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 인터뷰하는 법 feat. IOC

'그래 나 토종이다' 여섯 번째

by Sujiney

왕자님과 결혼할 자신은 없다. 근데, 왕자님을 인터뷰할 수는 있다. 당신이 기자라면, 그리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담당하게 됐다면.

2010~2014년의 나처럼 말이다.


2018년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다들 기억하실 거다. 강원도 아름다운 두메산골 평창으로 겨울올림픽을 유치해오는 데는 꼬박 8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0년 겨울올림픽은 캐나다 밴쿠버에, 2014년은 러시아 소치에 패했다. 삼수 끝에 2018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던 건데, 그 마지막 유치전을 밀착 취재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영어신문에서 만 8년 일하긴 했지만 해외 경험은 입사 후 유럽 패키지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이후, 거의 매달 기내식을 먹었다. 런던에서 열리는 IOC 집행위원회 취재부터 멕시코 휴양지 아카풀코에서 진행된 평창 유치 프레젠테이션, 싱가포르에서 열린 IOC 위원회 회의 등을 취재하러 다녔다. 감사한 기회였다. 스위스 로잔 IOC 본부 취재를 1박 3일로 다녀오는 일도 종종. 힘들다는 불평은 사치였다.


평창 유치위원회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김연아 선수와 함께 사진이 찍혀 경쟁지의 1면에 나오는 미묘한(?) 영광도 누렸다. 삼성전자 홍보팀 직원의 얼굴 사진이 아이폰 광고에 나오는 격이랄까.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이런 경험들. 영어 덕이 크다. 하지만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영어권 사람들과의 소통법의 ABC를 익히는 것, 그게 "빠다" 발음보다 더 중요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 유치의 1등 공신 중 한 명인 김연아 선수. [사진=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왕자 얘기하다 갑자기 무슨 얘기냐고? IOC 위원들의 상당수가 왕족 또는 성공한 기업인, 메달리스트 등등이다. 이들과의 인맥은 금맥만큼이나 뚫기 어려웠다. 그 매크로 하고도 마이크로 한 노하우를 조금씩 공개해볼까 한다.


먼저 이 모든 게 시작된 2010년 초로 가보자. 당시 나는 –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 스포츠의 ‘ㅅ’자도 몰랐다. 편집국 No. 2의 비서분이 전화를 주셔서 “지금 찾으신다”고 했을 땐 “오 마이 갓, 내가 뭔 사고라도 쳤나” 싶었다. 후배들 잘 깨기로 유명한 그분은 의외로 인자한 미소를 보이시더니, “내일도 해는 동쪽에서 뜰 거다”라는 톤으로 “내일 당장 첫 비행기로 밴쿠버로 가. 여권 유효기간 괜찮지?”라고 했다.


지금 들은 게 한국어가 맞나. 곧 이런 말이 날아왔다. “다음 주 밴쿠버 겨울올림픽 개막하는 거 알지? 거기 가서 평창의 유치 삼수전을 취재하는 게 너의 역할이다. 단독 많이 해와.”


그놈의 단독… 기자라면 누구나 알 거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건 '기레기'란 욕이 아닌 ‘누끼(낙종)’이며, 로또 당첨만큼 좋은 건 도쿠(단독 or 특종)라는 거.


평창 유치전 취재는 소중한 추억. 2012년 런던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됐던 것도 그 덕분. 함께 뛰었던 주자들이다. 난치병 투병부터 참전까지, 휴먼 스토리가 가득했다.


‘아니오’나 ‘싫습니다’라는 단어가 후배들 입에서 나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그분께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근데요, 저기, 저는, 그게, 축구 경기에 몇 명이 뛰는지도 모르는 데요. 괜찮을까요?”


그랬더니 그분. 마치 내가 세상에서 최고로 웃긴 말이라도 한 듯 “으하하하”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걱정 마. 너 지금 외교부(출입하)지? 너한테 하라는 건 스포츠 외교 취재다.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액셀을 몇 번 하는지 취재하라는 게 아니야. 빨리 절차 밟아. 시간 없어.”


평창의 경쟁도시였던 독일 뮌헨에 취재 갔다가 마주친 익살스러운 포스터. 독일의 대표 먹거리 소시지로 오륜기를 표현했다. By SJ


지시에 따라 당시 대한체육회장을 맡고 있던 박용성 두산중공업 당시 회장을 찾아가 대략의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다음날, 나는 이코노미석에 두꺼운 책 두 권을 들고 앉아있었다. IOC 위원들의 명단과 사진, 간단한 인적 사항이 적힌 책 한 권과 IOC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IOC헌장을 담은 책 한 권. 당시가 설날 연휴였던 덕에 기내식으론 떡국이 나왔다. 맛은 있었지만 잘 안 먹혔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인적 사항에 "HRH(Her Royal Highness=공주 전하)" "HE(His Exellency=폐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붙어있는 이 사람들. 난 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별 거 있겠어? 다 같은 사람이야.


하지만 약 24시간 뒤 한 파티장에서,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왕자님 공주님 회장님들은, 다르구나.


만나는 것도 어려웠지만 막상 만나도 내가 내민 명함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엔 충격이었다.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중엔 알았다. 문제는 내게 있었다.


내가 그들의 문법을 몰랐었던 거다. IOC에서 통하는 글로벌 에티켓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이 에티켓은 평생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노하우로 남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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