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제품의 나라에서 온 여자, 조립식 나라에 살다

영국의 DIY 식탁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by 양수경


한국에서 가구를 살 때 나는 늘 ‘몸’이 가볍다. 눈으로 고르고, 카드만 내밀면 끝이다. 그다음은 완벽하게 세팅된 시스템이 알아서 해준다. 배송, 조립, 설치, 그리고 박스 쓰레기 수거까지. 종이 한 장 남지 않게 깔끔한 '완제품'의 세계.


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영국 땅에서는, 돈으로 누군가의 시간을 사지 못하면 내 몸이 고생하며 하루를 바쳐야 한다. 효율과 편리함의 DNA를 뼛속까지 장착한 토종 한국인으로서, 영국의 DIY(Do It Yourself) 문화는 여전히 감성보다는 ‘불편’에 가깝다. 이 불편함을 유럽 특유의 낭만으로 포장하는 능력은 아직 내게 없다.


처음 영국에 와서 집을 구했을 때였다. 부동산 중개인이 내게 물었다. “Furnished(가구 풀옵션)로 하실래요, Unfurnished(빈 집)로 하실래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Unfurnished를 골랐다. 월세가 훨씬 저렴했으니까. 그때의 나는 ‘저렴함’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잔혹한 체력 소모를 미처 알지 못했다.


큰 수납장들은 다행히 붙박이로 되어 있어서 침대, 소파, 책장, 식탁 정도만 새로 사면 되었다. 침대는 전문업체에서 샀더니, 기사님이 오셔서 뚝딱 조립까지 해주고 가셨다. 그 순간 나는 순진하게 안심했다. ‘그래, 사람 사는 곳인데 영국도 다 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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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식탁이었다.

며칠 뒤, 택배 트럭이 집 앞에 섰다. 건장한 두 남자가 낑낑대며 내 키만 한 커다란 박스를 들고 와 현관 안쪽에 툭 내려놓았다. 나는 속으로 계산했다. ‘좋아, 여기까진 한국이랑 비슷해. 이제 박스를 뜯고 조립해 주시겠지?’ 그런데 그들은 쿨하게 돌아섰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현관을 나서려는 그들을 향해 나는 황급히 외쳤다.


“Excuse me. Why are you leaving?” (저기요, 왜 그냥 가세요?)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We only deliver.” (저흰 배달만 합니다.)


조립은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이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러워서, 순간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한 진상 고객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곧바로 식탁을 구매한 가구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영혼 없는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립 서비스를 신청하신 기록이 없으세요.”

“그럼 지금 추가로 신청하면 언제 오실 수 있나요?”

“빠르면… 2주(Two weeks) 뒤요.”


전화기를 든 손이 허공에서 길을 잃었다. 2주 후라니. 우리는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밥을 먹어야 했다. 게다가 뒤늦게 알아본 조립 서비스 비용은, 저렴하게 산 식탁 값과 맞먹을 만큼 터무니없이 비쌌다. 식탁 없이 바닥에서 밥을 먹는 건 내게 ‘살림’이 아니라 피난민의 ‘캠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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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날 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식탁 조립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박스를 뜯자 고대 벽화 같은 설명서가 나왔다. 글씨는 단 한 줄도 없고, 기호와 그림만 가득했다. 그림 속 졸라맨은 활짝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꼭 나를 약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국식 본능대로 접근했다. 설명서를 정독하며 구조를 이해하기보다는, 일단 눈에 보이는 나사부터 구멍에 쑤셔 넣고 보았다. 당연히 몇 분 뒤 다시 풀어야 했다. 조이고, 풀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잠깐, 이거 앞뒤가 바뀐 거 아니야?” 누군가 탄식하면, 우리는 동시에 식탁 다리를 노려보며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부서진 스티로폼 알갱이들이 눈꽃처럼 바닥을 점령했고, 작은 비닐봉지에 담겨 있던 나사들은 카펫 틈새로 도망가 숨었다. 레고 놀이도 아니고, 밥 한 번 먹겠다고 이게 웬 사서 고생인가 싶어 진이 다 빠졌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나무 널빤지들은 겨우 식탁의 형태를 갖추었다. 우리는 완성된 식탁 위에 손바닥을 얹고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은 새 가구를 얻은 기쁨이라기보다, “오늘도 영국에서 살아남았다”는 생존자의 안도감에 가까웠다. 한국이었다면 전화 한 통으로 30분이면 끝났을 일이다. 같은 ‘식탁’인데도 나라가 바뀌니 과정이 다르고, 과정이 다르니 사람의 밑바닥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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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


이유는 단순하다. 집이 너무 늙었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150년, 200년을 훌쩍 넘긴 집들이 수두룩하다. 클래식하고 근사해 보이는 집들은 ‘수시로 뜯어고치고 보수해야 한다’는 뜻과 동의어다. 게다가 이곳의 인건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배관, 전기, 목공 등 기술직(Handyman)을 한 번 부르면 출장비와 시간당 수당을 합쳐 £80~120(한화 약 14~20만 원)가 훌쩍 넘어간다. 그러니 영국의 DIY는 여유로운 주말의 취향이 아니라, 지독하게 현실적인 ‘생존 기술’이다.


주말이면 영국의 국민 철물점인 'B&Q' 주차장이 꽉 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 애니메이션이나 시트콤을 보면, 주말에 공구 함을 들고 문짝을 고치거나 페인트칠을 하는 아빠의 모습이 단골로 등장한다. 내 손으로 집을 뚝딱거리며 가꾸는 것이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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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서운 DIY 문화에 전염(?)된 건 영국인들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오래 산 한국인들도 서서히 진화한다. 엊그제 친한 지인과 함께 영국인들의 또 다른 참새 방앗간, '이케아(IKEA)’에 다녀왔다. 지인은 납작한 박스에 담긴 3단 서랍장 하나를 카트에 실었다.


그 무거운 널빤지 뭉치를 보며 나는 나의 옛 ‘식탁 트라우마’가 떠올라 속으로 깊은 애도를 표했다. ‘아이고, 저 언니 오늘 밤 다 잤네. 남편이랑 싸우지나 말아야 할 텐데.’


그런데 오늘 다시 만난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아, 서랍장? 남편 회사 간 사이에 어제 낮에 넷플릭스 보면서 대충 뚝딱했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더라고~”


순간 그녀의 등 뒤로 전동 드릴을 든 여전사의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한국에서는 전구 하나 갈아 끼우는 것도 남편을 부르던 여자들이, 영국에 살다 보면 어느새 공구함을 열고 나사를 조이는 야전 사령관으로 거듭난다. 이케아 가구 조립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해낼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아, 이 사람 영국 패치가 완벽하게 깔렸구나” 하고 인정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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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197.HEIC 여름 햇빛 아래, 내가 직접 칠한 울타리


사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다. 이 조립식 나라에 오래 살다 보니 나 역시 어느새 완벽한 '고인 물'이 되어버렸다. 요즘 나는 여름이 오면 철물점에서 사 온 페인트를 들고 뒷마당 펜스를 직접 칠한다. 웬만한 정원 가꾸기나 자잘한 집수리는 남을 부르지 않고 내 손으로 척척 해낸다. 놀라운 건, 처음엔 비싼 인건비를 아끼려 억지로 시작했던 그 노동이 이제는 제법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흙을 파고, 페인트를 덧칠하고, 나사를 조이는 동안 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은 단순해진다. 내 손을 거쳐 반질반질해진 펜스와 가지런히 정돈된 잔디를 보고 있으면, 돈으로 완제품을 샀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뻐근한 성취감이 차오른다. 그러니까 영국의 DIY가 꼭 나쁘고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땀 흘려 내 공간을 직접 가꾸는 기쁨, 그것은 효율에만 미쳐 있던 내게 이 아날로그적인 나라가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 식탁을 조립하며 땀을 뺐던 밤 이후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나라가 물건을 파는 방식은, 어쩌면 이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삶을 대하는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고. 영국은 정답이라는 ‘완제품’을 아이들 손에 쥐여주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조립해야 할 질문의 조각들을 던져준다. 삐끗하면 다시 풀고, 방향을 바꿔 끼워보고, 도저히 안 되면 설명서를 다시 들여다보며 기어이 자기만의 답을 완성해 내도록 훈련시킨다.


그러니까 이 나라의 삶은 종종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Here you go. Now you do it.” (자, 여기 있어. 이제 네가 직접 해봐.)


한국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나는 여전히 그 조립식 문장을 받아 드는 손이 가끔 무겁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내 손으로 쩔쩔매며 조립한 그 투박한 식탁이, 그리고 한여름 땀 흘려 칠한 그 펜스가, 쉽게 돈으로 산 완제품보다 내 삶에 훨씬 더 단단하고 눈부시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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