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아이, 진지한 대화로 해결 시도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영어 DVD를 보여주기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아이는 내게 '또 영어야?'라고 묻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보면 안돼?'라고도 물었다. 그리고 곧장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앉아서 영어를 온몸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영어에 대한 집중적인 노출이 시작되었을 때 첫째의 나이는 만 5세였다. 한국나이로 겨우 6살 밖에 안 된 아이가 자신은 영어를 못한다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걸 왜 보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하루 이틀 정도는 쉬었지만, 잠자기 전에 영어 책 읽기는 계속 했다. 책이 매우 짧았고 많아야 3권 정도였다. 1권만 읽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곰곰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았다. 적어도 내 딸이니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아이에게 맞는 문제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책이나 DVD가 아이의 취향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개의 애니메이션을 틀어주고 아이가 가장 흥미 있어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골라 영어 영상을 재생시켜줬다. 그건 바로 <Max & Ruby>였다. 내 딸은 토끼를 무척 사랑한다. 토끼가 들어간거면 뭐든 좋아하기도 한다. 그래도 4-5개의 후보군을 보여주며 반응을 살폈고, 그 중 역시가 가장 흥미로워 했던 것으로 골라 보여주었다. 내용은 단순했지만, 내가 봐도 재밌었다.
영어 책도 한 페이지에 한 문장 정도, 그것도 아주 간단하고 쉬운 표현, 일상 생활 표현이 담긴 책이어서 아주 어려웠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wash your face'정도가 한 페이지에 써 있는 격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도 함께 동작을 따라해보고 그림도 찬찬히 살펴보며 흥미롭게 읽었다.
내 아이에게 영어 거부가 온 이유는 알아듣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가장 컸던 것으로 나름 분석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아이와 함께 따로 시간을 내어 '대화'를 하면 풀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아는 우리 아이는 해야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고 함께 의사결정을 하면 받아들이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와 아주 진지하고 특별한 대화를 할거야'라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더 효과적으로 나의 생각을 전달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둘째는 아빠에게 맡기고 첫째만 데리고 카페로 나섰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료와 마카롱을 주문하고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스몰토크를 했다. 그리고 '영어가 힘들지?'라는 식의 공감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나는 왜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고 알아듣지 못해도 계속 듣고 봐야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우리 아이는 다른 나라의 문화나 음식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도 '영어'는 다 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영어를 잘 하면 편하고, 꿈을 이룬 후에도 영어를 잘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펼쳐보였다. 또한, 영어는 계속 들으면 들을 수록 들리고 보면 볼 수록 보인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제 겨우 시작 단계라서 그런다고 그렇지만 우리 딸은 지금 충분히 너무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고 칭찬했다. 아는 몇 개의 단어를 말해보도록 하면서, '거봐~ 너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잖아! 이거 엄청 대단하거야!' 라는 식으로 추켜세웠다.
그랬더니 아이가 이해하고 납득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면서 '그럼, 영어를 보는 날을 정하는 건 어때?'라고 제안해왔다. 사실 이 부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흔쾌히 그래! 라고 했다. 아이는 일주일에 2일 정도를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이나 영상을 보자고 했고, 나는 그건 너무 적으니 일주일에 4일 정도 보는 걸로 하자고 했다. 대신 영어를 안 보는 날에는 음원으로 계속 듣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아이는 매우 흡족해 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에는 그럭저럭 큰 거부 없이 잘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하루 하루가 지날 수록 자신도 들리는 단어가 늘어가고 뜻을 아는 단어가 조금씩 늘어가니, 잘 알아듣지 못하는 불편이 조금이라도 해소가 되어서 거부 반응이 줄어는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첫 번째 거부 반응은 이런 방법으로 해결 했다. 또 다음 스테이지의 거부 반응이 오겠지? 나름 대비하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