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일상기록
1
잡고, 풀고.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긴장된다. 한 공간 안에서만 지내던 아이들을 데리고 급식실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선을 이렇게나 의식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탈 없이 잘', 그리고 되도록이면 '바로 잡힌' 모습으로 바깥에 다녀오고 싶어진다. 내가 줄을 선 것도 아닌데 아이들 줄 선 모습이 신경쓰이고 내가 떠드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내가 신경이 곤두선다.
코로나 덕분에 한층 더 긴장감이 돈다. 음식물을 밀어넣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쉴 새 없이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해야하는 시간, 점심시간! 가림판을 두고 한 칸 건너 한 칸씩 자리하여 점심을 먹기는 하지만 10살이 채 되지않은 이 꼬맹이들은 자주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잊는다. 그저 자기가 즐거우면 옆친구와 마스크 벗은 채로 실컷 떠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아, 얘들아 제발.. 밖에 나와서까지 내가 일일이 잔소리 할 수 없단다. 아는지 모르는지 나와 눈을 마주치기 전까지 실컷 장난을 친다.
개인적으로 어머니들께 이런 연락을 종종 받는다. “우리 애가 밥을 잘 안 먹어요.” “우리 애는 편식이 심해요.” 나에게 해결책을 바란다기보다는 걱정스러우니 조금 더 신경써서 봐달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이런 엄마의 눈을 피해 점심시간만큼은 자기 뜻대로 하려는 것일까.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먹기 싫은 음식은 남긴다. 눈치 빠른 아이는 “저 배가 아파요. 안넘어가요. 그만 먹으면 안돼요?” 한다. “응 안돼, 더 먹어.” 하고 싶지만 먹기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행위는 아동학대에 해당하니 그럴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안 먹어본 반찬은 한 입이라도 맛을 보자. 골고루 먹어야지 쑥쑥 커요.” 하는 대답정도다.
아무튼 신경 쓸 것 많은 점심식사 시간, 오늘은 교실 밖을 나서기 전에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마스크 벗은 채로 이야기하면 안 돼요. 밥 먹을 때에는 밥에만 집중해요. 받은 음식은 골고루 먹어요!” 그랬더니 어제보다는 조금 더 차분한 모습이었다. 옆친구와 장난을 치려다가도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조용히 밥먹으려고 노력했다. 어리지만 충분히 말귀를 알아듣고 지킬 줄 아는구나! 어린 아이들도 공들여 잡으면 잡힌다.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풀어져서 돌아오긴 했지만.
잡고 푼다는 표현 자체에 거부감이 들 때도 있어서 ‘강약조절을 한다’, ‘밀고 당기기를 한다’ 등 다른 표현도 생각해 보지만 나로서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힘들다.(학술적인 표현이 있는가? 알고있다면 좀 알려달라.) ‘잡았다 풀었다 한다’는 표현이 매일 같은 집단을 상대하는 나로서는 제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들을 매일 ‘잡기만’ 했다면 오늘 했던 신신당부는 부탁이 아니라 잔소리 쯤으로 들렸을 것이다. 잘하든 못하든 그동안은 아이들 하는대로 풀어두고 지켜봤다면 이제는 어떤 부분에 보완이 필요한지 찾아서 부분부분 잡아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너무 숨막히는 생활을 시키기는 싫어서 참 고민스럽다.
2
2번 아이.
2번 아이에 대해 써보려 한다. 집단을 이끌다보면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는 데 급급해서 한결같이 잘 생활하는 아이들에겐 눈이 잘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을 눌러주지 않으면 주변 아이들에게도 피해가 가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가야할 관심마저 하루종일 튀는 아이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적어본다. 1번 이야기는 안 하고 싶어도 종종 하게될 테니 건너뛴다.
2번은 청결상태에 민감하다. 아침에 오면 가림판과 책상을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마스크 착용에도 관심이 많아서 1번이 마스크를 코 아래에까지 내린다 싶으면 “1번아 마스크 똑바로 써!”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한다. 내가 면마스크를 쓰고 가는 날이면 귀신같이 알아보고는 “그 안에 필터 있어요? 면마스크 쓰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대로 들어온대요. 조심하세요.” 라고 걱정하는 말도 한다.
3월에는 1번 뒷자리에 앉아서 고생을 했는데도 무던히 잘 버텼다. 본인은 아니었는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잘 버텼다’라는 표현이 딱이다. 툭하면 돌아서서 2번 가림판을 치고, 이름표를 떼고, 말을 걸고. 그런데도 집에가서 불평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가 더 놀랐다. 지금도 1번 아이에게 마스크 잘 쓰라고 잔소리는 할 지언정 1번 아이에게 싫은티 한 번 낸 적 없다. 장난쳐도 잘 받아주고 웃으면서 이야기도 잘 한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신기할 정도로 잘 지낸다. 다행이다.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높지는 않아서 그런지 말소리가 작고 글씨도 엄청 흐리게 쓴다. 손 힘이 약해서 그런거겠지 했는데 오늘은 쓴 글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종이를 꼭꼭 접어 왔다. “친구들한테 글 보여주지 마세요.” 하면서 말이다. 평소보다 더 흐린 글씨였다. 이 아이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저 내성적인 아이라기엔 쉬는시간에 찾아와서 조잘조잘 이야기도 잘 하고 웃는 얼굴도 자주 보여준다. 솔직히 이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100퍼센트 다 알아듣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사랑스러우니 찾아오는게 고맙기만 하다.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아이다. 다음에 또 써야지.
오늘 기록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