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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May 27. 2023

30년간 몰랐던 해돋이가 주는 해맛

사람, 새벽기상, 그리고 소통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마다 학교가는 일은 고역이자 전쟁이었다. 멀기도 했고, 학교 가야할 장본인인 내가 죽도록 일어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방앗간을 하시던 부모님은 새벽마다 일어나서 떡을 만드시면서도, 그 바쁜 와중에 나를 학교까지 태워주셨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아니었다. 늦게 일어나는, 아침마다 잠에 취한 생명체였을 뿐이었다. 살면서 술 취한 적은 없는데, 잠에 취한 적은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40이 넘는 나이까지 간절히 이뤄지길 바랬던 것이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을까. 앓고 있던 지병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의 영향도 있었고, 집중해야 할 일은 밤에만 만날 수 있는 적막감 속에서만 가능해지게 만든 내 습관 탓도 컸다. 충분히 자지 않으면 그 다음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시기들을 꾸역꾸역 버텨왔고, 지금도 이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다보니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어릴 때는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같은데, 40대 중반인 지금은 음악을 듣거나 옆에서 아이들이 영상을 보면 집중을 하지 못 할 만큼 밤 특유의 적막에 익숙해져있고, 실제로 그 적막의 덕을 입어 많은 시험과 레포트의 늪을 치열하게나마 건널 수 있었던 적이 셀 수 없었다.


 이런 내가 한 달여 전부터 새벽(?) 6시가 좀 넘으면 일어난다. 이곳 사람들은 출퇴근이 빠르다. 정말 빠른 사람은 4시에 출근한다고도 들었다. 한국도 비슷하겠지만, 업종에 따라 다양한 이들의 출퇴근 시간은 7시 전후로 피크가 된다. 6년간 이사짐 센터 일을 할 때는 이런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 10시에 현장에 도착하면 되었다. 그래서 늦으면 아침 8시 30분까지 잔 적도 많았다. 이런 내가 새벽 6시라니… 페인터 경력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현장에서 8시에 일을 시작한다고 하니 이제는 꽤 가벼워진, 하지만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강박과, 룰이 세워지면 그것을 잘 지키는 것이 나와 집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직업 철학 때문에 밤 10시 반이 되면 잠을 청한다. WOW! 새벽 한 두시에 자던 내가 10시 반이라니… 이제 3주가 넘어가며 기상 시간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데, 오히려 너무 당겨진 취침 시간에는 여전히 어색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늦게 일어나는 새인 동시에 저녁형 인간인 내가 살면서 절대 하지 못 했던 두 어가지 일은 밤새서 노는 것과 아침 해돋이를 보러 가는 일이었다. 지금도 나의 지병을 알지 못 하는 친구들에게는 자세히 설명하기도 애매해 그냥 일이 있어 못 간다고 설명할 것이다. 강박과 직업 철학이 그렇게 못 고치던 기상 습관을 바꾸다니…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는다. 어쨌거나 이제 나는 아침 해돋이를 본다. 칠흑같은 밤 하늘에서 회색빛 새벽 하늘로, 그리고 떠오르기 시작한 해는 회색 하늘을 주황색으로 물들인다. 해질녘 노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내게는 그런 주황빛 하늘이 오히려 차분하게 다가온다. 벅차오른다거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오늘 하루 불살라보자는 식의 화이팅은 없다. 되려 차분해지고, 냉정해지다가 정신이 들며 주변과 나를 인지하게 된다. 잠에 취했을 때 나는 밤새 나를 지배하던 잠이 주는 달콤한 몽롱함에서 벗어나지를 못 했었다. 때로는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하지만, 벗어나기 싫은 것 같기도 하고,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그 몽롱함 때문에 침대에서 뒹굴다가 결국은 잘 때까지 자는 것이다.


 이런 내가 해돋이를 본다. 종종 잠을 설치다가 깨어 우연히 창밖에 밝아지는 하늘을 마주하면, 못 볼 걸 본 사람마냥 얼른 침대로 뛰어들어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무서워했던 내가 뜨는 해를 보며 출근하는 것이다. 40대 중반에 경험하는 해돋이가 주는 해맛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꼭 가보고 싶었던 정동진 해돋이나 신년 일출이 선사할 것이라 약속하던 그런 짜릿함이나 웅장해지는 가슴과는 거리가 멀었다.(나이 탓일까?^^;;)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몸에 그닥 좋지 않은 냄새들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곧 삶의 현장인 그곳으로 달려가기 위해, 오늘도 아내와 두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입을 만들어낼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던 지난 6년 간의 외노자 생활을 마침내 뒤로 한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내게 일어날 많은 가능성들을 키워보려는 아주 현실적이고, 또한 아주 이상적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시작하는 바로 오늘의 해돋이의 해맛은 오묘하다. ‘오묘’라는 말 자체의 어감처럼, 뭐라 딱 설명할 길이 없다. 나 자신이 뿌듯하기도 하고, 불가능할 거라 여겼던 일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의 일종이기도 하며, 잠자리가 아닌 도로를 지나고 있다는 어색함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척이나 오바스럽게도 이런 시간들을 몇날 며칠을 지나보내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또 다시 진화되고 있을까 라는 상상력 뿜뿜하는 기대감까지 겹쳐진다. 그러니 오묘 그 잡채가 아닐 수 없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에 도전해본 적이 있는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 간 적이 있는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입에 넣어본 적이 있는가? 한 번도 말을 건네본 적 없는 이와 말을 섞어 본 적 있는가?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를 아는 것과 그곳에 직접 가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 내가 도달해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는 언제나 공포심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이 올라오는 일과 마주 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새로운 시작을 한 것이고, 어제와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누구나 보다 나은 사람, 보다 좋은 사람, 보다 유능한 사람, 보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 결과에 다다르기 전에 지나야 할 시작이 주는 불안과 과정이 주는 위기감은 회피하고 싶어한다. 예외없다. 아무도 원치 않고, 누구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 낯섬이 주는 그 묘한 기분 나쁨… 느끼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악물고, 발을 내딪어 본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양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상한 사수를 만날 수도 있고, 막상 시작한 새로운 일이 나와 안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 적응하고 말고 할 시간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미 당신은 충분히 잘 했다. 완벽할 수 없는 낯선 곳으로의 발걸음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잘 한 것이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선택지 앞에서 망설이고, 두려운 그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오늘 시작하고, 내일 그만 둘지언정, 오늘은 오늘대로 내 선택대로 시작해보자. 나도 페인터로서 3주나 버틸지 몰랐다. 절실한 마음에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선택한 마지막 옵션이었고, 1주가 목표였다. 1주를 일하고 급여가 통장에 찍혔다.힘이 났고, 3주라는 눈앞의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지난 주에 (더 많아진 금액의) 2주치 급여가 다시 통장에 찍혔다. 첫 번째는 급여가 주는 물리적인 동기부여가 컸다면, 이번에는 3주를 버텨냈다는 심리적 성취감이 3개월을 더 버텨보자는 결단으로 이어졌다.비록 짧은 3주지만, 첫주차 보다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이제는 사수의 농담에도 익숙해졌고, 현장의 분위기도 감이 온다. 무엇보다, 이거 가져와, 이번에는 이걸 할거야, 이건 이렇게 해야지 등의 말을 들으면 알아듣는(^^;) 신기하고도 성공적인 의사소통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1주일 급여 받고 때려쳤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또 다른 것을 찾아 해보았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감사하게도 3주째 매일 아침 해맛을 보고 있으니.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관에서 빛나는 해맛을 보기를 바란다. 완벽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힘을 내어 시도해본 일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 모두가 주어진 하루 하루를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20230527 19:55


*사진: 내가 사는 곳의 해돋이가 주는 해맛. 한국과 외형적으로 별다를 건 없는 것 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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