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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Mar 23. 2023

지하철에 책 읽는 사람이 없다

사람, 지하철, 그리고 소통

 코로나 터지기 전 3월에 왔던 한국을 4년 만에 방문했다. 해외로 떠난 지 초기 2년 차 때는 차량 운전석과 조수석이 헤깔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물가 계산도 당연한 듯 원화 기준으로 했었다. 그런데 4년이란 시간이 짧지는 않았나보다. 차도를 건널 때도 오른쪽을 보며 건넌다. 자칫 사고나기 딱 좋다. 물가도 자꾸 달러로 환산해서 비싼지 적정한지를 가늠한다. 심지어 인천 공항에 픽업을 온 처남 차에 짐을 싣고는 자연스럽게 왼쪽을 향한다. 한국에서 왼쪽은 운전석인데 말이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도 바뀌었고, 한국도 바뀌었다. 인천부터 서울로 오는 모든 길들은 재정비되어 있었다. 새삥 냄새가 물씬 나는 도로는 본 적 없는 표지판들이 가득 채웠다. 심지어는 알던 역들 사이사이에 모르는 역들이 채워지기도 했다. 익숙하던 풍경도 새로웠고, 전혀 모르는 풍경이 나타나 놀라는 새로움도 선사했다. 그 중에서도 익숙한데 가장 생경했던 풍경. 지하철이었다. 


 문득 내 머리를 복잡하게 한(이유는 모르겠지만) 장면 하나.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이 없구나.

 지하철에 우두커니 서 있다 보니 승객들을 보고 있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찐하게 다가왔다. 해외 재외 국민으로 등록된 사람들은 6개월 이상 체류하는 경우에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정책이 발표되면서 어쩌면 해외 동포들이 한국에 입국했을 때, 정체 모를 이질감이 더 커질 수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하철에서 책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 될게 있을까. 문제는 문제 삼을 때야 문제가 된다는 말처럼, 내게나 머리 복잡한 장면이지 타고 있던 승객들이야 생각조차 할 필요 없는 다반사인 일상사 아닌가. 


 몇 분간 내가 탄 칸의 승객들을 살펴본다. 눈, 멍, 폰. 눈을 감거나 자고 있는 분들, 눈은 떴지만 멍 때리는 분들, 눈을 뜨고 폰을 보는 분들. 마지막 부류가 가장 많았다. 큰 태블릿을 무겁게 들고 인강을 보는 친구들도 있었고, 웹소설로 보이는 글들을 스크롤 다운하며 읽고 있는 청년들 등 많은 사람들이 폰을 들고 있었다. 오죽하면 ‘저러다가 심한 거북목 되겠는데...’하는 걱정이 이방인인 내게 올라왔을까? 그 생각의 끝에 책을 보는 사람이 없다 라는 말이 도착했다. 책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많지만, 이 생각 속 핵심 정서를 잠시 살펴보니 지하철에 탄 많은 분들이 많이 지쳐있구나 하는 연민. 연민 그것이었다.  


 내가 사는 외국은 지하철이 없다. 지상 선로를 기반으로 한 기차만 4-5구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4년 전보다 훨씬 복잡해진 한국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는 만큼이나 눈도 복잡하고, 길도 헤매고, 마음도 씁쓸해졌으리라. 종종 책은 아니고 서류 종류의 종이를 들고 계신 분들도 있었다. 그들은 추측컨대 자신의 업무를 위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하철에서조차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의 한 페이지를 살아가고 있는 분들을 향해 내가 연민이 느껴지는 것 자체가 건방지고 오만한 태도인 듯 하면서도 그 연민의 씁쓸함 끝에서 발을 뗄 수가 없다. 


 더 오른 물가에, 더 바빠진 발걸음에, 더 치열해진 좌우 대결에, 더 삭막해지고, 더 피곤해진 사람들의 표정에 마음이 안 좋아진다. 분명 퇴근 후에, 잘 밤에, 일하고 공부하는 틈틈이 각자의 방식으로 숨을 쉬고, 행복을 만끽할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피곤하지 않는 사람 없고, 숨 쉴 구멍을 찾지 않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 지하철 승객들에게서 갖는 연민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렇게 보면 먹고 살려고 해외로 살 길을 찾아간 나이지만, 역시나 내 민족성은 한국에 기반을 하나보다. 한창 한국 생활을 할 때 탔던 지하철에서는 그래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시집, 로맨스나 공포 소설, 역사도서, 자기계발서, 만화책, 심지어 성경과 같은 종교 경전까지도. 행여나 각자의 삶에서 찾기 불가능에 가까운 숨구멍을 포기한 채 그냥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넋 놓고 지하철에 앉아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아가 불필요한 죄책감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나 또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이지만, 이렇게까지 혼자 여유 있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맑은 공기에 탁 트인 시야 속에서 생활해도 괜찮은 걸까? 알 듯 모를 듯 한 부채감이 옅은 듯 분명하게 낙인 찍힌다. 


 한국의 지하철 승객들의 손에 다시금 책이 들려지고, 이동하는 그 잠시의 시간에라도 여유 있고, 쉼 있는 표정이 스며나길 바래본다. 물론, 쪽잠이 끌어당기는 과학 법칙과 같은 힘은 영원히 물리칠 수 없겠지만^^; 


20230323 08:48 


*사진: UnsplashAlex Eck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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