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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un 17. 2023

누구나 처음은 있다…지만

사람, 처음, 그리고 소통 

“신입이 그렇지 뭐.”

“내가 이래서 신입이랑 일 안 하는거야.”

“사장님, 그러니까 신입 말고 경력자 구해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지독한 문과형 인간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시작하기 훨씬 전인 10살 즈음부터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등이 궁금해진 그런 인간이다. 이런 인간인 나는 대학교 이후로 쭈욱~~ 문과 계열 공부만 해왔다. 석사도 문과 계열 전공, 심지어 어쩌다가 우연히 공부하게 된 해외 대학의 1년 과정도 문과 계열... 치열하게 문과만 딥다 파댔다. 그런 내가 페인터로 일한지 어언 6주차가 되었다. 죽도록 벽과 문틀의 상처 난 부분을 메꾸고, 어깨가 빠져라 샌딩을 하며 손톱 끝이 날아가고, 지문과 작별을 고해왔다. 종종 사수와 사장님의 배려(?)로 롤러와 붓을 써볼 기회도 얻었었다. 모든 문과형 인간이 나 같지는 않으리라. 눈썰미 좋고, 손을 잘 쓰는 문과 출신들도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좋게 말하자면, 대기만성형 인간이다. 영어는 20년 이상 하고 나니 그나마 외국인 만나면 How are you?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 6년을 했던 이사짐 센터 일도 3년을 하고 나니 사장님의 매듭 묶는 방식과 물건에 따른 배송 이동 경로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나는 처음이 주는 낯섬과 어색함과 어리버리가 무척이나 오래 가는 인간이었다.(혹시나 문과 출신 분들의 오해가 없길 바란다^^;;) 


 앞서 내가 쓴 세 문장은 요즘 내가 페인트를 하면서 행여나 들으면 어떡하지? 싶은, 혹은 드라마 같은데서 신입들과 일하는 상사들 중 삐뚤어진 일부 인물들이 뱉어 버리는, 말 그대로 뱉어 버리는! 그런 말들이다. 꼰대들이라고 하는 어른들만 하는 말들도 아니고, 소시오 패스에 한해서 사용되는 말도 아니다. 희한하게 겉으로 멀쩡해보이고, 평소에 선하다 싶은 사람들 중에도 자신의 후임으로 쌩초짜가 들어오는 경우, 저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들이 있더라. OMG!


 저런 말들을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기분은 어땠는가? 살면서 다양한 일들을 하며 나도 몇 번 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원색적이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쓰레기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랄까? 인간을 인격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이 말을 하는 사람도, 이 말의 대상이 된 사람도 더 이상 인격체도 뭐도 아니다. 인격체를 쓰레기 취급한 사람도 쓰레기고, 누군가에게 그런 취급을 당한 사람도 그 순간은 쓰레기... 같은 기분에 구겨진다.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르겠다. "O 과장이 나한테 그런다고 내가 쓰레긴가? 나는 그런 사람들이 보는 시선으로 정의되지 않아!" 와우! 정말 멋진 마인드다. 나도 이러고 싶다. 그런데, 그 흔한 한자 '사람 人'의 해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서로 기대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기댄다는 말은 의지나 의존의 범주를 넘어서서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업무적으로 등등으로 주고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이렇게 볼때, 신입 개인의 강인한 의지와 별개로 자신의 인격과 마음은 이미 생채기가 난 것이며, 신입이 풍기는 어설픔과 피할 수 없는 실수들을 통해 쓰레기의 의인화가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내 마음을 관통한다.


 '내 주위에는 나의 처음을 견뎌주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누군가의 처음을 견뎌주는 사람인가?'

 

 공사 현장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거칠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잠시 설명하자면... 그분들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다. 작업의 퀄리티를 내면서 시간을 단축시켜 새로운 작업을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자신의 몸을 깎아 일하는 그분들에게는 곧 돈을 버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말도 짧아지고, 신경도 예민해진다. 그런 방식들이 무조건 그리고 항상 옳다는 생각이라기 보다는 현장의 터프함을 이해하도록 돕는 단초가 된다는 말을 적고 싶다. 이렇게 볼때, 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페인트 회사의 사수와 사장님은 특이한 경우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나의 처음을 견뎌주고 계신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조 부장, 이건 손모양을 이렇게 눕혀서 미는게 더 낫겠지?"

"조 부장, 마스킹을 이렇게 하면 뒤에 붓질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거야. 잘 봐." 


 글로는 충분한 어감이 전달되지 않음이 아쉽다. 하지만, 20대에도 건축 현장에서 일 해보고, 지금도 다른 파트의 목수 분들이나 타일러, 배관 등을 하시는 기사님들이 주고 받는 말들을 들을 때와 비교해보면 사뭇 놀랍다. 한편으로, 거의 다른 느낌의 다른 사수 분도 계시긴 하다. 내용은 비슷한데, 듣는 나는 전혀 달리 느껴진다. 아마 정리해보면, 이런 느낌이다.


 첫째, 들은 내용에 대해 내 입장을 말하면 강하게 손사래 치며 "아니야."라고 일축한다.(니가 틀리고, 내가 맞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말로 들린다ㅜㅜ)

 둘째, 직접적인 언어 표현의 비난은 없으나 표정과 몸짓이 이미 내가 실수하기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다.(아, 두 번 일하게 하네...IC) 


 먼저 일 해온 분들의 입장에서는 새로 들어온 초짜 신입의 일처리가 얼마나 미숙해보일지, 이미 가르쳐준 내용이 얼마나 아무런 변화 없이 튀어나오고 있는지 확연히 보일 것이다. 나도 설명을 다시 듣고 나면 이전에 사수가 알려줬던 내용임이 기억 나면서 '아뿔싸'와 함께 스스로가 참 초라해보이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한 번은 이렇게 대놓고 말씀드린 적도 있다.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런데요... 자꾸 실수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하루 빨리 일이 손에 익어서 도움이 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네요.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야, 조 부장아. 이제 한 달 됐어. 뭘 얼마나 도움이 될려고 그래. 나는 처음에 샌딩만 몇 달을 했어. 처음이니까 그런거지. 그냥 하던 일이나 해." 


 누구나 처음은 있다. 그 처음을 함께 해주는 사람도 있다. 선배, 사수, 선임 등의 이름으로 불리울 그들이 신입을 맞이하고, 팍팍 나는 초짜티를 어떻게 대해주는가는 신입의 열정에 불을 지필수도 있고, 반대로 퇴사의 결심에 불을 지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신입이었던 때가, 적든, 크든, 거의 없든, 자주였든 실수하고, 잘못하고, 숨고 싶을 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조금만 더 신입의 쪼그라든 마음을 공감해주고, 기다려주고, 한 번만 더! 친절하게(제발~) 알려주자. 


 또한, 나와 같은 신입들도 '이 일은 처음이라' 하는 일들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문과형 인간이든, 이과형 인간이든, 하이브리드 인간이든 처음에 필요한 것은 성실과 매너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나의 처음을 맞이하는 선배가 꼬장꼬장해도, 사수가 일도 안 가르쳐주면서 떽떽 거린다 하더라도, 어쨌든 지금은 이 일이 내 일이다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배워보자. 누가 봐도 초짜티가 난다 하더라도, 누가 봐도 성실하게 일에 임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으로 철저한 자기객관화로 일을 해나가자. 오늘 배운 별거 아닌 일이 쌓여 내일 내가 어떤 대단한 일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나는 페인트 일을 하고 3주차 때, 내가 사는 집 욕실 벽에 아내가 긁어드신 페인트 조각 자국을 내 힘으로 감쪽같이 메꿨다. 참고로, 이 나라 페인터 출장비는 일단 나오면 200~300불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신입이니까 그럴 수 있겠네."

“내가 선임이니까 신입 잘 키워봐야겠군.”

“사장님, 그러니까 경력자만 구하지 말고 신입도 구해서 사람을 키워야죠. 그래야 회사도 커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수들과 선임님들, 이런 마음으로 함께 일하시는 신입들의 처음 좀 잘 견뎌주세요^^ 그리고, 오늘 모든 처음을 지나고 있는 신입님들, 저랑 함께 퐈이팅합시다! 


 우리도 누군가의 처음을 견뎌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보길 바래본다. 


20230615 ~ 20230617 19:23


*사진: UnsplashJukan Tate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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