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진을 기대하다가 울컥했던 마음
어제는 7년 만에 메인 카메라와 렌즈를 추가로 구입했다. 카메라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년 정도 고민한 것 같다. 지금 주로 쓰고 있는 카메라는 7년 전 캐논 최고사양으로 구입했다. 7년 동안 기술은 발전했고 나의 관절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더 가볍고 더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상도 같이 프로급으로 잘 되는 카메라로 구입했다. 작년 한 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샀다. 적지 않은 돈이라 결제를 하면서 다시 또 열심히 일해야지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대학교 때부터 사서 모은 카메라들이 꽤 많다. 그중 사진을 업으로 하면서는 프로급 카메라를 간간히 샀다. 이 업으로 돈을 번지 11년 차이니 성능과 기능이 떨어진 렌즈와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카메라가 있다. 팔아도 제값을 못 받는 좋은 카메라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 아빠가 떠올랐다. 얼마 전 당근에서 중고카메라를 찾아봤다는 이야기를 했던 날도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 했던 아빠의 말을 흘려듣고 시간이 훌쩍 지났던 걸 깨달았다. 막상 좋은 걸 해주고 싶어 벼르다 시간만 흘렀던 거다.
생각난 김에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내가 오늘 카메라를 새로 구입했는데, 그래서 안 쓰는 기종이 생겼어. 쓰실래요?"
"오! 좋지."
"그럼 설에 만나서 드릴게요. 그때 어떻게 쓰는지도 알려드리고."
"그래그래. 그게 좋겠다."
별말 안 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느껴졌다. 아빠의 설렘.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건 아빠 덕분이다. 초등학교 때 집에 있던 캐논 필름자동카메라를 학교에 가지고 가서 하교 시간 운동장에서 혼자 찍던 장면이 생생하다. 한 롤 다 찍으면 아빠는 현상을 해주었다. 볼품없는 사진이 더 많았지만 군말 없이 찍게 해 주었던 아빠가 지금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 된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후로도 아빠는 캠코더를 샀고 그것도 중학교 때 가지고 학교에서 매년 종업식날 기록을 남겼다. 교무실에 캠코더를 가져가 선생님 호통에 쫓겨난 적도 있고, 과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낸 적도 있다. 고가의 기계를 믿고 맡겨준 아빠 덕분에 나는 피디도 할 수 있었고 사진관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딸은 카메라를 가지고 놀고 그걸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지만 아빠에게는 현재 마땅한 카메라가 없다. 얼마 전 내가 쓰다 드린 즉석 프린터기능이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전부였다.
통화 다음 날 아침 상에 앉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카메라를 드리는 김에 사진을 아카이빙하고 보정할 수 있는 노트북도 같이 사서 드리자는 이야기였다. 노트북을 인터넷에 쳐서 알아보다 문득 아빠가 이 카메라로 찍게 될 사진들을 상상했다. 지난 세월 아빠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아빠가 그동안 펼치지 못했을 재능들은 기회의 영역이지 않았을까. 살아오느라 재능에 대한 고민 한번 해보지 못했을 그 시대 어른들을 생각하다 울컥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대를 잘 만났다면, 조금 더 부잣집에 태어났다면 아빠도 좋은 사진가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아마도 아빠의 시각적 능력과 감성을 이어받아 지금 사진가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사십 대가 되어보니 알겠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아빠의 무게와 치열함. 멈추지 못하고 매일매일 해내야만 했던 일과 생활들. 그 인내 덕분에 나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 아닐까.
아빠에게 카메라를 드릴 수 있는 설을 기대한다. 아빠가 그 이후 찍게 될 사진에 대해 생각한다. 산책을 하면서 사진기를 메고 작은 것들을 찍어 낼 아빠가 그려졌다. 그 사진들을 전시하는 상상을 한다.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사실 거니까 그동안 펼치지 못했던 재능을 펼치실 수 있게 나는 포문만 열거다. 남은 건 아빠가 하실 거다. 아빠의 사진은 틀림없이 좋을 거다.