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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일을 위한 멈춤인가, 삶을 위한 쉼인가

by 양수경

“휴가”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흔든다.

누군가는 눈부신 바다와 햇살을, 누군가는 북적이는 공항을,

또 다른 이는 아무 약속 없는 집 안의 고요를 떠올린다.


휴가는 풍경이자 감각이다.

카페테라스의 한 잔 커피,

낯선 동네를 걷는 발걸음,

그 순간도 휴가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휴가를 가는 걸까?

잠시 멈추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다시 달리기 위해서일까?




한국- 빨리 달린 뒤 잠깐 숨 고르기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여름이면 회사 게시판에 휴가 일정표가 붙었다.

며칠간 허락받은 듯 떠나는 바다와 산.

그러나 마음은 온전히 편치 않았다.


“내가 없는 동안 동료들이 더 힘들진 않을까?”

“돌아가면 밀린 일을 어떻게 다 하지?”


휴가는 늘 ‘몰아서 쓰는 특별한 시간’이었고,

그 무게는 온전히 가볍지 않았다.


성과 중심의 사고는 휴식조차 효율의 틀로 재단한다.


“얼마나 잘 쉬었나?”

“충분히 충전했으니, 돌아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나?”


휴가는 권리가 아니라, 보상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가족 내 예상치 못한 일을 대비해 아껴두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국 – 삶의 리듬 안에서 누리는 쉼


영국에 와서 처음 놀란 건, 사람들이 휴가를 대하는 방식이다.

여름에 몰아 쓰기보다 일 년 내내 골고루 흩어 쓰며,

눈치 보지 않고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


특히 학교 방학(half-term)이 되면 차이가 뚜렷해진다.

한국 부모들이 학원으로 향할 때,

영국 부모들은 기꺼이 여행 가방을 들었다.


“시험이 코앞인데도 저렇게 여유롭게 떠나다니?”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그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임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 아버지의 자리는 일터가 아니라 가족 곁이다.

휴가는 특별한 보상이 아니라, 삶을 이루는 당연한 한 부분이었다.




두 문화가 던지는 질문


각 나라의 방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국의 휴가는 치열한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숨 고르는 방식이고, 영국의 휴가는 삶 전체를 조율하는 리듬처럼 자리한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휴가를 어떤 태도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만족감은 크게 달라진다.


같은 휴가라도

“일을 위한 충전”으로 여길 때와

“삶을 위한 즐거움”으로 누릴 때,

그 무게와 기쁨은 전혀 다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삶을 두 가지 태도로 설명했다.

소유의 방식(Having) 은 “무엇을 얻었는가, 얼마나 가졌는가”에 초점을 둔다.

존재의 방식(Being) 은 “어떻게 경험했는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가”에 집중한다.


한국의 휴가는 종종 소유의 방식에 가깝다.

“몇 박 며칠 다녀왔는가, 어디를 갔는가.”

반면 영국의 휴가는 존재의 방식에 더 닿아 있다.

“나는 어떻게 이 시간을 느꼈는가, 누구와 함께 했는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을 행복(eudaimonia)을 향한 여정으로 보았다.

그가 말한 행복은 순간의 기쁨이 아니라,

자신답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충만함이었다.


그렇다면 휴가는 단순한 쉼이 아니라,

행복을 살아내는 중요한 실천일지도 모른다

.



내게 있어서 휴가란


멀리 떠나지 않아도 좋다.


차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

낯선 동네의 작은 카페,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 안에 휴식의 공간을 확보해 두는 일이다.

일정이 빡빡해도, 먼 여행을 가지 않아도,

잠시라도 멈추어 설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휴가다.


잠시 머문 낯선 도시조차 휴가가 된다.

그 순간, 나는 안다.

그래서 휴가는 단지 ‘삶의 공백’이 아닌,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한 순간이며,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귀한 방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에게


당신에게 휴가는 무엇인가요?

달리기 위해 멈추는 짧은 숨 고르기인가요,

아니면 삶의 리듬 속에서 누리는 당연한 쉼인가요?


오늘, 당신의 마음 안에는

어떤 빛깔의 휴가가 머물고 있나요?



#휴가 #쉼 #영국생활 #삶의 리듬 #감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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