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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un 26. 2023

나는 진짜 어른일까?

사람, 어른, 그리고 소통

 최근 나의 최애 드라마 탑급 하나인 <낭만닥터 김사부>의 세 번째 이야기, 그리고 재밌다는 말만 듣고 킵만 해놓고 있던 <일타스캔들>을 오늘에서야 다 보았다. 전혀 다른 배경과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일하게 느꼈을 재미의 요소들을 나 또한 느꼈으리라. 그런데 희한하게도 돌담병원의 긴장감과 유쾌함, 국가대표 반찬가게의 유머와 스릴러 가득찬 에피소드들 속에서 하나로 묶이는 이슈 한 가지는 이것이었다.


 어른


 김사부를 만나고, 차진만 교수를 보고, 수간호사와 남도일 선생을 들여다보며, 그리고 최치열강의 말들을 듣고, 호남선 아닌 남행선 사장이 종횡무진으로 다니며 했던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하나의 열매처럼 내 마음에 맺어진 말은 '어른'이었다. 비열한 어른도 있었고, 끝까지 배려하는 어른도 있었고, 애들 등골 빼먹는 어른도 있었고, 끝까지 애들을 책임지는 어른도 있었다. 그러다가 딱 한 마디, 최치열의 딱 한 마디가 많은 울림을 남긴다. 


 "괜찮아?"


 정경호 배우의 멋진 외모와 안정적인 톤의 영향이 없지야 않겠지만, 아주 평범한 말로 넘겨버릴 수도 있었던 "괜찮아?"는 평범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 말은 김 사부도 했고, 수 간호사도 했고, 아쉽게도 중도하차하며 빌런인 줄 알았던,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현실 대변인을 자처한 차진만 교수도 했다. 물론, 남행선 사장님은 입에 달고 산 말이었다. 쉽게 할 수 있는 말인데, 쉽게 나오지 않는 말. 두 드라마에서도 이 말이 나와야 할 상황인데도 하지 않은 인물들은 의외로 꽤 많다. 자신들의 상처와 아집과 욕망에 사로잡혀 옆에 있는 그 누구도 케어하지 않는 그들이었다. 그들에게 그저 주변인들은 이용할 대상이거나 가해자로 치부될 뿐이었으니까. 한편으로는 불쌍하다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괜찮아?" 한 마디 건네지 못 하는 그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아주 극단적인 설정의 인물이었던 지 실장을 제외하고는 웬지 어제 오늘 만난 사람들 중에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괜찮아?"라는 의문문과 더불어 되짚어보고 싶은 평서문 하나가 있다. 


 "미안해."


 사과하는 어른 만나기 참 어렵다. 어른이 어른이라고 불리울 때는 반대편에 아이나 청년, 청소년이 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 대학생 나이대의 친구들에게 사과하는 어른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말이다. 나만 그런가?^^;; 아주 가끔 가계에 갔다가 약간의 일이 생겨 내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사장님들이나 직원들을 볼 때면 얼마나 귀하고, 존경스러운지 모른다. 동시에, 아이들끼리도 마찬가지다. 사과하면 마치 자존심이 통째로 무너져 인생이 재건될 수 없을 것 같이 배우거나 가르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제법 돼보인다. 경제가 불황이고, 정치가 혼란스러워서 나라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사는 사회에서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것들은 지키고, 잘 한 것은 칭찬하고, 잘 못 한 것은 사과하고, 사과 받아줄 수 있어야 하는 사회야말로 그 미래가 밝지 않을까? 


 최근에 가까운 친구의 세째 딸에게 일어난 일이다. 나도 너무 속상하고, 미치겠는데, 그 일을 겪은 친구는 얼마나 화딱지가 났을까 싶었다. 쓰고 있는 내용과 일맥 상통해서 짧게 써보며 내가 걱정하는 현실이 멀지만은 않음을 알리고 싶다. 


 내 친구는 대학교 때 만난 초등학교 6학년 때 짝꿍과 결혼하였다. 다자녀 가정으로 다복하게 잘 살아왔었다. 오순도순 잘 살다가 안타깝게도 아내가 암에 걸려 몇 년동안 투병 생활을 하였다. 나와도 아는 친구라 내 마음도 덩달아 힘들었다. 내 친구는 한국 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날아가 체류하며 아내의 회복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간호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결국은 몸이 버티지 못 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친구도 친구지만,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어땠을까? 그러던 중 얼마 전에 결국 사단이 났다. 딸이 다니던 학교의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 말을 중학생이 했다는게 나는 몇 분동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에미도 없는 *이... 니* (어쩌고 저쩌고)" 


 내 친구가 이 일을 겪은 딸을 보며 슬프고, 울쩍하고, 화난 마음에 올린 글에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일차로 어떻게 마무리를 짓고, 학교 측에서 처벌 약속을 받아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두 명의 가해자 중 하나가 또 다시 헛소리를 해댄 것이다. 아, 그 부모는 무엇을 한 것일까? 그 남학생은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단순 재미라고 해버리기에는 그 말이 후벼팔 친구 딸내미의 마음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이건 아무리 남자 중학생 수준으로 내려가서 생각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상상조차 불가했다. 학폭이 열리고, 처벌도 내려지고, 격리 조치도 받았지만, 본보기를 위해 친구는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그 남학생은 과연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까? 라는 생각이 들고 나니, 어떤 사과를 해도 그 사과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 갑자기 화가 난다. 


 어른이든, 중학생이든 사과는 어렵다. "미안해"라는 말에 진심을 담기는 너무나 어렵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하고, 그 뒤에 따르는 책임과 처벌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게 <낭만닥터 김사부>와 <일타 스캔들>이 전한 재미 중 상당부분은 이런 통념(?)을 뒤집는 어른들이 나와서 아이들에게 "미안해"(또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장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리라. 아마 나이가 들수록, 소위 어른이 될 수록 사과가 어려운 것은 그래서 아닐까? 나이만큼이나 쌓아온 것도, 지켜야 할 것도 많으니 상대적으로 책임도 크고, 쪽팔림도 크니 말이다. 하지만 그 책임이 져지지 않으면, 그 쪽팔림의 시간이 통과하지 않으려고 하면, 피해자는 마치 복리의 마법처럼 매일 더해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사과 하지 않고 살아갈 상처 준 당사자는 어쩌면 그냥 그렇게 잘 살지도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현실이 아닐 때도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해."라고 말 할 수 있는 어른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 사과할 일을 안 만드는 것이 가장 좋지만, 어른이든, 아이든 사는게 어디 그런가. 실수도 하고, 때로는 악에 받혀 일부러 상처주고 싶어하는 것도 우리네 사람이다. 하지만 이랬든 저랬든 "미안해"라는 어른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래야 그런 어른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안해 /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시간 순삭의 마법으로 나를 휘몰아 친 두 개의 드라마는 나에게 하나의 의문문과 하나의 평서문을 남기고 그렇게 끝이 났다. 시즌 4와 시즌 2가 나올지 어떨런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나은 어른상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실제로 그렇게 되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이끄는 드라마들을 종종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 나는 오락성 짙은 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허무함이 아닌 의미있는 이 질문들로 최종화를 최종할 수 있었다. 


 '나는 진짜 어른인가?'

 

 '얘들아, 괜찮니? 미안하다.'


20230617 - 20230626 12:12


*사진: UnsplashBrett Jor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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