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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Jul 08. 2020

나도 길막 해줘!

아일랜드가 여행의 목적지로 정해진 다음 나에겐 소소한 꿈이 생겼다.


드 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던 양과 말, 소들이 사람 따위는 그들의 털 한올만큼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느릿느릿 차도를 건너고 때로는 차도에 그대로 앉아 쉬어 버리면 그들이 비켜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이 얼마나 느리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풍경인가.


아일랜드라면 아주 흔한 일일 테지. 분명 그런 사진을 많이도 본 것 같았다. 언제쯤 내 길을 막아줄까. 아일랜드에서 첫 양 떼를 본 순간부터 내내 설렜다.


하지만 현실은 늘 꿈과 다른 법.


1차선에 가까운 도로는 도저히 차를 세울 만한 공간이 없었고 따라서 느긋하게 풀 뜯는 양을 바라볼 공간도 없었다. 아무리 차를 천천히 운전해도 양쪽 창문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들을 보며 '어어어 어떡해. 멈춰서 보고 싶어!'를 외칠뿐이었다. 게다가 비포장도로 목장 길은 한순간이라도 전방 주시를 게을리하면 바로 길 옆 진흙탕으로 바퀴가 빠져버릴 듯 험했다. 어쩌다 차를 세울만한 갓길이 나타나면 그들이 없었다. 그러니 몇 날 며칠을 흰 솜 뭉터기들이 잔상처럼 스쳐 지나가는 모습만 보며 아쉬워해야 했다.


왜 내가 가는 길은 이렇게 뻥뻥 잘 뚫리는지. 난 시간도 많고 짜증도 안 낼 텐데. 조용히 잘 기다릴 텐데.


결국 단 한 번도 그들에게 길을 막히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그게 얼마나 아쉬웠던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억울함을 전해 풀어야만 했다. 언젠가 다시 갈 테니 그땐 꼭 내 길도 한 번만 막아줘...


멈추면 없고
여행 일기 가운데서 발췌한 희망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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