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안 Jan 21. 2024

아빠와 카메라

아빠의 사진을 기대하다가 울컥했던 마음

어제는 7년 만에 메인 카메라와 렌즈를 추가로 구입했다. 카메라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년 정도 고민한 것 같다. 지금 주로 쓰고 있는 카메라는 7년 전 캐논 최고사양으로 구입했다. 7년 동안 기술은 발전했고 나의 관절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더 가볍고 더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상도 같이 프로급으로 잘 되는 카메라로 구입했다. 작년 한 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샀다. 적지 않은 돈이라 결제를 하면서 다시 또 열심히 일해야지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대학교 때부터 사서 모은 카메라들이 꽤 많다. 그중 사진을 업으로 하면서는 프로급 카메라를 간간히 샀다. 이 업으로 돈을 번지 11년 차이니 성능과 기능이 떨어진 렌즈와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카메라가 있다.  팔아도 제값을 못 받는 좋은 카메라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 아빠가 떠올랐다. 얼마 전 당근에서 중고카메라를 찾아봤다는 이야기를 했던 날도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 했던 아빠의 말을 흘려듣고 시간이 훌쩍 지났던 걸 깨달았다. 막상 좋은 걸 해주고 싶어 벼르다 시간만 흘렀던 거다. 


생각난 김에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내가 오늘 카메라를 새로 구입했는데, 그래서 안 쓰는 기종이 생겼어. 쓰실래요?"

"오! 좋지."

"그럼 설에 만나서 드릴게요. 그때 어떻게 쓰는지도 알려드리고."

"그래그래. 그게 좋겠다."


별말 안 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느껴졌다. 아빠의 설렘. 


아빠와 나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건 아빠 덕분이다. 초등학교 때 집에 있던 캐논 필름자동카메라를 학교에 가지고 가서 하교 시간 운동장에서 혼자 찍던 장면이 생생하다. 한 롤 다 찍으면 아빠는 현상을 해주었다. 볼품없는 사진이 더 많았지만 군말 없이 찍게 해 주었던 아빠가 지금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 된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후로도 아빠는 캠코더를 샀고 그것도 중학교 때 가지고 학교에서 매년 종업식날 기록을 남겼다. 교무실에 캠코더를 가져가 선생님 호통에 쫓겨난 적도 있고, 과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낸 적도 있다. 고가의 기계를 믿고 맡겨준 아빠 덕분에 나는 피디도 할 수 있었고 사진관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딸은 카메라를 가지고 놀고 그걸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지만 아빠에게는 현재 마땅한 카메라가 없다. 얼마 전 내가 쓰다 드린 즉석 프린터기능이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전부였다. 


통화 다음 날 아침 상에 앉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카메라를 드리는 김에 사진을 아카이빙하고 보정할 수 있는 노트북도 같이 사서 드리자는 이야기였다. 노트북을 인터넷에 쳐서 알아보다 문득 아빠가 이 카메라로 찍게 될 사진들을 상상했다. 지난 세월 아빠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아빠가 그동안 펼치지 못했을 재능들은 기회의 영역이지 않았을까. 살아오느라 재능에 대한 고민 한번 해보지 못했을 그 시대 어른들을 생각하다 울컥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대를 잘 만났다면, 조금 더 부잣집에 태어났다면 아빠도 좋은 사진가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아마도 아빠의 시각적 능력과 감성을 이어받아 지금 사진가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사십 대가 되어보니 알겠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아빠의 무게와 치열함. 멈추지 못하고 매일매일 해내야만 했던 일과 생활들. 그 인내 덕분에 나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 아닐까. 


아빠에게 카메라를 드릴 수 있는 설을 기대한다. 아빠가 그 이후 찍게 될 사진에 대해 생각한다. 산책을 하면서 사진기를 메고 작은 것들을 찍어 낼 아빠가 그려졌다. 그 사진들을 전시하는 상상을 한다.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사실 거니까 그동안 펼치지 못했던 재능을 펼치실 수 있게 나는 포문만 열거다. 남은 건 아빠가 하실 거다. 아빠의 사진은 틀림없이 좋을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좋아하는 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