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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Mar 19. 2024

애 엄마가 찍은 석사 졸업이라는 마침표

석사시절을 돌아보며.. 

석사 1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을 틈타 결혼을 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계획하지 않았는데, 나의 첫째가 찾아왔다. 졸업하고 아이를 갖으려고 했는데, 과정생 중에 갖게 되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내게 온 아이를 감사와 기쁨으로 맞았고, 출산 1주일 전까지 강원도로 출장까지 다니며 열심히 풀타임 과정 3학기까지 마쳤다. 우리 학과는 석사 3학기에 졸업논문 계획서 프로세스가 진행되는데, 여러 상황과 나의 몸상태를 고려한 결과 졸업논문까지 쓰기는 무리였고, 그렇게 논문은 미뤄둔채 3학기까지 마친 후 출산하기 위해 학교를 휴학했다. 


출산 후 6개월이 지나고, 나는 아이를 시댁에 맡긴 채 학교로 복귀했다. 복학을 결정하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힘들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어려운 고난과 같은 석사과정 생활이었기에, 다시 그 불구덩이같은 곳으로 간다는 마음을 먹는게 쉽지 않았다. 또, 핏덩이같은 아기를 떼어놓고 가야하니 이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멤돌았다. 그럼에도 나는 시작한 일이기에 졸업이라는 마침표는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다. 다른 여러 생각보다 그간 내가 3학기까지 온갖 어려운 일들을 견디며 마쳐놓은 과정이 너무나도 아까웠고, 졸업이 멀지 않았다, 끝은 반드시 온다! 라는 생각들이 더 우세했다. 


풀타임 석사였기에, 아이를 내가 직접 키우면서,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하면서 과정생의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다시 기숙사를 신청했고, 아이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만 내가 보고 나머지는 시부모님께서 맡아주시는 것으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선택은 우리 첫째의 마음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큰 구멍을 만들게 되었다. 이 구멍은 석사를 졸업하고 3년간 서로 진득히 함께하며 많이 메워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런 구멍이다. 엄마가 또 나를 두고 어디로 가지는 않을까, 엄마가 어디에 있든 늘 보고싶고 그리운 그런 마음을 우리 첫째는 늘 가지고 있다. 여전히 미안하다. 


그렇게 시작된 석사 4학기, 그리고 수료하고 1학기를 더 보내고서 졸업할 수 있었다. 이 시간 동안에는 연구실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어서 연구실의 거의 모든 업무들을 혼자서 하게 되는 날들이 많았다. 


그때 종종 썼던 일기들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아침부터 눈 뜨는게 절망스러운 느낌이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 내려앉아서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에서 박사님과 교수님 사이에 낀 문제, 내 계획서 문제, 모든 연구실의 일을 내가 처리해야하는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아이를 떼어놓고 이렇게 살고 있는 데에 대한 죄책감.. 안쓰러운 우리 아가... 나를 누르는 온갖 생각이 정말 절망스러웠다. 살 소망이 끊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계속되는 연구실 잡무와 교수님의 사적인 일들 그리고 프로젝트와 나의 졸업 논문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쉬운게 없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나날의 연속들이었다. 정작 나의 졸업이 걸린 논문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이 심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낳고서도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남편도 아이도 주말에만 보면서 주중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지만, 늘 시간이 부족했고 주말에 집에 가면 아기를 돌봐야 하는 것이 즐거움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힘들고 지칠 때면 아기가 너무 보고 싶고 내 아기도 보지 못하고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막상 집에 가서 아기를 보면 돌볼 힘이 잘 나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돌볼 힘은 전혀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이런 악순환의 연속이 내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끝 없는 지옥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졸업이라는 끝이 있으니 있을 것이라, 졸업이라는 끝이 곧 올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디려했지만,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너무나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갔고, 밤을 새고 또 새며 졸업 논문을 완성했다. 진짜 이악물고 졸업을 위해 논문을 썼던 것 같다. 석사과정 기간 동안 참여하고 수행했던 프로젝트는 총 12개였고,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정말 셀 수도 없는 행정, 출장, 글쓰기, TA 등의 연구실 업무가 많았다. 그리고 수업과 과제, 시험은 또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이런 시간을 지나 드디어 졸업을 했다. 졸업을 했다는 어떤 성취의 기쁨보다는 연구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이 더 컸던 졸업이었다. 드디어 탈출이다! 라고 외치며, 우리 아이랑 실컷 좋은 시간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졸업식날 멀리서 부모님이 오셨고, 남편과 아기도 함께 학교에 왔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내의 좋은 곳에서 부모님께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마침 나의 지도교수님께서 같은 식당에 계셨고, 우리의 식사까지 결제해주셨다. 우리 가족의 식사를 대접해주신 것 같은 교수님의 모습에 뭔가 졸업까지의 긴 여정에서 있었던 어려움과 힘듬이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 앞에서 우리 것까지 다 결제하셨다고, 맛있게 드시고 가시라고 말씀해주시는 교수님의 모습이 참 감동이었다. 감사했다. 


그렇게 석사를 졸업했고, 그 이후 취업을 위해 몇번 노력했지만, 아이를 두고 또 어디론가 가거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너무 오래 맡겨두지는 못하겠어서 우선은 아이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게 석사를 졸업한지 3년이 되어가던 때, 나는 다시 박사과정에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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