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우스에서 매거진 만드는 사람 특 1 :
이거 맞...나? (Feat. 익숙하지 않은 클라이언트의 부재)
2024년 1월, 직장인 대상 콘퍼런스 '원티드 하이파이브 2024(이하 하이파이브)'에 배부할 '<&Workers>' 매거진 제작을 시작했다. <&Workers>는 원티드랩 콘텐츠 팀에서 비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매거진으로,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 발행한다. 네 번째 호로 출간하는 '<&Workers> Vol.4'는 하이파이브 참석자에게 선물로 증정하는 매거진이 되었다.
<&Workers> Vol.4 첫 기획 회의에서 매거진 콘셉트를 정하는 과정은 꽤 순탄치 않았다. 올해 하이파이브는 총 이틀간 진행되는데 1일 차 'HR day'는 HR 담당자가, 2일 차 'Makers day'는 마케터와 디자이너 등 서비스(브랜드)를 만드는 현직자가 참여하는 행사다. 이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일과 성장을 고민하는 직장인'으로 주제와 타깃을 정하는 것이 가장 손쉬웠으나 콘텐츠에 진심인 팀원들은 자연스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런저런 아무 말을 쏟아내다 어쩌다 괜찮은 아이디어를 냈다.
"신입을 타깃으로 하면 어때요? 저와 여러분도 콘텐츠 제작자로서는 경력이지만 또 다른 일과 새로운 도전에는 신입과 비슷하잖아요. 우리의 무궁무진한 처음을 이야기하는 거죠. 경력이 신입에게 일에 대한 정답이 아닌 힌트를 주는 매거진을 만들고 싶어요."
다행히 팀원들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의했고 나도 한숨 돌리려던 찰나 리더가 말했다. "효린 님이 매거진 경험이 많으니 이번 매거진 PM을 해 보시는 건 어때요?" 그 당시 리더와 다른 팀원은 포화 상태의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었고, 그나마 손이 비었으며 대충 어림잡아도 50권이 훌쩍 넘는 매거진을 제작해 본 내가 "그것은 어렵겠습니다."라고 말할 구실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이전 매거진 경험은 에이전시가 전부였다. 확실한 클라이언트 니즈와 요구 아래 매거진을 만드는 것과 스스로 타깃을 설정하고 타깃에 맞게 브랜딩 하는 매거진은 다르다. 그렇다. 나 역시 인하우스 매거진에는 신입이었던 것이다!
돌아온 신입이 말합니다.
뻔한 훈화 말씀은 싫어요.
나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하기 싫은 것이 명확한 사람이다. 매거진 목차를 기획할 때 분명했던 생각은 '지루한 조언은 절대 하지 말자.'였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요.'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면 적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단어를 선택하고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지 답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뮤니케이션 중요한 거 누가 모르나. 그건 직장이 아닌 학교와 인간관계에서도 당연한 거 아닌가. 무엇이든 당장 실무에서 쓸 수 있을 만큼의 현실적이고, 뾰족한 힌트를 주슨 말이 풍부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아래는 리더와 팀원과 함께 작성했던 최종 목차다.
각 목차의 뼈대가 되는 콘셉트는 내가 잡았는데 'Challenge'는 신입 시절 현업에서 실패하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서던 날을 회고하며 타인이 아닌 본인 안에서 답을 찾은 이야기를 다룬다. 본 타이틀은 '치열히도 눈부셨던'이었지만, 디자이너 피드백에 따라 '치열하게 눈부셨던'으로 수정했다. 연관 부서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문장의 감각을 신뢰하려는 편이다. 나는 의미 있게 쓴 (혹은 멋 좀 부린) 문장이지만 처음 마주하는 독자에게는 낯선 문법이라고 느낄 수 있을 테니. 'Discover'는 한 분야에서 크게 성과를 내거나 업계에서 유명한 전문가들을 섭외했다. 인터뷰를 나가는 팀원과 객원에디터에게 신신당부했다. 이들을 인터뷰할 때 1) 주요 청자가 신입임을 고려하고 2) 추상적이지 않은 명확한 조언을 채집해 달라고 말이다. 물론 나보다 훨씬 유능한 에디터들이지만 여러 콘텐츠 제작자가 한 곳에 모이는 작업이므로 모두가 동일한 내용을 이해하고 시작하기를 바랐다. 파트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발화자가 신입에서 경력으로, 이야기 무게가 2p에서 4p로 늘어나는 전체적인 흐름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유난히 '통일성'과 '흐름'에 집착하는 편이다. 그래야 한 통의 콘텐츠가 견고해진다고 믿는다.
팀을 신뢰했기에 가능했던
효율적이고도 완벽했던 팀플레이
종이 매거진 작업에서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역시나 오탈자다. 몇 번이나 교정해도 보이지 않던 오탈자는 참 얄궂게도 인쇄 후에 눈에 띄고는 한다. 마감 시간도 문제다. 누구나 그렇듯 하나의 일만 하지 않기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분배해 완성해야 한다. 긴 고민 끝에 나는 리더와 팀원에게 다음과 같은 교정 방식을 제안했다.
1차 교정 : 완벽에 가까운 교정 (나)
2차 교정 : 오탈자, 문법 오류 검수 (팀원)
3차 교정 : 원고 완성도, 리스크 검수 (리더)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하자 작업 속도는 조금씩 빨라졌고 그 덕분에 나는 비교적 여유를 내어 매거진의 전체 뼈대를 점검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는 순간 늦지 않게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특히 약간의 집요한 구석이 있는 나조차도 '좋게 좋게' 넘어가려던 흔적을 리더가 인지하고 "효린 님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으며 또 한 번 검토할 기회를 줬던 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초기 에디터 페이지 원고는 무척이나 감성적인 에세이 형식이었다. 리더 덕분에 담백하고도 매거진의 첫 문을 열기 좋은 문단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혼자 성공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일에 어려움이 생길 때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을 믿고, 그들에게 감사해 하며 끊임없이 내 여백을 돌아봐야 한다. 여백이 무엇이지 알아야 채울 수 있고, 이는 뛰어난 동료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이러나 저라나 매거진 작업이 처음인
신입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개념
디자이너에게 넘겨야 할 파일과 정보는 아래와 같다.
기획안 : 제작 목적과 일정(원고 & 디자인 마감, 1~3차 교정, 인쇄 발주, 발행)이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
목차
배열표
인쇄 사양 (사전 디자이너와 협의 필수)
원고 : 원고는 작업되는 대로 바로 업데이트 하자. 디자이너가 손이 빌 때 미리 작업하기도 한다.
이미지 : 표 이미지를 디자이너가 다시 작업해야 할 시 이미지에 기재된 텍스트를 파일에 입력해 전달하자. 다양한 사이즈(가로, 세로)의 이미지를 준비하면 베스트. 당연하게도 고화질일수록 좋다.
디자인 레퍼런스 : 원하는 콘셉트가 있다면 레퍼런스와 함께 전달해야 한다.
보통 교정은 총 3번에 걸쳐 진행되는데 디자이너에게 원고를 넘기기 전, 필자와 인터뷰이 그리고 클라이언트 등 원고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사전 확인을 받아두자. 관계자에게 확인받은 이 원고가 디자인된 페이지에서 1차 교정이 시작된다. 그렇지 않고 1차 교정을 본다면 분명 대지에 피바다가 몰아칠 것이며 내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를 것이다.
처음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몇 가지 용어를 아래 덧붙인다.
세네카 : 책등을 의미한다.
도비라 : 일본어로 '문짝(토비라/とびら)'을 뜻하는데, 책의 각 파트(섹션/챕터)를 구분해 주는 속표지다.
하시라 : 일본어로 '기둥(하시라/はしら)'을 뜻하는데, 페이지 최상단/최하단에 책 제목이나 장명 등을 넣는 구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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