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도록
아이 둘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그렇잖아도 투두리스트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어 리스트가 비어있는 날이 거의 없다. 루틴이란 게 없어도 꼭 해야만 하는 게 너무 많다는 얘기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을 못하게 되는 변수들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하루 계획이 단순할수록 좋다. 루틴이 망가져서 스트레스받으면 그게 다 어디로 가나. 내 정신적 스트레스와 아이들과의 질적 시간을 방해할 뿐이다.
꼭 루틴이란 걸 하겠다면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새벽에 할 수는 있다. 그때는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지 않을까? 예전에는 자기계발서 작가들이 왜 매번 새벽 4시에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런데 나는 잠이 중요한 사람이다. 하루 8시간은 내 컨디션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시간이란 걸 여러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아침에 맑은 정신에 일처리가 잘 되지만, 촬영하는 일 또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나는 오후에 에너지가 떨어지면 일에 지장을 받았다. 그래서 새벽형 루틴은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몇 번의 자연스러운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 계획은 변경되라고 세우는 거다"
라는 말을 양육자들이 많이 한다. 양육자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해당되는 말이다. 하기로 한 걸 못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영유아를 키우고 있다면 루틴은 무너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미리 인지하면 좋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루틴을 통해 일상을 좀 더 잘 꾸리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꼭 루틴을 해야겠다면 지켜지지 않을 수많은 날이 대해 관대함을 잃지 말자. 그리고 아이 낳기 전처럼 촘촘하게 루틴을 세팅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키면 좋지만 지키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해야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루틴보다는 리듬을 만들어서 탄다. (누구나 다 이런 방식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촬영은 주로 매일 일터가 바뀌고 스케줄의 시간도 바뀌는 일이다. 여러 일을 병행하는 나는 일의 종류도 매일 바뀐다. 어느 날은 사진을 찍고 어느 날은 영상을 편집하고 어떤 날은 글을 쓰고 어떤 날은 미팅만 주야장천 다니고 어떤 날은 액자 택배를 싼다. 그래서 매일 같은 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좀 수월한 날을 일정에 퐁당퐁당 비치하고 그때 에너지를 채우고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는 방식으로 가는 거다. 어떤 날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어떤 날은 아이들이 없는 사람처럼 일에 집중해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주일 단위로 업무나 스케줄이 많은 날이 있다면 꼭 사이사이 회복하고 일을 챙길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스케줄 잡는 날들을 배치해 두는 거다. 그런 날은 아이들을 일찍 데리러도 가고 저녁 시간에 맘 껏 놀아도 준다.
"매일 퇴근 후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요"를 매일 지키지는 못한다. 냉장고에 일주일 단위 스케줄러가 있다. 엄마가 바쁜 날, 아빠가 일찍 들어오는 날, 늦는 날 등을 적어둔다. 나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거의 없다. 내가 짜준 일정대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고 때론 한가롭게 뒹굴고 어떨 땐 궁금한 걸 찾고 매진할 수 있게 시간을 자유롭게 쓰길 바란다. 그래서 매일 숙제를 검사하거나 꼭 해야 하는 것을 정해두진 않는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키울 때 자율성을 우선시한다. 내가 세운 세 가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가능한 막지 않고 혼내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 도 혼날 때는 그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잘못했다는 걸 안다. 그 세 가지는 1. 위험한 것 2. 남에게 해를 가하는 것 3.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만약 혼날 때 납득이 되지 않을 때는 아이도 이의를 제기하고 나는 빠르게 반성한다. 가끔 해야 할 일이 쌓였는데 아이들이 계속 뭔가를 요구하면 내 다정함이 무너지고 기분이 휘두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의도치 않게 낸 화는 빠르게 사과해야 하는 거다. 잘못을 혼내는 것이 아니라 내 기분에 화를 낸 것이니까.
아이들이 자고 나면 그날을 돌아보다가 후회되는 날이 더 많다. 더 잘해줄 걸, 더 시간을 보내줄 걸 하는 후회. 대부분의 부모는 매일 하루를 성찰하고 자기검열할 것이다. 그런 삶이 쌓여서 아이가 자란다. 각자가 자신의 삶의 방식과 가치에 따라 가족의 삶의 모양이 생겨날 것이다.
또한 나는 나의 정서적 너그러움을 위해 루틴을 만들지 않는다. 나의 루틴이 아이들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면 더욱이. 물론 양육방식은 모두 다르니까. 나는 나의 가치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또 우리 가족의 취향과 스타일에 맞게 살기 위한 선택이자 배제이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도 엄마의 시간과 취향을 존중해 줄 줄 아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어서 건강을 위한 루틴을 하나 만들려고 하고 있다. 시간을 정확히 정하는 방식이 아닌, 하루 중 가장 적당한 시간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건강을 챙기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달리운동장 대표 수진님의 제안으로 매일운동챌린지(매운챌)을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기본적으로 양육을 떠나서도 정해진 시간에 반복해서 해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서 루틴보다는 리듬을 타는 방식으로 일과 양육 사이를 맞췄던 것 일 수도 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가정이라면 일과가 대부분 비슷하고,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 일을 병행하고 지역을 오고 가는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엄마를 만난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리듬에 맞춰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다. 이런 아비투스의 영향으로 자란 우리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지 기대가 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활발히 일을 할 때는 분명, 지금의 생태계와는 다를 것이니까. 정답은 없으니까.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프리랜서와 노마드가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쓰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중요한 건, 꼭 수많은 루틴으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해야할 일을 해내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뿌리깊은 단단한 마음 아닐까? 나는 그런 마음 하나 깊이 심어주는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