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른 생황'과 영국의 '시민 수업'사이
생후 9개월부터 한국을 떠나 자란 아들 녀석 때문에 뒷목을 잡을 뻔한 일이 있다. 아주 오래전, 녀석이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무렵이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던 날이다. 한국 엄마의 DNA가 발동한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아이를 몰아세웠다.
“야, 너 이리 와봐.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지!”
내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아이의 눈은 더 똥그랗게 커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게 아닌가. 가뜩이나 화가 난 마음에 기름이 부어졌다. 감히 어른이 야단치는데 눈을 똑바로 뜨다니.
‘너 눈 안 깔아? 어디 엄마를 똑바로 쳐다봐?”
그러자 아이는 더 황당한 표정이 되어, 눈을 피하기는커녕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영문을 몰라했다. 그 눈빛은 반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한 ‘훈련’의 결과였다. 학교 선생님에게 늘 그렇게 배웠던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눈을 보고 경청하세요(Look at me when I’m talking)”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버릇없다’고 느낀 그 태도가, 영국에서 자란 이 아이에게는 상대에 대한 최선의 ‘존중’이었다는 것을.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우리 사이에는 태평양만큼이나 넓고 깊은 문화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른 앞에서 고개를 살짝 숙이는 법을 먼저 배웠다.
기억을 더듬어본다. 일곱 살 봄, 학교에서 처음 받은 교과서는 병아리 같은 개나리색 표지였다. 그 위엔 단정하게 머리를 빗은 아이가 공손히 손을 모으고 인사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바른생활>.
이름부터가 ‘바른(Right)’ 생활이다. 정답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교과서 속 철수와 영희는 언제나 쓰레기를 줍고, 선생님 말씀에 토를 달지 않았으며, 친구와 사이좋게 지냈다. 우리가 배운 도덕의 핵심은 ‘관계’와 ‘조화’였다. 튀지 않고, 모나지 않고, 공동체의 질서 안에 안전하게 머무르는 법. 그것이 ‘착한 아이’가 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반면, 아들이 다니는 영국 학교에는 ‘도덕 교과서’가 없다. 대신 아이들의 가방에는 ‘PSHE(인성 및 사회 교육)’나 ‘Citizenship(시민 수업)’이라고 적힌 유인물이 구겨진 채 들어 있다. 그 종이에는 ‘착한 아이가 되는 법’ 대신, ‘공정 무역’, ‘난민 문제’, ‘투표하는 법’ 같은 골치 아픈 현실의 문제들이 적혀 있다.
영국 교육은 아이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 ‘질문하는 까칠한 시민’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곳 선생님들은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끊임없이 되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니?(Why do you think that?)”
한국의 교실이 ‘따뜻한 관계’를 가르칠 때, 영국의 교실은 ‘차가운 권리와 책임’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건, 어느 날 아이와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를 만났을 때"를 가정해 대화하던 중이었다. 나에게 그 질문의 정답은 단 하나였다. 한국의 <바른생활> 시험지였다면 100점짜리 정답, “당연히 들어 드린다”다. 하지만 영국의 시민 수업을 받은 아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마치 현장 안전 요원처럼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엄마, 영국에서는 'T.I.L.E'을 먼저 생각해야 해.”
“타일? 학교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응. 먼저 내 능력(Individual)을 봐야 해. 그 짐이 내 몸무게보다 무거우면 내가 다칠 수 있잖아. 그리고 그 짐 안에 위험한 게 들었는지(Load) 모르는데 함부로 만지면 안 돼. 만약 깨지면 누가 책임져(Liability)?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사람이잖아(Stranger Danger). 함부로 따라가면 안 돼.”
상담사인 내게 아들이 쏟아내는 용어들은 낯설지 않았다. '위험성 평가(Risk Assessment)', '사전 동의(Consent)', '보호 정책(Safeguarding)'. 모두 내가 영국에서 자격을 따고 일하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들이다. 머리로는 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고, 내 안전이 최우선이고, 함부로 돕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그 합리적인 논리를.
하지만 전문가인 나조차도, 그 엄격한 직업적 매뉴얼이 초등학생 아들의 입에서 ‘생활의 지혜’처럼 튀어나올 때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정(情)’이라는 단어가 설 자리가 없는, 이 완벽한 매뉴얼의 세계. 나는 짐짓 엄마의 마음으로, 혹은 한국인의 정서로 반박을 시도했다.
“야, 그래도 사람이 정이 있지. 그렇게 계산만 하면 어떡해? 그럼 요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 사람들은 직업이니까 할머니가 힘들면 다 들어줄 거 아니야?”
하지만 아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 영국 요양원에서는 'No Lift Policy(직접 들기 금지)'가 원칙이야. 직원이 혼자 환자를 들어 올리다가 허리를 다치면 불법이야. 그래서 할머니가 넘어져도 기계(Hoist)가 올 때까지 그냥 손만 잡고 옆에 앉아 있어야 해. 그게 진짜 프로페셔널이야.”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한국에서 ‘참된 돌봄’이란 내 몸이 부서져라 상대를 업고 뛰는 ‘희생’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참된 돌봄’이란 나와 상대방 모두가 다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한국이 ‘따뜻한 가슴(Heart)’을 가진 아이를 원했다면, 영국은 ‘차가운 머리(Head)’를 가진 시민을 원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기억 속의 빛바랜 상장 하나가 떠올랐다.
‘개근상’.
나의 학창 시절 최고의 미덕은 ‘근면 성실’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아파 열이 펄펄 끓어도 학교에 가서 엎드려 있어야 칭찬을 받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는 것은 ‘투혼’이었고, 내 고통을 참아내며 집단의 규칙을 지키는 것은 ‘성숙함’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너의 아픔보다 집단의 출석이 중요하다”라고. “너의 감각보다 사회의 기준이 우선이다”라고.
그 결과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었나. 내 몸이 비명을 질러도 듣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조차 모른 채, 누군가가 정답을 내려주기만을 기다리는 ‘답을 찾는 어른’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 어른의 말을 따르게 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는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야”라는 무력감을 심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의 말이 깍쟁이처럼 들릴지언정, 녀석은 적어도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내 허리가 견딜 수 있는지, 이 상황이 안전한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
그것은 “착한 아이가 되어라”는 말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나를 지키는 시민이 되어라”는 가르침이었다.
나는 딜레마에 빠진다. 내 안의 유교적 DNA는 여전히 내 아이가 어디 가서나 “인사성 바르고 싹싹하다”는 칭찬을 듣길 원한다. 하지만 런던이라는 거친 정글에서 살아가야 할 내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무기는, 무조건적인 희생과 공경이 아니라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냉철한 판단력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한다. “어른 보면 인사 좀 크게 해!”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안도한다. 이 아이가 낯선 할머니의 짐을 덥석 들기 전에, 자신의 허리가 다치지 않을지 먼저 고민하는 ‘안전한 시민’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실수라는 오답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기만의 답’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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