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이냐, 여유냐”
시간의 얼굴- 빠름과 여유 사이에서
한국에서 자라며 익숙했던 단어 하나는 “빨리빨리”였다.
무엇이든 빨라야 한다는 압박, 늦으면 뒤처진다는 두려움.
효율이 미덕이고, 속도가 경쟁력이었다.
약속 시간에 5분만 늦어도 조급했고,
버스가 늦으면 불편했고,
음식이 늦게 나오면 불만이 터져 나왔다.
효율이 미덕이고, 속도가 곧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영국에 와서 알게 된 건,
이곳에서는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 효율과 속도의 미학
내가 자라온 세대에게 시간은 곧 성과였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기회를 잡았고, 느리면 뒤처졌다.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 늘 머릿속은 시계와 싸움이었다.
보고서는 마감보다 앞당겨 제출해야 안심이 됐고,
휴가조차 마음 편히 가지 못했다.
“돌아오면 밀린 일을 어떻게 다 하지?”
늘 계산이 먼저였다.
빠름은 능력이었지만, 동시에 쉼을 빼앗아 가는 그림자이기도 했다.
영국 – 여유와 관계의 문화
영국에서 내가 가장 놀란 장면은 슈퍼마켓 계산대였다.
캐셔는 물건을 스캔하다가도 손님과 날씨 이야기를 나누고,
강아지 얘기에 웃고, 저녁 메뉴까지 묻곤 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한국 같았으면 “빨리 계산 좀…” 하는 긴장감이 흘렀을 텐데,
영국 사람들은 이 짧은 순간을 작은 사회적 만남으로 여긴다.
날씨 이야기는 인사말처럼 당연하고,
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온기를 나눈다.
버스가 늦어도 “It’s fine.”
가게가 일찍 닫아도 “Tomorrow then.”
여유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태도였다.
시간 개념의 배경
한국의 ‘빠름’은 역사 속에서 생존 전략이었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불과 몇십 년 만에 서구를 따라잡은 압축 성장 속에서
속도는 곧 살길이었고, 성과는 곧 생존이었다.
반면 영국은 오랜 역사와 안정 속에서
시간을 통제하기보다 누리는 법을 배웠다.
대표적인 예가 티타임이다.
잠시 멈추어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그 순간이
삶의 결을 이루어왔다.
오늘의 세대는 어디로 가는가
한국의 MZ세대는 부모 세대와 달리
여유를 ‘나를 지키는 시간’으로 이해한다.
빨리 달리다 지친 모습을 보며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반작용이 생긴 것이다.
여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돌봄
효율보다 지속 가능성
경쟁보다 나만의 속도
영국의 젊은 세대도 달라졌다.
코로나 이후 재택과 하이브리드 근무가 일상이 되며
근무 시간과 개인 시간의 경계가 흐려졌다.
그들은 돈보다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결국 두 나라 젊은 세대 모두
여행, 취미, 자기 계발을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여긴다.
서로의 거울
한국의 시간은 집중력과 성과를,
영국의 시간은 여유와 관계를 강조한다.
빠름 속에서 우리는 때로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여유 속에서 우리는 때로 집중력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두 문화는 서로의 거울이 된다.
한쪽은 속도를 배우고,
다른 한쪽은 멈춤을 배운다.
시간의 얼굴
60 이후, 시간의 유한함이 현실로 다가오자
내게는 시간의 무게와 온도가 달라졌다.
아침에 천천히 걷는 산책길,
손끝에 닿는 책장의 감촉,
낯선 도시에서 마주할 새로운 풍경.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삶의 박자가 되어 흐른다.
이제 나는 안다.
시간은 시계가 재는 속도가 아니라,
내 마음이 정하는 흐름이라는 것을.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주는 것임을.
젊은 세대를 바라보며
문득 젊은 세대가 떠오른다.
그들 역시 시간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알기에,
나는 때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마도 나의 세대가 겪은 ‘빠름의 압박’을
그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견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유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지만,
그 길 역시 쉽지 않음을 알기에 마음이 짠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의 시간 속에 서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오늘, 시간을 어떤 온도로 맞이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