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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un 17. 2023

원하는 것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사람, 원함, 그리고 소통

“엄마, 나 제육볶음 먹고 싶어. 오늘 해줘요.”


 아들이 아내에게 대뜸 이렇게 말한다. 아내는 이곳에 온 뒤로 비싼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지인들의 소중한 레시피들을 옆에서 배워가며 원래도 좋았던 음식 솜씨를 나날이 발전시켜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 들어 별미는 제육볶음이다.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음식일지 몰라도 이제 11살, 8살이 된 아들과 딸이 매운 것을 먹을 수 있기 전까지는 우리 집에서 전혀 흔하지 않았던 한국 음식이었다. 물론, 이 나라 물가 자체가 워낙 비싼데다가 소고기 보다 돼지고기가 더 비싸니 꼭 아이들 입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라면을 통해ㅠㅠ) 매운 맛을 알아버려서 그 중에서도 제육볶음을 정말 잘 먹는다. 이 말을 듣고 반나절이 지나 퇴근하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원하는 게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TV나 인터넷에 요즘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무기력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며, 안된 마음을 나누곤 한다. 청년/청소년들을 대표하는 말인 MZ세대들은 행여나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은 괜찮은데, 유난이라며 말이다. 나 또한 가까이는 우리 아이들부터 주변 아이들의 친구들과 교회나 지인들의 자녀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무시하고, 부모나 선생님, 혹은 매체에서 ‘이 정도는 해야지’, ‘여기가 진짜 좋대‘, ’그것만 하면 인생 피는거야.‘ 같은 얘기들에 이끌려 가는 몇몇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시리고, 따갑던지…


 사실 생각해보면, 원하는게 있다는게 다행스럽다고 말하고 있는 내 자신부터가 이 말을 가장 많이 고민해온 장본인이다. 40대 중반이 되도록 시원하게 화장실 갔다온 사람처럼 대답할 수 없었던 말이기도 하다.


 “좋아하는게 뭐에요?”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짜장면, 짬뽕, 아니면 잡채밥?? 어떤거?“


 ”좋아하는거요? 글쎄요… 뭐 이것저것…“

 ”직업이요? 취미요? 책 읽고, 영화보고, 산책하고 뭐 그런 거죠.“

 ”님은 어떤 거 드실거에요?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걸 스스로에게 물어왔고, 지금까지도 답을 찾는 중에 있는 아저씨라 그런지 중국집 가서까지도 이 질문은 단순 메뉴 선택의 차원을 넘어서서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카테고리와 이어져 중국음식의 기름짐 때문 보다는 복잡해진 머리 때문에 밥 먹는 것도 쉽지 않게 만들곤 한다.


 ”저는 낙서하는 것 좋아하고, 멍 때리는 것 좋아해요. 정신 건강에도 좋아요. 가끔 먼 산 보거나 하늘에 낮게 뜬 구름에 꽂히죠. 와이프랑 쓸데 없는 얘기를 쓸데 있게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최근에는 와이프가 내려주는 커피를 정말 좋아합니다. 아 참, 안 가본데 가보는 것도 진짜 재미나요.“

  “아무래도 현실과 이상을 최대한 버물릴 수 있는게 가장 원하는 직업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되요. 그래서, 요즘 해보고 싶은 일은 사회복지사에요. 사람을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거든요. 작은 거라도 다른 사람이 좀 더 나아지는데 제가 기여했다 싶으면, 그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더라구요. 게다가, 사람 돕고, 돈까지 벌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저는 새우볶음밥이요. 당뇨 판정을 받아서 짜장이나 짬뽕은 나트륨 함량이 많이 높고, 당 수치 올리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네요. 중국 음식 좋아하지만, 건강 생각해서 볶음밥 먹을게요.”


 아마도 지금 다시 답변을 하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원하는게 무엇인지, 목표가 어디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정도 답변을 내놓기까지 무려 30년이 걸렸다. 여러모로 내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유형이지만, 이 질문만큼은 지금도 씨름하고 있다. 남은 30, 40년도 그 샅바를 붙잡고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거지?’


 엠지 세대건, 밀레니엄 세대건, 나 같은 엑스 세대건, 베이비붐 세대건,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원하는 무엇인가를 정확히 말하기 힘든 형편일 수도 있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어도 그 답을 문제에 쓰려고 할 때마다 방해하는 외부 변수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더라. 그래도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질문들 중 하나가 아닐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느 대학을 가고 싶은가?’ ‘대학을 가지 않고 돈을 벌고 싶은 내가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일까?’ ‘한국 땅을 떠나 어렵게 해외에서 살고 있는 내가 어떤 것들을 이루고 싶은가?’ ‘내가 이 사람과 정말 결혼/연애하고 싶은걸까? 사람 말고 다른 외부 변수에 등 떠밀린 것은 없는가?’


 어제 저녁 아들 덕분에 맛있는 제육 볶음을 먹을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알고, 그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었던 아들이 자랑스럽다. 아들도, 딸도, 아내도, 나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님들께서도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고, 그것을 표현하고, 그 앞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길 소망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제육볶음을 먹을 수 있게 나는 때때로 원하지 않는(?) 출근길을 기꺼이 나서는 아빠가 되어야겠다^^;


 ‘원하는게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20230617 12:31


*사진 : http://food-zzang.com/shop/largeimage.php?it_id=1544167797&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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