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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월매 Jan 17. 2022

'쎄한 감'을 경계하라

우리 안에 있는 편견과 마주하라

예전에 SNS에서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짤막한 글을 봤다. 그 아래에는 함께 폭력, 성폭행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사진이 나란히 각을 잡고 있었다. 관상이 실제로 과학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련의 사진들을 보면 어딘가 악의가 숨어있을 것만 같은 눈빛, 범상치 않은 아우라 등 진짜 '범죄자의 얼굴'이란게 있구나 싶어진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상당한 수준의 판단 오류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은 다시 말해 "딱 보니 그렇게 생겼다"는 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겼다는 이유로 나쁜 짓을 했을 것이라 믿는 일이다.


비슷한 결인 "어쩐지 쎄하더라"라는 말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다. 일이 전부 벌어지고 난 뒤에야 처음 내 예감이 맞았음을 굳이 강조하는 정보값이 하나도 없는말이자, 본인이 틀렸을 경우에도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발언이다. 안하느니만 못한 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사례들일 것이다.


물론 쎄한 감은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안전장치가 되기도 한다. 경험에 의해 이상한 사람,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피하는 일은 태고적부터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발달한 필수적인 감각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의 위험 감지는 물리적 위험을 피하던 능력으로 발달한 동물적 감각보다 복잡하고 미묘하다. 타인에 대한 판단이 너무 성급해지면 자칫 과오를 범할 수 있다. 배경과 문화가 다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사는 세상에서 쎄하다는 촉을 과신하는 일은 자신이 봐온 표본만을 가지고 만든 편견의 틀에 온 세상을 욱여넣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착실히 살아왔지만 그냥 얼굴이 험악하게 생겼을 수도 있고, 교양인의 수준에 걸맞은 매너를 익힐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는데, 위협적이고 무례한 사람으로 판단하게 돼버린다.


사람을 만나고 서로 알아갈 때 '감'을 과신하는 또다른 예시는 첫인상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하지만 첫인상은 "강렬"할 뿐, 상대방을 진짜로 파악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 누구나 주변인들과의 첫 만남을 생각해보면 처음 만난 그들과 조금 더 알고난 후의 그들 사이에는 분명히 다른 점들이 많을 것이다. 처음 만난 순간 새침해보여 어딘가 멀게 느껴지던 사람이 알고보니 다정하고 마음씨도 따뜻한 사람이었다거나 활발한 기운과 넉살좋은 성격으로 초반 좌중을 사로잡던 소위 '인싸'가 어느새 주변의 인심을 잃고 조용히 사라져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말보다 행동이 더 그 사람을 더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5분짜리 면접을 보는 것이 아닌 이상, 사람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상과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색안경을 벗고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는 데에 주력하는 편이 낫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 필요한 것은 단순히 감에 의지해 타인을 단정하기 보다 시간을 두고 기회를 주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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