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자동화와 근로자의 직무만족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인간이 수행해 왔던 많은 일들이 로봇과 인공지능을 통해 자동화되는 시대이다. 인간의 직업이 대거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자리 위협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직업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사라지는 직업보다 새로 생겨날 직업이 더 많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를 알 수 있다.
1) 직업은 계속 늘어난다?
1969년 <한국직업사전>에 등록되었던 직업의 수는 고작 3,260개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서 20년 후인 1986년에는 8,900개, 2019년에는 12,823개가 등록되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자리들이 무수하게 생겨났고,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20년에 새롭게 등록된 직업을 살펴보면, 1인 크리에이터, 사회적 경제활동가, 창업기획자(엑설러에이터), 교육농장운영자, 도시재생코디네이터 등으로 대부분 우리에게는 생소한 신생 직업들이다. 사회 변화와 기술 발달에 따른 직업의 생성과 소멸은 인류역사상 언제나 겪어왔던 일이며, 직업세계는 축소가 아닌 확장을 거듭해 왔다.
이처럼 직업의 자동화 그 자체가 직업세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매뉴얼화된 일들을 로봇과 인공지능이 처리해 줌으로써 인간은 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업의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이 나의 직업이라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직업이 자동화 위험도가 높은 직업이라서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결코 기술의 발달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자동화 위험도가 높은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 자체가 근로자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와 부담, 두려움 등을 줄 수 있다. 이에 그간 직업의 자동화 위험도 자체를 산출하려 했던 연구들에 이어 최근에는 직업의 자동화 위험도에 따라 근로자가 인식하는 일에 대한 만족이나 정신적 건강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 자동화는 인간에게 이로운 도움을 줄 것이다?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의 자동화가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2가지의 담론이 있다. 하나는 자동화가 반복적인 일을 감소시키고 생산성을 높여 근로자의 일을 보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동화로 인해 직업과 과업의 비자발적 전환을 맞이하거나 일자리 상실을 겪게 되는 데에 대한 두려움, 스트레스 등의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는 예측이다. 어느 예측이 현실이 될지는 아직 단정 짓기 어려우나, 현재까지 발표된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 자동화가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는 예측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아벨리안스키와 벨루만(Abeliansky & Beulmann, 2019)은 산업용 로봇 집약도와 독일의 근로자의 정신 건강의 관계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 로봇 집약도가 1% 증가하면 근로자의 정신건강 점수가 약 0.007점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정치가 미비해 보일 수 있으나, 로봇 집약도는 매우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직업의 자동화가 근로자의 정신 건강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정신 건강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남성과 젊은 근로자에게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구에서는 이 결과에 대해 일의 변화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남성과 젊은 근로자가 일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제조업 분야는 기계의 도입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분야로, 남성이 주요 근로자이기에 남성에게 이러한 두드러진 특징이 더 잘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젊은 근로자는 퇴직까지의 기간이 많이 남아 있어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주요 집단이기 때문에 일자리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해석한다.
3) 자동화로 인해 자신의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근로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슈바베와 카스텔라치(Schwabe & Castellacci, 2020)는 산업용 로봇이 도입됨에 따라 근로자들은 자신의 직업이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는 데에 주목했고, 이는 근로자의 주요한 심리적 변수인 직무만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했다. 전체 직업군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가 자신의 직업이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자동화로 인한 대체에 대한 두려움은 직무만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자동화 위험에 많이 노출된 직군의 사람들, 주로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자신의 동료들이 실제로 기계로 인해 일자리가 대체되는 현상을 봐왔고, 고숙련 노동자에 비해 고용 가능성이 낮다고 인식했기에 나타난 결과로 분석했다. 즉, 저숙련 노동자들의 경우 자동화가 미래에 자신의 과업 일부 또는 전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직업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으로 인해 직무만족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직무만족이 근로 의욕, 조직 몰입, 성과 등 일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심리적 변수임을 고려했을 때, 직업의 자동화로 인한 두려움이 근로자의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후의 여러 연구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이는데 이는 자동화가 될 가능성이 높은 직무는 덜 건강하고 덜 만족스러운 일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국내 청년들을 대상으로 직업의 자동화와 직무만족의 관계를 연구한 전혜린, 하재영(2023)은 직업의 자동화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직무만족은 낮아진다는 결과를 보고했으며, 이 둘의 사이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부분적으로 매개한다고 밝혔다. 즉, 자동화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높아져 직무만족이 낮아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에서는 직무만족에 대해 조사할 때, ‘업무’에 대한 만족도만 활용하였다. 이는 임금, 복지, 대인관계 등의 조직 차원에서 미치는 영향은 과업 외 특성으로 간주되기에 수행하는 ‘업무’의 만족도에만 초점을 맞추어 직무만족을 조사함으로써 자동화 위험도에 따라 직업에서 수행하는 과업의 특성에 따른 만족도만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동화 위험도가 높은 직업에서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과업들이 주된 업무임을 알 수 있었고, 이러한 업무 특성상 일의 보람과 즐거움 등을 경험하기 어렵기에 직무 만족도가 더 낮다고 보았다.
일의 자동화가 근로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결과들을 정리하면, 직업의 자동화 위험도가 높아지고 기계로 인한 노동력의 대체가 늘어날수록 근로자들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직무만족도가 낮아지고 정신건강이 악화된다는 것을 결과로 밝히고 있다. 이는 직업의 자동화가 초래하는 비금전적 비용이 상당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심리적 불안, 정신건강, 직무만족 등은 근로자 개인의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는 업무성과나 동기부여로 이어져 조직의 생산성 및 효율적 인력 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심리에 부정적 영향이 커진다면 직무에 대한 성실도가 떨어지고 이직 가능성이 높아지며 조직 내의 분위기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조성할 수도 있다. 근로자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비단 조직 내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에 자동화가 근로자에게 미치는 질적 영향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고려해야 한다. 이는 비단 조직 내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뿐 아니라, 사회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직업 대체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 방안과 업무적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개입방안을 정책적 차원에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동화 고위험군에 속한 이들에게 구체적인 직업이동경로를 제시하고 숙련 고도화를 위한 교육 등을 제공해야 한다.
그간의 연구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직업의 몇 퍼센트나 자동화가 될 것인지에 대한 양적 담론에서 근로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질적 담론으로 그 내용이 확장되고 있다. 이는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도 직업의 자동화로 인해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나의 직업이 당장 대체가 될지 여부에 대한 예측을 넘어서서 과업이 자동화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자리가 상실될 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확장할 필요가 있으며, 일에서 어떻게 보람과 흥미를 찾아보다 인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를 사회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