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나보다 영어는 잘하지. 근데, 기사는 내가 더 잘 쓴다고!”
2012년 봄날, 홍대 어느 술집. 나보다 나이는 많은데 경력은 짧은 남자 후배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쎄’ 보여야 하는 직업 특성상, 괜찮은 척했지만 솔직히 두려웠다.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당시엔 말이다.
잠시 자기소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순수 100% ‘메이드 인 대한민국’ 토종이다. 어쩌다 영어가 좋아 파고들었고, 고교 시절엔 영어 선생님께 "수학도 공부해야 대학 간다"는 꾸지람을 들었다. 영어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며 8년을 먹고살았다. 첫 해외 나들이는 입사 후 첫 휴가에 떠난 서유럽 패키지여행.
그러다 소위 ‘중앙 일간지’에서 “1년 파견 근무하면서 외국인 인터뷰를 전문으로 해보면 어떠냐”는 제의를 전화로 받은 게 2007년 12월 송년회 밤. 일은 재미있었지만 변화가 절실했던 나의 입은 내가 깨닫기도 전에 ‘예스’라고 답하고 있었다. 국문 신문기자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후배가 내게 주정(의 탈을 쓴 불평)을 했던 건 그러니까 내가 한국어 신문으로 옮긴 뒤 몇 년이 흘렀을 때다. 당시 나는 외교부 출입기자라는 파격 혜택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왜 파격이냐고? 그때까지 난 한국어 기사로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써본 적이 없었다. 외교부는 주요 출입처다. 기자라면 한 번쯤 욕심 낼만한 곳. 그런 곳에 '갑툭튀'인 내가 배정된 것을 두고 “뭐, 걔가 영어는 잘하니까” “국장이 잘 봐줬네”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고, 나는 유구무언이었다. 외교부 취재는 특성상 외국어 실력이 소중한 플러스알파다.
보물 1, 3호. 성문종합영어와 민주O림 한영사전. 보물2호 영한사전은 통탄스럽게도 분실ㅠ
한국어가 모국어라고 다 한국어 기사를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영어로 먼저 배웠던 나는, 오히려 내 모국어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게 힘들었다. 인물 인터뷰처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사는 덜 어려웠다. 문제는 속보와 스트레이트. 소위 ‘스트’엔 문법이 있는데 나는 그 문법을 몰랐다. 더 심각했던 건, 어떻게 배워야 할지를 몰랐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 많은 후배님이 그런 주정/불평을 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외교부 출입을 ‘면’ 당했다. "그 후배가 맞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한국어로는 기사를 쓰면 안 될지도 몰라." 남몰래 속앓이 좀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생존에 성공했다. 아직도 잘하려면 갈 길은 멀다. 그래도, 기명 칼럼도 쓴다. 12년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 그 기회가 소중하고 감사한 만큼 모든 걸 쏟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존 비결은 역시, 기승전 영어였다. 스트 기사는 선배들이 데스킹(=수정) 해 준 나의 기사를 연필로 베껴 써가면서 연습했다. “이것도 기사라고 썼냐”라고 매일 혼났다. 혼나는 게 좋았다. 배울 수가 있으니까. 진짜 무서운 선배는 '안 혼내는 선배'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수업료를 내는 게 아니라 원고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더 나은 글을 쓰게 되었다”라고 쓴 적이 있다. ‘원고료’만 ‘월급’으로 바꾼다면 딱 내 얘기.
그런데 비결이 왜 영어였을까? 영어는 내게 남보다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습득하게 해 줬다. 기사의 중요한 축은 새롭고 깊이 있는 정보다. 남들이 네O버 다O을 검색할 때 나는 구글 원문을 검색하고, 외국인 취재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e메일을 보내며 기사의 깊이를 더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인터뷰한 첫 한국인 기자가 됐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관저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마시며 단독 인터뷰를 했다. 거스 히딩크 축구 감독이 “그 기자는 다른 기자와는 달리 깊이 있는 질문을 하더라”라고 칭찬했다는 말도 제3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아랍의 왕자부터 집 없는 억만장자까지,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그들에 대해 글을 썼다.
이제 나의 가장 소중한 도구, 영어-. 내가 영어를 어떻게 배웠는지,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공개하려 한다. 글로벌 인물 인터뷰 뒷얘기부터, 외신 기사 읽기, 영어 공부 팁 등등, 주제는 때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할 작정이다.
종합영어. 무조건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외웠다.
한 가지. 이 글을 읽는다고 100일 만에 영어를 잘하게 될 일은 없다. 제일 곤란하고, 또 솔직히 싫은 질문이, “어떻게 하면 3개월 만에 영어를 잘할 수 있어?”다. 그런 비법 따윈 없고, 그런 질문은 떡 하나 거저먹자, 는 치사한 발상이다. 영어는 엉덩이, 입, 손가락, 발을 움직이는 만큼 는다. 영어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를 솔직히 나누려 한다. 잘 부탁드린다.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