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성벽 뒤에 숨은 고독한 불안

<피티 궁전>에서 묻는 부(富)의 실체

by 양수경


1. 사촌의 땅과 나의 복통: 부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 기억


어릴 적 우리를 지배한 격언 중 가장 잔인한 것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었다. 가까운 이의 성취가 축하가 아닌 ‘복통’이라는 신체적 고통으로 치환되는 기묘한 심리. 그것은 결핍의 시대를 건너온 우리 DNA에 새겨진 생존 본능이었다. 누군가의 ‘가짐’이 나의 ‘못 가짐’을 증명하는 결핍의 연대기 속에서, 부는 언제나 시기와 비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부에 대한 나의 시선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까운 지인이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 예상했던 복통 대신 묘한 안도감이 찾아온 경험 덕분이었다. 타인의 넉넉함은 만남의 장소를 쾌적하게 만들었고, 서두르지 않는 여유는 대화의 밀도를 높였다. 누군가의 부가 타인의 삶을 위협하는 무기가 아니라, 주변을 따뜻하게 데우는 온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비로소 부를 향한 ‘배 아픈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설 수 있었다.


IMG_F20A33E7-B55C-4FA5-84FD-0A3A906C5BB9.jpg 베키오 다리 위, 권력은 지나갔고 단테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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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다리 앞, 흐르기 전의 사람들, 길은 직선인데, 시간은 층층이 쌓여 있다.


2. 베키오 다리 위, 권력이 흐르는 비밀 통로


피렌체의 아침, 베키오 다리를 건너며 나는 부의 진화 과정을 목격한다. 한때 정육점들의 악취와 도살된 잔해물이 흐르던 이 다리는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에 의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냄새난다, 치워라." 권력자의 한마디에 삶의 비루한 흔적들은 밀려나고, 그 자리에 금과 은의 광채가 채워졌다.


흥미로운 것은 다리 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바사리 코리도르(Vasari Corridor)’다. 메디치 가문이 군중과 섞이지 않고 은밀하게 이동하기 위해 만든 그들만의 길. 아래에서는 생존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일상의 활기가 흐르고, 위에서는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통제하는 권력의 침묵이 흐른다. 부는 때로 이처럼 타인과의 '차단'과 '격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


나는 다리 위 단테의 흉상 앞에 멈춰 선다. 이 도시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끝내 추방당한 시인. 그는 『신곡』에서 지옥과 연옥을 지나 빛을 마주하는 여정을 그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때 이 도시를 지배했던 것이 메디치 가문의 돈이었으나, 700년이 지난 지금 이 도시의 영혼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쫓겨난 시인의 문장이라는 점이다. 권력은 공간을 지배하지만, 사유는 시간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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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하늘을 흉내 내고 아래로는 물을 흐르게 하며 이곳은 끝없이 ‘완벽함’을 연출하고 있었다.


3. 피티 궁전: 불안이 지은 금빛 문장


피티 궁전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멎는다. 이곳의 화려함을 설명하기에 '아름답다'는 형용사는 너무나 빈약하다. 천장은 조각된 하늘이고, 샹들리에는 공간을 점령하는 무기다. 벽면에 여백 없이 빽빽하게 걸린 명화들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점유의 흔적'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소유다"라고 외치는 거대한 함성 같다. 일반적인 미술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개별 작품이 아니라 그 ‘과잉의 밀도’ 자체가 나를 압도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토록 과도한 장식은 역설적으로 '근원적인 불안'을 드러낸다. 가진 것이 무너질까 두려운 자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덧붙여 자신의 존재 주위에 후광을 두르려 한다. 과함은 취향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할 다른 언어를 찾지 못한 자들의 절박한 언어다.


단테가 묘사한 지옥은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붙잡고 있던 것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였다. 메디치는 돈으로 권력을 만들고 그 위에 예술을 쌓아 올려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웅변했지만, 그 모든 장식은 결국 자신들을 가두는 또 하나의 층이 되었을 뿐이다. 메디치는 화려한 궁전을 남겼고, 단테는 비워진 길을 남겼다. 하나는 눈을 현혹하고, 하나는 인간의 내면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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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질서를 만들었고, 하늘은 여백을 남겼다.


4. 덜 붙잡히는 권리: 내가 선택한 다른 형태의 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꽉 채워진 이 궁전의 한복판에서 나의 마음은 오히려 비워진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 이 모든 과잉을 바라볼 때, 비로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니 '무엇까지는 필요하지 않은지'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궁전을 나와 보볼리 정원의 통제되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볼 때야 억눌렸던 숨이 비로소 풀린다.


상담실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저당 잡히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자신의 '안전 기지'를 파괴한다. 하지만 진정한 부란 소유의 총량이 아니라, 소유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다.


가지는 것보다 가진 것에 덜 붙잡히는 것. 타인의 성취를 시기하지 않고 나의 보폭으로 걷는 것. 웅장한 궁전의 천장보다 흐르는 구름의 여백에 더 감동할 수 있는 감각을 지키는 것. 피티 궁전의 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깨닫는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단단한 형태의 부라는 것을. 너무 많이 가진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워진 시선 안에서 비로소 조용히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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