부탁으로 어떤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을 때도, 이런 질문을 받았다. “실례지만, 해외 경험 없으신 데 번역이 매끄럽게 가능하시겠어요?” 그 편집자는 영어를 못했다. 못하면 상대가 잘하는지를 알지 못하니, "그럼요"라고 웃어넘겼지만 뒷맛은 썼다.
토종 영어를 가장 괄시하는 건 한국 토종이다.
하지만, 먹거리에만 신토불이가 있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신토불이 영어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다.
수년 전 이 칼럼으로도 악플 악멜 엄청 받았더랬다. No 후회! By SJ
원어민 에디터들이 해줬던 격려를 떠올린다.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해 기사를 쓰기 위해선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특성을 잘 아는 게 영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 영어는 잘하지만 임진왜란이 몇 년도에 일어났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모른다면, 그게 더 큰 문제라는 얘기. 그런 이야기를 해줬던 토비 스미스(Toby Smith), 할 파이퍼(Hal Piper), 데이비드 몰(David Moll) 에디터들에게 다시금 고개 숙여 인사를 전한다.
그래서 내겐 작지만 확고한 꿈이 하나 있다. 영어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여러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서 제한된 교육만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도움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온갖 종류의 영어 교재들이 넘쳐나지만, 구슬이 꿰어야 보배이듯, 그 교재들도 어떻게 배우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런 공부법을 함께 나누고 싶다. 한때 탈북 여학생들에게 영어 무료 과외를 했으나, 팬데믹 등으로 스톱.
북한 취재 경험을 토대로 한 나의 첫 책, 'North Korean Women in Power'을 영어로 쓴 건 역시 이런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한다. Global audience에게 북한 여성 엘리트의 면면을 알리는 책이 없다는 점과, 남한의 여성 기자가 북한의 여성 엘리트에 대해 쓰는 첫 책이라는 의미도 물론 있다. 북한에 뿌리를 둔, 즉 나의 North Korean heritage를 기념하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토종도 영어로 책 잘 쓸 수 있다는 것도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었다.
책 표지. 추천사 써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책이 나온 뒤, “왜 굳이 영어로 책을 썼어요?” 이 질문 진짜 많이 받았다. 영어라고 하면 “나는 그럼 못 읽겠네”부터 “대단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잘난 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한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건 사실이고, 그 사실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은 유아적인 마음이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얘기는 이거다.
영어가 줄 수 있는 자유,
영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
살아오면서 영어를 습득하고 익히는 과정과 그 결과로 인해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것, 받았던 오해 등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결국 쓰기로 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면서 붙였던 시리즈 제목, ‘그래 나 토종이다’를 발전시킨 시리즈. 제목은 ‘토종 영어 레시피’ 혹은 ‘토종입니다만 영어로 책을 썼습니다’ 등으로 생각 중.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명저 ‘자기 역사를 쓰는 방법’에 영향을 받았다. 내게 ‘자기 역사’란 ‘영어와 함께 한 역사’이므로.
감사히도 내 책을 진열해주신 서울 을지로의 핫플레이스, 카페느티에서 마주치고 바로 업어온 책이다.
재미있어서 아껴읽고 있는 책. 우리 동네 연희동 Jason95의 체리 타르트와 함께 하면 금상첨화! By SJ
지금 대한민국의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영어는 족쇄에 가깝다. 아무리 돈을 써도 잘하긴 어려운 데, 취업과 승진의 발목을 잡고야 마는 스트레스의 원천. 부모 찬스로 유학 경험이 있는 이들에겐 고속 출세의 사다리를 놓아주기에 한국 사회를 왜곡시키는 존재이기도 한 게 영어다. 하지만 영어는 사실,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내게는 그렇고, 당신에게도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