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스테이크 그리고 스란두일

눈 내리는 긴긴밤을 충만하게 보내는 조합

by Gomsk

스란두일은 <호빗>에 등장하는 어둠 숲의 요정왕이다. 영화 주인공은 호빗 '빌보'지만 제작진이 애정에 애정을 더한 캐릭터는 이 요정왕임이 틀림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먼저 본 갈라드리엘은 느리게 걷고 말해도 모든 것을 아는 여신이며 외모는 반투명한 느낌이다. 또 다른 요정 군주 엘론드는 실수나 오류가 없을 반듯한 존재였다. 스란두일은? 원작에서 짧게 언급되지만 영화에서는 섬세하게 묘사된다. 그 디테일 때문에 진짜 어느 깊은 산속에 살고 있을 것 같다.


톨킨 선생이 200년 이상 세상에 머물면서 집필을 이어갔다면, 어둠 숲 요정 군주에 대해 풀어낼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어둠 숲을 다스리는 요정왕은 흥선대원군처럼 외부 세력을 차단했으며 독한 술을 좋아한다. 그 술 취향은 매우 까다로우며 옷차림에 진심이다.(롹 페스티벌에 납시어 공연도 가능하다) 더군다나 액세서리는 직접 만들어 쓴다. 그리고 조석으로 곱게 빗질하며 명상했을 것 같다. 영화니까 요정이니까 하며 넘어가기엔 요정왕의 스트레이트한 긴 머리는 예사롭지 않다. 그가 왕좌에 앉은 자세까지. 스란두일의 복잡한 감정은 땅에 스며들어 뿌리내린 듯하고, 어둠 숲 나무뿌리 갈라진 동굴처럼 폐쇄되어 있다.


그렇다면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일수록 호감이 가는 것일까. 결점이 있는 캐릭터를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아메리칸 사이코>를 보고 덜덜 떨면서도 좋은 건, 내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람 같아서다. 그래서 머리채만 붙잡지 않았지, 난쟁이 왕자 소린과 스란두일이 싸우는 장면도 정말 재밌다..


그런 요정왕에게 아들이 하나 있다. 자신처럼 금발이며 날렵하다. 속으로 애지중지하면서 냉담하게 대한 것 같다. 요정왕의 천년 단위 육아는 난쟁이들의 여정과 맞물리며 종료(?)된다. 긴 세월 동안 배우자를 잃고 상처한 상태로 어둠 숲을 지키며 살았던 그의 외모는 한 맺힌 구미호 같다. 비주얼 쇼크! 배우의 연기력 덕분에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살았겠지만, 요정왕의 모든 것을 스타일링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손길이 놀랍다.


그러니까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는 마치 와인과 스테이크 같다. 건축가 유현준 씨가 말하길 와인과 스테이크는 권력을 상징한다고. 그래서 <오징어 게임> 최후의 3인에게 주어진 음식도 쨍한 유리잔에 담긴 붉은 술이요, 육즙이 흐르는 한 덩이 고기라고 한다. 드넓은 목초지를 깨끗이 훑는 소가 내놓는 티본스테이크를, 열매 그대로 먹는 것보다 많은 양의 포도가 노동력과 함께 응축되었을 한 모금과 함께 먹는다. 그렇게 권력은 시간을 끌어당겨 쓰고 부유한 자는 압축된 시간을 먹는다. 그리고 스토리가 풍부하게 우러나는 요정왕 캐릭터에는 와인과 스테이크처럼 시간이 고농도로 압축되어 있다. 이때 시간은 자본과 같은 의미다.


헤어디자이너가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까지 쌓인 스킬과 센스는 요정왕 스란두일의 3단으로 곱게 빗질하여 넘긴 스타일을 낳는다.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사진에서 거만하지만 매력적인 풍모라는 콘셉트를 추출한 이의 눈썰미도 독수리 부리처럼 매섭다. 배역을 맡은 배우의 전작 한 컷에 담긴 눈빛에서 스란두일을 연결시킨 감독의 안목도. 마침내 스란두일의 격정이 터져 나올 때 관객은 같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건 '리얼'이니까.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캐릭터를 보고 나는 '연출'의 묘미, 그 위대한 아름다움에 취한다. 이를테면 맨얼굴 자체가 진실이고 최선이라고 속으로 주장했는데 그 편견이 드디어 깨진 것이다. 꾸밈없는 순수함은 위험하다. 그러므로 연출해야 한다! 개인의 고유함 또한 연출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것은 강압적인 자세다. 자기 연출을 제대로 하는 것 또한 삶이 주어진 이유가 아닐까? 나는 젊음보다 환갑이 가까운 오늘에야 알았다..


호빗 빌보는 도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호주머니 속에 감춘 '절대반지'와 어쩔 수 없이 품에 넣어 둔 '아르켄스톤'은 비극을 품고 있지만, 도토리는 빌보가 돌아갈 고향 마을과 평화로운 일상을 상징한다. 찰나에 담긴 영원처럼 씨앗 하나에 신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요정왕의 마음은 오랫동안 차갑고 하얀 보석을 향하고 있었다. 영화에 포함되지 않은 삭제 장면에서 마법사 간달프가 묻는다. 죽은 아내가 남긴 보석과 아들 중에서 요정왕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지.


20년 전에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보았을 때 묵직한 분위기가 버거웠고 오크 군대와 붉은 사우론의 눈알이 무서웠다. 지금 <호빗> 시리즈부터 연이어 보니, 아름답고 웅장한 스토리는 단순한 진실을 반복하고 있다. 요정왕이 사랑을 깨달았을 때 아들 레골라스는 아버지 곁을 떠난다. 천년을 함께 했어도 이별은 순간인 것이다. 소린은 죽음 직전에 빌보와의 우정을 되찾는다. 인간들의 도시를 사수하려고 사방팔방 고군분투하는 바르드는 가족을 건사하는 행복을 누렸다. 갑옷도 투구도 없이 전투를 치르는 모습이 고단한 가장 그 자체다.


<호빗>을 보고 나면 쓸쓸해진다. 그리고 왜 <반지의 제왕>을 호빗 마을의 일상으로 끝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압도적인 스케일에 무너질 수 있는 정신 건강을 스스로 돌보라는 의도가 아닐까? 프로도를 보필했던 샘와이즈 갬지는 원정에서 돌아와 가정을 꾸린다. 마음에 두었던 로지에게 청혼하고 아이를 많이 얻는다. 태어난 아이들은 복숭아처럼 사랑스럽다. 중간 대륙에서 더 이상 머물기 힘들게 된 대다수의 요정들과 빌보, 프로도가 떠난 이후에도 샘은 자신의 삶을 예쁜 정원처럼 가꾸었다.


무시무시하고 매혹적인 판타지에 깃든 메시지는 도토리처럼 소박하고 뚜렷하다. 사랑을 가꾸고 전하는 삶의 소중함. 지루하고 남루할 지라도 그것만이 끝까지 남는 진실이라고. 그리고 나는 기꺼이, 지불하였다. 와인 스테이크 그리고 영화 <호빗 확장판>를 누리는 호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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